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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12. 2021

<스네이크 아이즈: 지.아이.조> 리뷰

장난감 들고 피융피융


<스네이크 아이즈: 지.아이.조>

(Snake Eyes: G.I. Joe Origins)

★★


 한국 관객들에겐 이병헌의 출연으로 꽤 특별했던 <지.아이.조> 시리즈가 돌아왔습니다. 이전까지의 배우들이 필요 이상으로 비싸졌다고 생각했는지(?) 완전히 새로운 출연진으로 돌아온 <스네이크 아이즈>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이후 승승장구 중인 헨리 골딩을 주인공으로 앤드류 코지, 하루카 아베, 타케히로 히라, 우슬라 코베로, 이코 우웨이스, 피터 멘사, 사마라 위빙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어릴 적 의문의 사내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한 기억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안고 자라난 소년. 조직에 몸담으며 청년이 되어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듯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해내지 못하며 가장 친한 동료와 함께 조직을 빠져나옵니다. 알고 보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라시카게 가문의 후손이었던 동료 덕에 우리의 주인공은 인생의 제 2막을 맞이하게 되죠.


 기존 2부작에서 대사 하나 없이 검으로 상대를 썰고 다녔던 바로 그 스네이크 아이즈의 기원을 다룹니다. 말수도 없고 얼굴도 볼 수 없었지만, 워낙 뛰어난 전투력은 물론 스톰 쉐도우와의 악연이 비중있게 다루어졌던 터라 인상 하나만큼은 강하게 남겼던 캐릭터죠. 사실 해당 시리즈의 스네이크 아이즈 역시 과거사까지도 아쉽지 않게 설명이 되었지만, 왜인지 새 시리즈에서는 그것마저도 뒤집기로 결정했네요.



 그렇게 121분 동안 펼쳐지는 화면은 아마 영화 팬들이 마블 스튜디오의 <샹치>의 영화화에서 걱정했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담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20세기부터 묵혀 두었던, '동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아무런 응용이나 활용 단계 없이 1차원적으로 나열하고 반복하죠. 문화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한 곳에 뒤섞었습니다.


 스네이크 아이즈와 스톰 쉐도우, 코브라 군단과 배로니스 등 지아이조 세계관의 명칭들을 배제하고 나면 3분짜리 뮤직 비디오에나 어울릴 법한 기승전결밖에 남지 않습니다. 소화할 수 없는 설정들을 일단 멋있어 보이고 대단해 보이니 던져 놓고는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못하죠. 그러지 않아도 억지로 끌려갔던 전개는 중반부 무안단물급 보석의 등장 이후 종착점 없이 제멋대로 쓸려나갑니다.



 무엇보다도 제목이 <스네이크 아이즈>인 영화가 새로운 지아이조 세계관 시리즈의 서막을 알릴 수단으로 스네이크 아이즈를 택한 이유를 전혀 증명하지 못합니다. 신체능력도 어정쩡한데다 훈련은 그저 친구를 잘 둬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도 딱히 고민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어떤 영웅적 면모도 발견할 수 없죠.


 그렇다고 방황하던 청년기를 딛고 정의의 아이콘으로 부상한다고 우기기엔 뚜렷한 변곡점 없이 오락가락하는 묘사가 지나치게 잦습니다. 마침내 스네이크 아이즈의 상징인 검은 마스크와 수트를 차려입으며 막을 내리지만, 그렇게 입고 다니면서도 이전에 범했던 실수를 언제든 되풀이할 것만 같은 인상을 여전히 남긴다는 것이죠.


 또한 세계관의 덩치를 한 번에 키우려 끌어들인 아라시카게와 코브라의 대결마저도 외부인으로 출발한 스네이크 아이즈의 입지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연히 굴러들어온 외부인이 없었더라면 시작하자마자 끝났을 대결이 이토록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이르죠. 스네이크 아이즈의 활약을 보장하려 부리는 억지가 영화는 물론 세계관을 흐물거리게 합니다.



 헨리 골딩을 포함한 누구도 캐릭터의 매력은커녕 배우 본인의 매력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규율과 전통을 중시하는 동양인들이 어색한 발음의 영어를 고집하는 광경도 우습기만 하구요. 제아무리 만화와 완구를 원작으로 두었다 한들 스크린에 실사로 옮기기로 한 이상 판이 달라졌음을 알아야 할 텐데, 로베르트 슈벤트케는 <R.I.P.D.>와 <인서전트>, <얼리전트>를 거치며 감을 완전히 잃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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