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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25. 2021

<보이스> 리뷰

육성으로 터뜨리기


<보이스>

★★★


 <무서운 이야기 3>,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등 활동 영역이 뚜렷했던 김곡, 김선 형제 감독의 신작 <보이스>입니다. 변요한, 김무열, 김희원, 박명훈, 원진아, 조재윤 등이 뭉친 90억짜리 명절 영화(?)로, 한국영화 중에서 의외로 보이스피싱 소재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제목이 제목이다 보니 <나쁜 녀석들>이나 <방법>처럼 동명의 드라마 시리즈가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구요.



 어느 날 부산 건설현장 직원들을 상대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딸의 병원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같은 돈이 사라집니다. 현장 작업반장이자 전직 형사였던 서준 또한 예외는 아니었죠. 돈은 물론 연인의 목숨까지 위협받은 사건으로 서준은 조직의 추적에 직접 나서고, 피해자들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목소리의 주인에게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어느새 일상에 파고든 공포를 양분으로 삼은 오락 영화입니다. 본인 혹은 주변에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있다면 마냥 즐길 수만은 없겠다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의 기승전결을 낱낱이 담았습니다. 들어는 봤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낱낱이 공개한다는 사실만으로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고, 이는 초중반부의 큰 동력이 되어 집중력을 붙들죠.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들과 활동하는 무대, 굵직한 캐릭터들이 모두 설정된 뒤에는 주인공 중심의 범죄 오락물이 걷는 길을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전직 무엇이었다는 설명만으로 거의 초인적인 흐름에 가까운 원맨쇼의 설득을 대신하고, 몸부터 머리까지 못 쓰는 것이 없는 활약에 힘입어 오랜 세월 동안 엄청난 규모를 유지해 온 조직의 존폐를 위협하는 식이죠.


 범죄의 유형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영화 양산도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팀을 꾸려 분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대신 혼자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쪽을 택하며 영화적 허용도 훨씬 자주 일어나고, 그만큼 삐걱대는 전개도 많죠. 그 많은 돈이 오가고 자칭 타칭 수재들도 빼곡한 조직에 CCTV 한 대가 없어서 제멋대로 활개치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쓴웃음이 나오는 순간도 많습니다.


 따져 보면 정확히는 소재를 양념 삼은 영웅물입니다. 보이스피싱으로 뭘 대단한 걸 하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살겠다는 사람 하나 잘못 건드려서 조직이 줄줄이 쓸려나가는 전개에 가깝죠.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종종 소재를 살려야 한다는 목적에 집착하다가 도둑질은 도둑질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등 쉬운 길 놔두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보이스>는 다행히 그보단 멀쩡한 경로를 택하죠.



 그렇게 스스로 아주 철두철미하다고 우기거나 소위 말하는 '똑똑한 척'을 하지 않는 덕에 어느 정도의 일관성이 유지됩니다. 조직 전체보다는 대규모 작업장 단 한 곳이 무대이기도 하고, 소수의 캐릭터들이 개성을 뚜렷하게 잡으며 각자의 할 일을 예상 가능하지만 안정적으로 해 주는 통에 최소한 인물 관계도에서의 잡음이 발생하지는 않죠. 대부분의 단점은 상호작용보다는 개인 차원에서 생기는 편입니다.


 지나치게 만능이라 오히려 무색무취해진 변요한의 서준이 중심을 잡은 가운데, 한 쪽에 김무열의 곽프로와 기타 조직원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엔 김희원의 규호나 이주영의 깡칠 등이 모여 균형을 맞춥니다. 여기서의 균형은 선악의 균형인 동시에 영화 매력도의 균형인데, 애석하게도 착한 쪽은 서준의 원맨쇼에 올라타 비중과 러닝타임만 축내는 격이라 딱히 달갑지 않죠.



 어찌됐든 수많은 사람들이 피싱의 물꼬를 트는 문자나 전화 한 번쯤은 받아 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일상에 맞닿은 범죄인지라 계도적 연출도 군데군데 스며들어 있고, 소재를 과대평가하거나 잠재력을 낭비하지도 않습니다. 범죄 오락물의 장기적인 생명력은 소재가 아닌 캐릭터에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예고해 둔 속편이 원하는 대로 탄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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