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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1. 2021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리뷰

혼돈은 혼돈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Venom: Let There Be Carnage)

★☆


 2018년 1억 달러를 들여 무려 8억 5천만 달러를 거둬들이는 데 성공한 <베놈>이 돌아왔습니다. <모글리: 정글의 전설> 이후 3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앤디 서키스로 감독이 바뀐 <렛 데어 비 카니지>죠. 톰 하디, 미셸 윌리엄스, 우디 해럴슨, 나오미 해리스, 스티븐 그레이엄 등 전편의 주인공들이 그대로 돌아오고 새로운 악당들이 합류했습니다. 국내엔 지난 13일 개봉되었네요.



 외계 기생충 베놈과 완벽한 파트너가 되어 사형수 클리터스 캐서디의 미제 사건까지 해결하게 된 신문기자 에디 브록. 그러나 그 과정에서 캐서디에게 베놈의 일부를 빼앗기고, 연쇄살인마의 광기와 합쳐진 기생충 심비오트는 '카니지'라는 더욱 강력하고 잔인한 괴물로 탈바꿈합니다. 그렇게 대혼돈과 대학살이 예고된 가운데 에디와 베놈은 다시 한 번 힘을 합치기로 하죠.


 사실 1편도 그리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베놈이라는 캐릭터는 이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에서 이미 다들 한 번씩 본 바 있고, 마블 유니버스와 그에 도전하는 수많은 영화들로 인해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반적인 수준도 상향 평준화되어 있던 상태였죠. 그러나 전편은 마치 2000년대 초반의 만화책 기반 영화들로 회귀한 듯한 분위기와 기승전결을 특징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그 이유로 1편을 좋아했던 팬들도 있었습니다. 시종일관 선과 악을 따지거나 자아 어쩌구를 탐색하는 등 무겁지 않고, 그저 엄청나게 센 만화 캐릭터가 나와서 다 썰어먹는 단순함을 마음에 들어할 수도 있었죠. 엄청 무섭게 생겨서는 사실 본인이 고향 행성에서는 찐따(...)라던 베놈의 반전 매력도 한몫을 단단히 해냈구요. 어찌됐든 결과적으로는 막대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지만요.


 이번 2편은 그런 1편의 정신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간단명료했던 107분의 러닝타임은 더 줄어 97분이 되었죠. 인물과 갈등은 늘었는데 러닝타임은 줄었으니 그만큼 빠른 전개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1편의 흥행을 보고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재미있게 보았는지 파악했다고 생각한 앤디 서키스는 정말 그것들에 충실한 속편을 만들고자 했죠.



 슬프게도 그 결과물은 꽤나 충격적입니다. 앤디 서키스씩이나 되는 경력의 소유자가 찍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화면이 97분 동안 펼쳐지죠. 기본적인 화면 구성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과한 클로즈업들을 재료로 아주 엉망진창인 유튜브 영화 요약 영상을 보는 듯한 리듬이 극을 지배합니다. 도대체가 연결고리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설득력으로 장면과 장면들을 되는대로 스크린에 집어던지죠.


 특정한 인물을 영화에 등장시키면서 필요한 모든 조건들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떤 동기와 이유로 어떠한 행동들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이 사람 잘 알지 않냐며 코밑에 들이대서는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일삼는데도 당황하지 않는 것은 카메라 렌즈뿐입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왜 벌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도 어느 하나 설명하는 것도 없습니다. 전편에서는 베놈과 라이엇 등 다른 개체들로 존재했던 심비오트의 분열처럼 영화의 근간이 되는 설정부터, 촉수를 노트북에 꽂으면 전 세계 모든 정보를 해킹할 수 있는 카니지의 능력 등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한 상황에 냅다 전진도 아닌 질주를 해 버리니 이해할 여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죠.



 나오미 해리스의 프랜시스나 스티븐 그레이엄의 멀리건 등 조연으로 합류한 뉴페이스들은 가뜩이나 짧은 러닝타임에도 마치 억지로 끼어든 불청객 신세를 면치 못하며 영화의 설득력과 완성도를 또 다시 부숩니다. <베놈>이 아닌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들에도 부록처럼 슬쩍 붙여도 티나지 않을 몰개성으로 배우와 캐릭터의 잠재력을 무용으로 돌립니다.


 메인 악당의 자리임에도 분위기 잡겠다고 고전 시구같은 말들이나 읊어대는 캐서디도 어디서 본 걸 어설프게 흉내내는 악인에 그치고, 줏대라곤 없이 베놈의 껍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에디와 그런 에디의 비상 탈출용 연인 앤도 부족했던 전편보다도 퇴보했습니다. 그런 둘이 브레이크도 없이 징징대는 베놈과 보여주는 합도 보잘것없을 수밖에 없죠.



 정말로 남은 건 전 세계의 팬들을 열광시킬 쿠키 영상뿐입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예고했던 2013년의 <더 울버린>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그 영화가 쿠키 영상을 위해서라면 그래도 참고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면 이번 <렛 데어 비 카니지>는 그냥 쿠키 영상만 따로 보는 게 훨씬 이롭습니다. 여기저기 걸린 이름들이 이토록 무색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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