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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19. 2021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 리뷰

시간 태우는 넷플릭스 클리셰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

(Attack of the Hollywood Clichés)

★★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겠지만 어쩌다 눈 앞에 틀어다 놓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보게 되는 것들이 있죠. 골라서 누를 일은 없지만, 학교에서 틀어 주거나(?) 먼 길 가는 비행기 안이라면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난 9월 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제목부터 아주 허랑방탕한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이 바로 그런 다큐멘터리였죠.



 밥 로우를 호스트로 내세워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할리우드에서 사랑해 마지않는 클리셰들을 다룹니다. 클리셰란 쉽게 말해 영화에서 사용하는 안전한 공식들로, 너무나도 효과적이거나 안정적이어서 장르를 불문하고 다들 한 번쯤은 볼 수밖에 없었던 장면이나 설정들을 가리키죠. 마지막 한 방을 남겨두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주인공 손에 당하는 악당 등이 대표적입니다.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은 언급한 것과 같은 클리셰 소재들을 하나씩 꺼내놓으면서 거기에 맞는 사례들을 나열합니다. 흑백 무성 영화에서부터 최신 마블 영화에서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최첨단의 발전을 거듭하는 업계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장치들이죠. 평론가나 감독, 배우들을 한 명씩 앉혀놓고 해당 클리셰들에 대한 감상도 두어 마디씩 듣습니다.



 본토의 영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딱히 알 리가 없지만, 종종 나오는 플로렌스 퓨, 앤드류 가필드, 리차드 E. 그랜트 등의 익숙한 얼굴들을 보면(어떤 기준으로 뽑아서 데려다 놓은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반갑습니다. 그마저도 '미국 땅에서 활동하는 영국 배우'라는 타이틀로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리차드 그랜트의 이야기는 톡톡 잘라내서 아쉽기도 하구요.


 다큐멘터리인지라 딱히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목 그대로 '클리셰 사전' 쯤을 지향하는 영화라 정말 나열과 반복에 불과합니다. 여성 캐릭터들은 도망갈 때도 하이힐을 신는다, 전쟁터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꼭 죽는다 등의 소주제들과 사례들이 이어지죠. 가끔씩은 특정한 클리셰를 최초로 시도한 영화를 보여주며 흥미를 끌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저작권 문제인지 사례조차 부족하기도 합니다.



 꽤나 무의미한 영상입니다. 유튜브에 간단한 검색어만 넣어도 기업은커녕 개인 단위에서 같은 주제로 훨씬 흥미로운 영상이 차고 넘칩니다. 굳이 굵직한 호스트와 인터뷰 대상자들까지 뽑아 가며 편집할 이유를 조금도 찾을 수 없죠. 시작할 때쯤엔 당연히 그런 양산형 영상들보다는 좀 더 질이 좋거나 업계 관계자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알맹이라고는 찾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현실이었다면 바로 정색하거나 신고까지 할 극중 남성들의 행동들이 영화에서는 굉장히 로맨틱하게 묘사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싫다는데도 계속 구애를 한다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설레는 말을 하는 예시 장면들이 이어지죠. 그 뒤엔 여성 기자와 평론가, 배우가 앉아서 성별이 바뀌면 보통 악한 캐릭터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며 참 이상하지 않냐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그런데 그 예시로 등장하는 영화들은 <노트북>과 <트와일라잇>입니다. 어떤 영화들보다도 여성 지지층이 두터운 영화들이죠.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였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수요와 공급의 문제나 할리우드의 불가피한 상업성, 혹은 최소한 그를 이제서야 문제시하게 된 시류 등을 다루어야 맞겠지만, <할리우드 클리셰의 모든 것>은 먹잇감을 던져준 채 자신은 한 게 없다며 뒤로 슥 빠져나가려 합니다.


 이런 단순한 접근의 뻔한 문제는 유튜브 댓글에서나 지적할 만한 내용입니다. 영화 팬들이 클리셰라고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사실은 클리셰였다거나, 항상 클리셰라고 부르는 똑같은 장면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실은 조금씩 바뀌었다거나, 장르나 감독에 따라 클리셰의 기승전결이 다르다는 등의 참신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죠. '모든 것'의 범위가 참으로 옹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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