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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19. 2021

<투게더> 리뷰

이 시국 우리


<투게더>

(Together)

★★★


 <빌리 엘리어트>, <더 리더> 등으로 이름을 알린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신작, <투게더>입니다. 제임스 맥어보이와 샤론 호건이 공동 주연이자 부부로, 아역배우 사무엘 로건이 그들의 아들로 등장하죠. 특이하게도 이 셋을 제외하면 그 어떤 조연이나 단역배우도 등장하지 않는 영화인데, 제작 의도와 줄거리를 보면 그럴 이유가 없지는 않습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각자의 집에서 반강제 격리를 당하게 된 영국인들. 평소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훨씬 많아졌고, 그러면서 전이라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것들도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서로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잠시, 일상의 모든 것이 다툼의 시작점이 된 한 부부의 성토가 이어지죠.


 엔딩 크레딧에도 'he'와 'she'로 표기되는 남녀가 90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번갈아 가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당연하게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는 통에 지금 이 연출이 소위 말하는 제 4의 벽을 깬 것인지 아니면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지향하는 것인지조차 쉽게 짐작할 수 없습니다. 관객들은 이들의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카메라 렌즈 사이의 어딘가에서 이들을 바라보게 되죠.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그저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오늘 무엇을 했고 옆집에 누가 뭘 어쨌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 같다, 는 내용의 독백 혹은 인터뷰가 연속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한 락다운 경과일, 그리고 짤막한 사망자 및 백신 접종 통계들을 사이에 집어넣으며 시간의 흐름을 대신하죠. 영화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찬찬히 조명합니다.


 영화지만 영화가 아닙니다. 영국의 한 부부 이야기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일상이 사라지고 그 사라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부르짖은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제는 이것이 새로운 일상이라는 주장은 점점 힘을 얻고 있고, 이미 세상의 많은 부분은 그를 인정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 것 같죠. 어쩌면 언젠가는 일어났을 변화가 그저 아주 빨리 일어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극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개인이 개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리고 딱히 적극적으로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당황하고, 화를 내고, 엉뚱한 곳에 감정을 분출합니다. 내심 누군가는 명확한 답이나 길을 제시해 주길 바라지만, 누구에게도 감히 그럴 권한이나 근거도 없는 것이 현실이죠.


 그렇다면 의지할 만한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의 곁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항상 옆에 있어서, 오히려 항상 옆에 있다는 이유로 멀어지길 바랐던 사람이죠. 나처럼 엉망인 사람을 받아 줄 사람은 사실 처음부터 그럴 것까지 예상하고 함께해준 바로 그 사람뿐입니다. 바깥 세상의 이유가 뭐가 됐든, 죽도록 싫기만 했던 함께의 가치는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죠.



 문장으로 정리하면 마치 <투게더>가 새삼스러운 로맨스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상당히 건조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대부분의 대화는 부부가 서로와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한 명씩 앉아 카페에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듯 나오는 개인의 단어들이기 때문이죠.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임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며 둘의 관계 양상을 읽게 됩니다.


 후반부로 접어들면 영화는 꽤 본격적인 메시지를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한 명씩 앉아있던 부부는 이제 함께 앉아 카메라를 쳐다보는데, 허술하고 어설픈 영국 정부의 대처는 실망스럽고 아직까지도 마스크나 백신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좌절스럽다며 푸념합니다. 아마도 감독은 물론 배우들 본인이 스크린을 넘어 하고 싶었던 말들이겠죠.


 제임스 맥어보이와 샤론 호건은 소극장 연극용이나 다름없는 각본을 이끌어가는 거의 유일한 동력입니다. 사실상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없고, 유머가 있다거나 풍자가 탁월한 등 대사에 맛깔이 나는 것도 아니죠. 그렇다고 연기력을 힘차게 발산할 클라이막스가 있지도 않아 오로지 배우의 힘으로만 극을 꾸려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배우를 향한 팬심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봐야겠죠.



 근래 나온 어떤 영화보다도 시류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바이러스나 판데믹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B급 액션부터 일상물까지 다양했지만, 이처럼 바로 옆집 부부를 취재한 듯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죠. 나아가 현재의 시국이 아니었다면 영영 존재할 수 없었던 영화였을 거구요. 뭐가 됐든 다 함께 뒤가 아닌 옆을, 그리고 앞을 보고 싶다는 희망과 열망만큼은 충분히 전달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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