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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5. 2021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리뷰

진실의 손을 떠난 진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The Last Duel)

★★★☆


 <에이리언: 커버넌트>와 <올 더 머니>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입니다. 당초의 일정대로였다면 11월 개봉 예정인 또 다른 신작 <하우스 오브 구찌>와 딱 예쁜 텀을 두고 개봉되었겠지만, 20세기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작품이죠. 애초에 마케팅 규모에서부터 버린 자식 느낌이 강해 벌써부터 영 아쉽습니다.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 유서깊은 카루주 가문의 부인 마르그리트는 남편 장이 집을 비운 사이,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합니다. 강요받은 침묵에도 불구하고 마르그리트는 자크의 죄를 고발하고, 격노한 장은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 재판을 요청하죠. 세 사람의 운명을 가를 단 한 번의 결투는 그렇게 막을 올립니다.


 여러 장르와 색채가 뒤섞인 작품입니다. <최후의 결투>라는 부제 겸 원제를 따져 보면 액션이나 최소한 드라마의 향기가 가장 짙을 것 같지만, 의외로 <라스트 듀얼>가 가진 재미의 가장 큰 비중은 법정물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벌어지는 진술과 진술의 충돌, 그러면서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 영화의 오락성을 담당하고 있죠.



 이는 꽤나 실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영화는 총 세 개의 장(章)으로 분리되죠. 맷 데이먼이 맡은 장 드 카루주의 진실, 아담 드라이버가 맡은 자크 르 그리의 진실, 마지막으로 조디 코머가 맡은 마르그리트 드 카루주의 진실이 뒤따릅니다. 관객들이 최종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전체 사건은 각자의 시선에서 재현된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는 식입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같은 사건을 다르게 재현합니다. 자신의 공적은 치켜세우고 타인의 허물은 또렷한 인간의 주관을 적극 반영하죠. 카루주는 전장에서 자신이 르 그리의 목숨을 구해 준 순간을 두고두고 기억하지만, 르 그리의 시선에서 재현된 똑같은 장면엔 꽤나 다른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싸운 뒤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대인배의 대사는 각자의 기억에서 스스로가 먼저 건넸다고 기록(?)되어 있는 식이죠.



 하지만 이는 영화의 도착점이 아닌 과정입니다. 진정으로 하고픈 말을 제대로 듣게 하려는, 집중력을 유지하게 하려는 수단에 불과하죠. 왜곡되고 각색되어도 진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극중에서 진실은 응당 누려야 하는 의의를 갖지 못합니다. 정말 피해를 입고 그 피해에 따른 사과와 사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뒤로 밀려난 채, 세상은 전혀 무관한 것들의 동력으로 그를 희생합니다.


 영화는 수백 년 전의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진실의 오용이라는 주제의식은 현대에도 얼마든지 적용됩니다. 신념과 이해관계가 엮이는 순간 필연적으로 파생될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죠. 한 번 수단이 되어 버린 진실에는 슬프게도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습니다. 카루주와 르 그리 중 누구도 아닌, 마르그리트의 머리칼만을 똑 닮은 아이를 쓸쓸히 비추는 화면이 그를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문화계 시류에 충실하면서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고심한 흔적이 뚜렷한 영화입니다. 섣불리 목소리를 드러냈다간 그 내용은물론 방식에도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 덧붙을 수 있는데, 특히나 그 지점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 더 현명한 시선을 택했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며 조지 밀러 감독의 현역 감각에 감탄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러닝타임이 장장 152분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편집본에서 한 시간을 덜어낸 것이라고 하죠. 그래서인지 시어머니 니콜이나 르 그리의 시종 아담 등 할 이야기가 있어 보이는, 그리고 그 내용이 꽤 중요해 보임에도 잘려나간 듯한 조연들이 더러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세 번 반복하는 동안 굳이 또 보여줄 필요가 없어 보였던 장면들도 있었으니 더욱 아깝고 아쉬운 구성이겠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네 번째 캐릭터의 제 4장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듯 싶습니다. 마르그리트의 제 3장이 진실임을 공표하지만, 그러기엔 3장에만 등장하거나 3장에만 빠져 있는 장면들도 있어 관객의 입장에서는 언뜻 수긍이 되지 않죠. 언급한 니콜이나 아담, 혹은 벤 애플렉의 피에르가 4장의 주인이 되었다면 깜찍한 반전이 되었을 텐데요.



 시대를 넘어 현대적 감각을 간직한 고전 소설을 탐독하는 기분입니다.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 벤 애플렉, 조디 코머 등 화려한 배우들의 면면과 연기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후반부엔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으로 여실히 단련된 액션도 기다리고 있죠. 진입 장벽이 없는 영화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렇게까지 홀대받을 영화는 아닌 것도 명확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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