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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01. 2021

<용과 주근깨 공주> 리뷰

1인용 메타버스


<용과 주근깨 공주>

(竜とそばかすの姫)

★★☆


 2019년 <미래의 미라이> 이후 약 2년 반만에 돌아온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용과 주근깨 공주>입니다. 일본 현지에서는 지난 7월 중순 개봉되었고, 얼마 전 놀랍게도 호소다 마모루 커리어 최고 흥행작이었던 <괴물의 아이>의 기록을 깨는 데 성공했죠. 성우진으로는 나카무라 카호, 사토 타케루, 이쿠타 리라, 나리타 료, 모리카와 토시유키 등이 참여했구요.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 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 주인공 스즈.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가상세계 U에 접속하게 되고, 그 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죠. 벨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리기로 한 어느 날, 용의 모습을 한 괴한이 출몰하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모두가 야유하고 도망치던 와중, 스즈의 눈엔 왜인지 모를 용의 상처가 보이는 듯합니다.


 똑 닮은 커다란 눈과 얼굴, '벨'이라는 이름, 외딴 성에서 고독하게 지내며 외부인의 접근을 참지 못하는 괴물까지. 제목에서부터 한 편의 동화를 지향하는 듯한 <용과 주근깨 공주>는 호소다 마모루의 눈으로 다시 쓴 <미녀와 야수>입니다. 거기에 <썸머 워즈>의 디지털 세계와 <괴물의 아이>의 난다고래(?) 등 감독의 팬이라면 눈여겨보았을 소재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여기저기 붙여 놓은 영화죠.



 기본적인 이야기는 과거의 아픔을 안고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한 소녀의 치유와 성장입니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만이 치료해줄 수 있다는 동화적인 메시지에 근거해, 지금껏 쌓아두고 덧나게 내버려두었던 상처들을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의 손으로 어루만지죠. 주근깨 공주 벨과 용, 가상 세계 U 등의 껍데기는 그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가 되겠구요.


 요소와 요소는 따스하고 아름답습니다. 여기서의 요소란 엄마의 죽음 이후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된 소녀의 전진,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는 U의 풍광, 용의 정체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이 모든 것을 관통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OST 등이 있겠죠. 스크린은 클수록 좋겠고, 색채는 선명할수록 좋겠습니다. 시각적인 가치로만 따져도 극장에서 관람할 이유는 확보해 둔 셈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재료들을 갖고 있더라도 결국 그를 기승전결이라는 뼈대에 묶는 것은 각본입니다. 교훈과 거기서 나오는 울림만 전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무모함이 시종일관 존재합니다. 무려 50억 명이 사용한다는 가상 세계 U는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허술하고,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연결은 마치 옆방 문처럼 지극히도 단순하게만 묘사되어 있죠.


 이를 제외하고서라도 마음먹고 트집이라도 잡을라손치면 정말 끝도 없는 목록이 나오는 수준이지만, 언급한 두 가지만으로도 영화에 충분히 치명적입니다. 벨과 용을 제외한, 어쩌면 벨을 제외한 그 누구도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세계가 현실을 대체하고 사람과 사람의 감정과 영혼을 연결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고 또 보여주는 통에 몰입부터가 영 쉽지 않죠.


 은유라고 우겨도 공감의 첫 단추인 몰입부터 시원치않다 보니 이후에 흘러가는 대부분의 감정선도 따라갈 수 없고, 종국에 모든 것을 모아 폭발시키며 감정과 갈등 해소의 퍼레이드를 벌이는 와중에도 이렇다할 동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벨 응원용 NPC나 마찬가지인 전세계인들에게 둘러싸여 노래하는 장면보다 오히려 초반부 엄마가 등장하고 다리 위에서 쓰러지는 장면의 진실성이 더욱 크게 다가오죠.



 다시 말해 가상 세계 U의 주관적인 설득력에 영화의 평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개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홍보하는 세계치고는 그 뼈대부터 다른 이용자들까지 나사가 열두 개씩은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죠. 이를 정말로 하나의 진지한 세계로 받아들일 사람과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 수많은 재료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일 사람의 의견 차이는 필연적입니다.


 비슷한 관점으로 히로, 시노부, 카미신, 루카, 합창단원 등 스즈의 주변인들 대부분은 전체 줄거리의 시점에서 보면 도대체 왜 나오나 싶은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명의 사람이자 조연이라기보다는, 원체 수줍음과 자신감이 반비례해 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스즈가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방아쇠들에 불과하죠. 그 대단하다는 U조차 이들과 똑같은 입지의 재료인 것이구요.



 서로가 서로와 섞여들지 못한 채 성장물을 제외한 그 어떤 부가적인 장르의 재미도 살리지 못합니다. 다른 모든 것이 제 힘을 내지 못하는 와중에도 중심 줄기는 멀쩡히 지켜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물론 소위 '작화'라고 통칭하는 화면 자체나 야심차게 꾸준히 붙이는 OST만으로 눈과 귀의 만족은 챙겼지만, 그 이상을 기대할 이유가 많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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