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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30. 2021

<듄> 리뷰

우주를 견디는 사상누각


<듄>

(Dune)

★★★★


 프랭크 허버트의 1965년 소설을 원작 삼은 블록버스터, <듄>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시카리오>의 드니 빌뇌브가 메가폰을 잡고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작, 제이슨 모모아, 스텔란 스카스가드, 조쉬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데이브 바티스타, 샬롯 램플링, 젠데이아 콜먼 등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는 이름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공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폴. 강력한 권력의 후계자에 조금씩 가까워지던 중, 언젠가부터 아라키스 행성의 이름모를 소녀가 꿈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마침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제국 황제의 명령으로 아라키스를 다스리게 되고, 엄청난 가치를 자랑하는 생산물 탓에 항상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아라키스에서 폴은 더 장대한 운명을 맞이합니다.


 화면이 켜지기도 전에 영어도 뭣도 아닌, 심지어 듣기만 해서는 언어라는 것도 알 수 없는 소리가 메시지 한 줄을 툭 던집니다. 그러더니 아라키스의 모래에선 스파이스도 볼 수 있고, 하코넨이 제국의 부를 장악했다는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다음 장면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폴이라는 청년이 대뜸 등장해서 베네 게세리트의 교육을 받아 아직 영글지 않은 초능력을 사용합니다.



 시작부터 어질어질합니다. 알아볼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예 처음 들어보는 단어와 마주하면 무의식적으로라도 그 단어가 문맥에서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유추해보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기다려주기는커녕 더 많은 단어들을 그 위에 들이부으며 이 영화를 즐기고 받아들일 사람이 맞는지 시험하죠.


 '크다'라는 1차원적인 표현만으로 <듄>의 세계관을 설명하기는 힘에 부칩니다. 캐릭터부터 문명과 행성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창조된 세계입니다. 그 안에서 숨쉬는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과 이유를 가지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죠. 영화화 군침을 흘리기는 딱 좋은 시리즈고, 1984년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 이후 할리우드가 이제는 정말 준비가 됐다고 느끼기엔 37년이 걸렸습니다.



 당장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니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들부터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드니 빌뇌브는 상업성과 예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에 가장 근접한 감독들 중 하나죠. 한 쪽에 만족한 관객들에게 다른 한 쪽의 매력도 분명히 있다고 인정하게 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것이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필요로 하는 문장입니다. 드니 빌뇌브는 여러 영화들을 거치며 본인의 그 가치를 증명해 왔구요.


 아무 것도 몰라도 감탄이 나옵니다. 넓디 넓은 공간을 멀찍이에서 바라보며 풍광 자체에 압도됩니다. 한 화면에서는 색채를 통일해 정돈된 인상을 주고, 그것을 개성 삼아 공간을 분리하죠. 그토록 다양한 곳을 끊임없이 오간다는 사실 자체에서도 영화의 엄청난 규모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구요. 대사 한 마디 없어도 이곳이 하나의 완성된, 그러나 관객들의 것은 아닌 세상임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듄>의 근원적인 힘이 있습니다. 세계관의 매력이죠. <듄>의 화면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비슷한 시도는 어색하거나 어설프고, 유치하거나 과장되곤 합니다. 달리 말하면 보는 사람은 관심도 없는데 자기들끼리만 신나고 진지한 모든 영화들이 여기에 속하죠. <존 카터>부터 <엔더스 게임> 등이 슬프게도 여기에 합류했습니다.


 보통은 당연히 지어낸 게 많을수록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그냥 때려잡으면 되는 상황에 의식이니 전통이니 하는 걸 내세워 봤자 제 3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할 뿐이니까요. 현대의 문명이나 기술도 낙후되지는 않았기에 여기엔 왜 이런 게 없냐며, 혹은 이런 기술을 저렇게 활용하지 못하냐며 따지는 설정 구멍이 생기기도 쉽구요. 와중에 이름까지 우스꽝스러우면 몰입은 더더욱 어렵겠죠.



 예를 들어 '베네 게세리츠의 대모 모히암이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에게 '목소리'를 사용해 무릎을 꿇리고, 곰 자바를 들이대며 상자에 손을 넣으라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듄>의 어느 장면을 설명하든 비슷하게 허랑(?)하죠. 마블 영화를 하나도 안 보고 관련된 단어도 하나도 모르는 입장에서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만나는 장면부터 영화를 보게 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듄>의 재료와 요소들은 서로와 긴밀하게 달라붙으며 틈을 최소화합니다. 자신만의 규칙과 질서를 확립하고, 이는 <듄>의 세계관에서 존재하는 강력한 권력이나 마법력 등이 뒷받침하며 확실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죠. 때문에 그 위에서 뛰노는 인물들의 행동에도 동기가 부여되고, 운명이나 명예 등을 필요 이상의 대단한 가치로 여기는 모습에도 큰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소화력으로 유약하지만 굳은 심지를 숨기고 있는 폴 아트레이데스를 훌륭하게 연기해내고, 언급할 필요도 없는 나머지 배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확보합니다. 젠데이아 콜먼이나 하비에르 바르뎀도 출연 분량만 따지면 특별출연이나 다를 바가 없음에도 강렬한 기억을 남기죠.


 사실 이쯤 되면 <듄>의 장점들이 원작 소설과 영화의 각본 중 어떤 곳에서 기인한 것인지 따지기가 어렵습니다. 원작 칭송만으로 끝을 내기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경험이 군데군데 녹아있는 드니 빌뇌브의 영상미도 영화 <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죠. 다만 원작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 1편부터 '파트 1'을 내세우며 다음 편을 예고한 처지에서 개선을 바라는 구석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액션입니다. 정확히는 주먹이나 근접 무기를 사용한 맨몸 액션이죠. 드니 빌뇌브는 과거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찍고 싶은 대로 다 찍었다가 상업적으로는 완전히 무너져 차기작이 불투명할 뻔했습니다. 그를 인생 모토의 전환점으로 삼았는지, 각본을 상업적으로 뭉개지 않겠다는 자존심은 지키면서도 그를 제외한 곳에서는 어떻게든 대중적이려 용을 썼죠.


 그의 가장 큰 희생양이 액션이었습니다. 우주선은 터져나가고 온갖 흉측한 괴물이나 외계인, 원시적인 유혈 의식이나 제사 등이 등장하는 와중에도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실적이어야 하는 액션은 밋밋합니다. 맞춘 합은 티나고 주먹은 나약합니다. 저렇게 싸우는 아쿠아맨이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빠른 공격이 먹히지 않는 쉴드 설정까지 얹으면 액션 한정으로는 전체 관람가 수준으로 시시합니다.


 게다가 최근 인터뷰에서 드니 빌뇌브는 2편에서 액션의 비중을 상당히 끌어올리리라 선언했습니다.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시리즈에서는 기대를 해야 하지만, 훌륭했던 영화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큰 단점을 전면에 세우겠다는 발언이라 우려를 살 수밖에 없죠. <시카리오>만 봐도 액션 연출에 서투른 감독은 전혀 아니기에, 최소한 15세 관람가 정도는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원작이 어디와 누구에게 영감을 주고 몇억 부가 팔렸으며 누구와 누구가 만났다던 영화화 프로젝트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앞서 쌓아둔 수식어들을 장황한 허언으로 만드는 속 빈 강정에 그쳤죠. 하지만 <듄>은 달랐습니다.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밖, 각본과 카메라가 만든 안까지 한 땀 한 땀 위대한 시작을 알렸고, 다 시작에 불과하다는 마지막 대사와 함께 화면을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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