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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25. 2021

<기적> 리뷰

조약돌 모아 바꾸는 눈물길


<기적>

★★★☆


 2017년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이장훈 감독과 박정민, 윤아(소녀시대), 이성민, 이수경 등이 뭉친 <기적>입니다. 추석 시즌을 앞둔 롯데 엔터테인먼트 작품으로, CJ의 <보이스>와 대결 구도를 잡고 있죠. 아무래도 영화가 영화다 보니 서로 노선이 꽤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추석 영화엔 어떤 장르의 영화가 더 잘 먹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습니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 매일 위험천만한 철길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오늘부로 청와대에 딱 54번째 편지를 보낸 준경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입니다. 원칙주의 기관사 아버지 태윤의 반대에도 누나 보경, 그리고 그의 비범함을 단번에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의 도움으로 모두의 평화를 위한 준경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죠.


 기본적으로는 1988년 경북 봉화에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기차역인 양원역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실제로 주민들이 직접 세웠다는 깜찍한(?) 역사가 있는 역이니만큼 영화화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소재였죠. 예고편이나 영화 초반부에도 주인공 준경이 우리 마을에 기차역을 세워달라며 대통령에게 50통이 넘는 편지를 쓰는 장면이 주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소재를 두고 여느 영화들이 취했을 접근과는 달리, <기적>에서 기차역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준경과 라희, 보경, 태윤을 포함한 주조연들이 만들어나가는 소소함으로 채워두었죠. 젊은이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골 마을에서 나온 국가급 수재, 하지만 잃을래야 잃을 수 없는 10대(?)의 풋풋함, 사이 좋은 남매, 아버지의 묵묵한 부정 등입니다.


 때문에 다른 영화들에서라면 십중팔구 과장 내지는 허풍으로 여겨질 '웃음과 감동'이라는 수식어가 꽤나 잘 들어맞습니다. 코미디 쪽은 억지스러운 몸 개그나 낡아빠진 코드, 쥐어짜는 신파 대신 캐릭터와 대사의 힘과 합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죠. 순수하면서도 풋풋하지만 결코 멍청하거나 우스꽝스럽지 않은 선을 훌륭하게 파악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신파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기적> 역시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소위 말하는 여느 신파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유도할 만한 상황과 설정을 한데 묶어 몰아칩니다. 실화였다면 이게 말이나 되나 싶을 정도로 전혀 무관해 보였던 인물과 상황들이 복선이 되어 서로와 엮여들고, 각자 전혀 다른 시점에 시작되었음에도 순전히 영화적 폭발력을 위해 모두 같은 순간에 실상을 드러내는 식이죠.



 그럼에도 <기적>을 동종의 최루성 영화들과 같은 분류로 묶기는 어렵습니다. 초중반부에 걸쳐 영화의 분위기를 한 편의 동화처럼 띄운 뒤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인 덕분이죠. 많은 영화들이 한없이 진지한 소재와 그렇지 못한 각본이 주는 이질감을 지우고 가리려 쥐어짜낸 눈물을 무기로 삼는 반면, <기적>은 최소한 일관된 방향성과 톤으로 눈물마저도 알맞은 마침표라는 인상을 남기는 편입니다.


 여기의 일등공신은 자연히 우리의 주인공들과 그를 소화해낸 배우들이 되겠습니다. 박정민, 윤아, 이수경, 이성민에 이르기까지 각자와 가장 잘 맞는 옷을 갖춰입은 배우들이 기대에 부응하죠. 익숙했던 사람의 이름값과 생소했던 사람의 재발견이라고 하면 딱 맞겠습니다. 다만 이외의 조연들은 애석하게도 잠깐씩 등장하는 카메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감에 그치는 편이구요.



 막상 영화가 끝나면 분명 기차역 만드는 이야기일 줄 알았던 첫인상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습니다. 논리와 설득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분기에서 동화와 같은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개연성을 지적당할 가능성도 있구요. 하지만 <기적>은 그를 너그럽게 넘어갈 장점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추석 시즌을 겨냥한 가족 영화로는 손색이 없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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