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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5. 2021

<아네트> 리뷰

니들은 이렇게 하지 마라


<아네트>

(Annette)

★★★


 2012년 <홀리 모터스> 이후 9년만에 돌아온 레오 카락스 감독의 신작, <아네트>입니다.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코티아르, 사이먼 헬버그가 뭉친 뮤지컬 영화죠. 얼마 전 성황리에 마무리된 제 26회 부산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했고, 이를 기념해 레오 카락스 감독의 내한도 이루어졌습니다. 정식 개봉은 오는 27일인데, 영화제 화제작치고는 꽤 빠르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네요.



 예술가들의 도시 LA, 오페라 가수 앤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은 이내 아네트라는 결실의 탄생으로 이어지지만, 이후 두 연인의 행보는 영 다른 노선을 타죠. 결국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연속되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그 한가운데엔 여전히 아기인 아네트가 있습니다.


 여느 예술 영화 감독들이 그러하듯, 레오 카락스 역시 뚜렷한 팬층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 가장 최근 영화인 <홀리 모터스>만 해도 유수의 평론가들과 영화 팬들이 인생 영화라는 극찬을 마지않았던 영화죠. 이토록 강렬한 이끌림을 지닌 예술 영화들은 필모그래피는 물론 감독 개인의 탐독에까지 이르고, 이는 배경 지식이 되어 다음 영화를 감상하는 자양분이 됩니다.



 감독 또한 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일종의 준비를 끝낸 사람으로 인식합니다. 상업 영화 감독들에게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불친절함으로 영화 곳곳을 도배하지만,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들을 기대한 관객들이기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죠. 당연히 진입 장벽이라고 불러야 하는 요소들이 영화의 특색이자 개성이 될 수 있다니, 탐나는 마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아네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엔 극중 캐릭터가 아닌 레오 카락스 감독 본인과 본인의 딸, 그리고 영화의 뮤지컬 넘버를 담당하는 가수 스파크스가 등장하죠. 이제부터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조용히 하고 숨도 참으라는 내레이션과 함께하지만, 이들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다시 등장하거나 언급되지 않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관객들에겐 영문 모를 오프닝이죠.



 막상 본편은 레오 카락스 영화치고는 꽤나 친절하고 직관적입니다. 정상을 달리던 두 예술가가 사랑에 빠져 자식을 갖습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는 한 쪽과 달리 다른 한 쪽의 커리어는 조금씩 흔들리고, 둘의 관계와 각자의 과거사마저 가십으로 소비되며 그 과정엔 가속도가 붙죠. 두 예술 하는 어른들이 내면과 외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아기 아네트는 응당한 자리를 빼앗기고 말죠.


 등장하는 곡들은 십중팔구 해당 캐릭터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농담을 좀 섞자면 거의 게으른 수준으로 1차원적입니다. 나는 지금 너무 슬프고 나는 지금 너무 기쁘다는 등의 직접적인 표현들이 멜로디에만 얹혀 끊임없이 반복되죠. 여기에 조악한 CG와 거친 음향 효과들이 더해지면 마치 고전 그리스 무대에서나 볼 법한(물론 본 적은 없지만) 의도적인 극이 완성됩니다.



 코미디와 오페라라는 두 가지 예술 영역의 차이를 세밀하게 짚어보거나, 예술가라는 단어로 대표할 수 있는 개인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등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엔 단순하고 둔탁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달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아리송할 뿐 그 안에 든 알맹이는 놀랍도록 간단하죠. 이 이질감마저도 애초에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표현되는 아네트의 얼굴에서부터 본능적으로 풍겨오구요.


 여러모로 볼 때, <아네트>는 독립된 영화라기보다는 레오 카락스 감독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옮긴 말 그대로의 매체에 가깝습니다. 아네트는 사랑 넘치는 부모 놀이의 소품에 불과했고, 마침내 흘러나온 목소리로는 헨리가 감히 예상치 못했던 단어들을 꺼내놓았죠. 자신의 진짜 딸과 함께한 첫 번째 장면과 함께 보고 나면 영화는 많지 않은데, 담배 연기로 칼칼한 조언이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영화의 끝에는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재밌게 봤으면 주변에 잘 말해달라고(!) 노래합니다. 의외의 귀여운 면이죠. 9년을 기다려 준 팬들을 향한 팬서비스라고 볼 수도 있겠구요. 어찌됐든 영화 외적인 요소들에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만큼 내실은 부족하다는 말도 맞습니다. 긍정적인 감상이라면 <아네트>가 재밌었다기보단 레오 카락스가 좋았다는 쪽에 가까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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