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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30. 2021

<고장난 론> 리뷰

우린 깐부잖아


<고장난 론>

(Ron’s Gone Wrong)

★★★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폐업 이후 디즈니에 인수된 20세기 폭스 스튜디오를 통해 개봉하게 된, 정말 험난하게 극장가에 찾아온 <고장난 론>입니다. 그래서인지 감독란에만 <아서 크리스마스>의 사라 스미스, <숀 더 쉽>의 장 필립 바인, <캡틴 언더팬츠>의 옥타비오 로드리게즈까지 세 명의 이름이 올라 있죠. 잭 딜런 그레이저,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올리비아 콜먼, 에드 헬름스 등이 더빙을 맡았구요.



 최고의 장난감이자 친구인 인공지능 애완 로봇(?) '비봇'이 도래한 세상, 비봇이 없는 10대에게 일상생활이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바니는 오늘도 비봇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죠. 마침내 생일선물로 비봇을 갖게 되지만, 만능이나 마찬가지인 다른 비봇들과 달리 나사가 열두 개쯤 빠진 듯한 바니의 비봇 론은 엉망진창인 모험으로 바니를 이끕니다.


 소심하고 괴짜지만 속은 착하고 진실된 얼빵이 주인공, 그의 속을 알아보고 세상으로 나서게 도와주는 이종족(?) 친구. <월-E>, <드래곤 길들이기>, <라따뚜이>, <빅 히어로>, <주먹왕 랄프> 등 생각나는 이름은 많습니다. 스튜디오를 막론하고 가슴 따뜻한 애니메이션 만들기에는 이보다 적격인 소재도 찾기 어렵죠. 갈등의 유발부터 종족을 넘어선 우정까지, 설정이 설정을 낳는 구성입니다.



 개중에서도 <고장난 론>은 어려운 길을 가려 하지 않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쉬운 길만 가려고 합니다. 당장 극중에서 묘사되는 비봇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비봇은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분석해 SNS에 올리며 '친구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세부적인 기능이고 자시고는 끌 수도 없고, 그냥 일방적으로 제 3자끼리 취향과 관심사가 맞으면 친구가 될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물건이죠.


 비봇을 갖고 있는 주변 친구들도 딱히 정상인이 없습니다. 비봇에 정신이 팔려 가식과 거짓으로 겉을 둘둘 싸매고 있죠. 좋아요 수와 스트리밍 시청자 수에 목숨을 겁니다. 이를 팔아먹는 기업인들은 당연하고, 선생이나 부모 등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캐릭터는 영화를 통틀어 바니네 집안뿐이죠. 바니는 그 사이에서 비봇이 없는 나날에도 꽤 의연한 태도를 유지해 왔구요.


 인품이 완성되어 있으니 남은 건 세상을 향할 용기뿐입니다. 바니의 비봇 론은 그 다리 역할을 해 주는 캐릭터구요. 론이 비정상이라고 하지만 어째 보다 보면 눈치도 없고 개념도 없는 건 다른 비봇들인 것 같습니다. 영화의 메시지가 들어맞는 듯 들어맞지 않는 듯 아슬아슬 선을 걸치지만, 애니메이션 특유의 깜찍함과 귀여움으로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시하지 않게 되죠.



 전반적으로 펼쳐 놓은 세상의 규모치고는 벌어지는 사건의 규모가 작습니다. 세상을 뒤덮은 최첨단 기계의 문제를 다루는데, 동네 하나와 사람 두어 명이 투닥거리니 남은 세상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궁금하달까요. 모 과일 기업의 현 회장님을 매우 닮은(...) 악당의 계획도 크게 신선할 것은 없고,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법칙을 따르기 위한 바니와 론의 다툼도 꽤 인위적이구요.


 무엇보다도 영화가 교훈을 남기는 과정에서 비봇의 존재 자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분명 처음엔 사람과 사람이 우정을 쌓는 데 비봇이라는 제 3자 혹은 껍데기의 강제적인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풍자하는 것 같았는데, 후반부엔 우정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비봇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며 우정엔 공식이 없다는 다른 결론에 다다르죠.


 각본의 조각들이 정말 딱딱 맞아떨어지려면 이제 론이나 비봇의 도움 없이도 용기를 내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지며 취향을 공유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야 맞습니다만, 실컷 보여준 비봇들을 죄다 폭파시킬 수는 없으니 부득이한 선택이었겠죠. 어찌됐든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우정의 첫 단추라는 사실은 보여주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가족 단위로 보기에는 무난하고 안전한 선택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귀여운 비봇들은 몸개그에도 능하고, 품에 안으면 쏙 들어오는 사이즈도 앙증맞죠. 과정이야 어찌됐든 친구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 자체가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겠구요. 위에서 언급한 동종 영화들이 없었다면 좀 더 나은 평가를 내릴 수도 있었겠지만, 상위 호환 자리를 가져가는 영화들이 벌써 꽤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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