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Oct 19. 2021

<더 길티> 리뷰

연결이 되지 않아


<더 길티>

(The Guilty)

★★★


 독특한 소재와 마케팅으로 영화 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2019년 덴마크 영화 <Den Skyldige>가 할리우드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더블 타겟>, <더 이퀄라이저>, <백악관 최후의 날> 등 오락 영화의 대가가 된 안톤 후쿠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동명의 리메이크작, <더 길티>죠. 제이크 질렌할을 원톱 주인공으로 폴 다노, 에단 호크, 피터 사스가드 등이 목소리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모종의 사건으로 좌천되어 긴급 신고 센터에서 근무하게 된 경찰 조 베일러. 도심에 큰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여느 날처럼 별 일 아닌 전화들이 쏟아집니다. 멍하니 하나둘 받아 넘기던 조에게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려오죠. 정황상 납치된 듯 하지만, 납치범이 바로 옆에 있는 탓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는 에밀리의 전화와 함께 조의 하루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극소수의 주인공들이 이끌어갑니다. 제임스 프랑코의 <127시간>, 라이언 레이놀즈의 <베리드>, 톰 하디의 <로크> 등 의외로 화려한 이름들이 한 번씩은 거쳐가곤 하는, 장르 아닌 장르물이죠. 시각적으로 보여줄 것은 많지 않기 때문에 쉽게 사라져 버리는 관객들의 집중력을 열심히 붙잡아 두어야 하고, 때문에 각본의 순수한 재미와 배우의 연기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신고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납치를 당한데다 납치범과 함께 있는 탓에 경찰에게 넘겨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한정되어 있고, 그를 토대로 실시간으로 도망치는 차를 추적해야 합니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화면을 조와 센터에만 유지한 채 그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소리와 짤막한 상상으로만 대체하며 사건의 긴장감을 높게 유지하죠.


 이를 보면 2G폰으로 용을 쓰던 크리스 에반스의 <셀룰러>나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할리 베리의 <더 콜>도 비슷한 분류로 묶을 수 있겠지만, <더 길티> 쪽은 상업성과 작품성의 무게추에서 후자 쪽에 더 크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시원시원하고 단순해 누가 보아도 한 눈에 이해하기 쉬운 길 대신 관객들로 하여금 퍼즐의 조각들을 스스로 맞추는 기회를 주려 노력합니다.


 이 지점이 바로 <더 길티>가 내세운 두 번째 재미입니다. 납치 사건 자체도 지금 돌아가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더 있다는 불길함 내지는 찝찝함을 꾸준히 흘리는 가운데, 주인공인 조는 극중 모두가 알고 있지만 관객들만 모르는 어떤 사건의 후폭풍을 겪고 있습니다. 일에 발작적으로 집중도 하지 못하고, 주변 인물들은 걱정 혹은 괄시라는 정반대의 감정이 섞인 눈으로 조를 바라보죠.



 그 중심엔 <엔드 오브 왓치>, <프리즈너스>의 경찰 짬(?)과 <나이트크롤러>의 1인극 에너지를 모두 겸비한 제이크 질렌할이 있습니다.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란 눈으로 전달하는 감정은 비록 여느 전작들처럼 세심하지는 못하지만 충분한 힘이 있죠. 최소한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배우를 기용한 이유를 증명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본인의 몫은 다 해 주었죠.


 그러나 상업성과 작품성의 극단에서 항상 전자를 택해 왔던 안톤 후쿠아의 리메이크는 꽤나 거칩니다. 세심한 터치보다는 큼직큼직한 덩어리로 인물들을 대하죠. 은은하기보다는 폭발적인 효과를 즐기는데, 때문에 캐릭터들의 행동이 상당히 둔탁하게 연결된다는 인상이 잦습니다. 뭐든 과하게 반응하니 감정과 감정의 연결도 딱딱하고, 사건이 아닌 인물 위주로 보여주는 화면 탓에 이 당황스러움은 더 커지죠.



 여러모로 할리우드식 매무새가 짙고, 함량은 영화의 결말부와 가까워질수록 점점 높아집니다. 어차피 끝내 오락영화의 속내를 감추지 못할 것이었다면 굳이 한두 번 꼬거나 집중을 어렵게 하는, 도심 화재나 상관의 교훈적 대사 등은 쳐내는 것이 훨씬 깔끔했을 듯하죠. 물론 잔가지들을 당장 없앤다고 해서 줄기나 뿌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