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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07. 2018

<베놈> 리뷰

너의 췌장을 먹구시펑


<베놈>
(Venom)
★★☆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가 무리한 야심으로 자멸해버린 이후, 베놈이라는 캐릭터를 다시 보기까지 11년이 걸렸습니다. 원작 시리즈에서의 대단한 인기에도 불구, 주인공인 스파이더맨이 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던 탓이죠. 스파이더맨의 성공이 마블 스튜디오와의 협업 덕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소니는 과감하게도 <베놈>을 솔로 영화로 출범시켰습니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열혈 기자 에디 브록. 거대 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뒤를 쫓던 그는 이들의 사무실에서 외계 생물체 '심비오트'의 기습 공격을 받게 됩니다. 심비오트와 공생하게 된 에디는 한층 강력한 존재인 베놈으로 거듭나고, 악한 존재만을 상대하려는 에디의 의지와 달리 베놈의 본능은 사방에 뻗치려 하죠. 설상가상으로 베놈과 함께 도착한 심비오트의 계략은 에디를 포함한 모두를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베놈이라는 원작 캐릭터, 포스터, 예고편, 줄거리까지. 이번 영화는 <베놈>이라는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에 모두가 기대했을 기승전결을 준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보다는 악에 훨씬 가까운 존재와 본의 아니게 공생하게 된 주인공이 그 힘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는 과정을 말이죠. 팬들은 어둡고 진중하며 무거운 무언가를 기대했습니다. 지금 세상에 슈퍼히어로는 충분히 많다던 선언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베놈>은 그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립니다. 영웅과 악당 사이에서 갖는 고뇌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구를 어떻게 멈춰서 세상을 구하자는 평범하고 흔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옵니다. 첫 번째 난관입니다. 아닌 척은 있는대로 다 해놓고 까 보니 아닌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진부합니다. 반대쪽에서 균형추를 향해 달려오더니 중간 지점을 넘어섭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원작이 있다 한들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베놈>은 그를 꺼내놓고 전개하는 방식도 다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두 번째 난관입니다. 극점에서 반대 극점으로 옮겨 가는 베놈의 변화는 더 이상 딱딱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급진적이어서 그 진의를 의심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지속적인 단순함과 유치함으로 그 의심마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좀 더 깊은 의도를 품을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습니다.

 에디도, 드레이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큰 폭의 변화를 맞이하는데, 그를 뒷받침할 동기는 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랬던 누군가가 불과 몇 분 사이에 전혀 다른 태도로 일관합니다. 얘가 왜 이러나 싶을 새도 없이 준비한 액션과 감정선을 마구 꺼내놓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는 단서까지 죄다 그러모아 빈 틈을 맞추어야 합니다. 



 덩어리는 많으나 연결고리는 모자랍니다.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결과만 던져 주고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빈약한 설정들은 각본이 흘러가는 대로 편하게 부정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져봤자 제대로 대답해줄 수도, 대답해줄 필요도 없는 존재라며 자신을 낮춥니다. 베놈이 귀엽기까지 한 베놈 영화에 엄격한 사람이 손해라는 눈빛을 계속해서 보냅니다. 얻을 수 있는 결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건 도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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