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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22. 2018

<안시성> 리뷰

특출히 요란한 빈 수레


<안시성>
★★★


 <물괴>, <명당>에 이어 추석은 역시 사극임을 증명해 보이고픈 NEW의 신작, <안시성>입니다. 무려 185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전쟁 영화라는 타이틀부터 동시기 경쟁작들과 차이를 보이죠. <찌라시: 위험한 소문>의 김광식 감독이 4년만에 내놓은 신작이며, 조인성, 박성웅, 배성우, 남주혁, 엄태구, 설현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행히도(?) LA에 있는 CGV에도 제때 개봉을 해 주었네요.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당 태종은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의 변방 안시성을 침공합니다. 안시성의 성주인 양만춘은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반역자 취급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죠. 고국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 20만 명의 대군과 맞서는 안시성의 병사는 5천 명에 불과합니다. 40배의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만춘과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전사들은 당나라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죠.

 전쟁 영화라고 해서 다 같은 전쟁 영화가 아니죠. 스케일과 액션으로 밀어붙이는 종류가 있는가 하면, 참상과 잔혹함을 바로 옆에서 그리는 종류도 있습니다. <안시성>은 시작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 전자임을 확실히 밝힙니다. 영웅이 탄생하고 업적이 완성되는 전장은 하나의 무대가 됩니다. 안시성과 성주 양만춘을 신화의 재료로 만들겠다는 준비를 단단히 합니다.

 액션에 굉장한 공을 들였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 <300> 등 동종 작품들의 장점을 이리저리 섞으려 노력합니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일부 장면들은 시퀀스의 시작과 동시에 순간의 눈요기를 기대하게 할 만큼 매끈합니다(얼마 전 <신과 함께: 인과 연>에서 해원맥의 액션 씬이 이렇게 연출되었어야 했습니다). 자칫 늘어질 수 있는 공성전의 호흡을 액션의 힘으로 유지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등가 교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캐릭터의 힘을 빼앗아 액션에 밀어넣은 모양입니다.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이 액션에 휘릭휘릭 투입된 인물들이 쉬는 시간을 틈타 들이미는 감정선은 이입이 영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나치게 전형적입니다. 이럴 것 같은 사람은 이렇고 저럴 것 같은 사람은 저렇습니다. 도끼를 쓰는 인물은 거칠고 산발인 등 외모마저 교과서적이기에 기시감이 더합니다.

 신파가 들어갈 조금의 기회도 놓치지 않습니다. 후반부 토굴 씬은 억지 신파극 조성에 일가견이 있는 충무로 감독들의 것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입니다. 부족한 사료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동원한 상상력은 금방 한계를 드러냅니다. 여러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서로와 엮이는 것이 아니라, 러닝타임을 때우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정해진 순서대로 수행합니다. 결국엔 안시성 전투와 영웅 양만춘 사이에서도 어영부영 초점의 결단을 내지 못합니다.



 경쟁작인 <명당>과 <물괴> 모두 배역이나 영화 자체에 영 맞지 않는 배우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수는 <안시성>이 더 많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뚝뚝 끊기는 흐름에 얹히니 액션을 제외하면 내놓을 점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순수히 액션만으로, 최소한 충무로에서는 일정한 지표를 세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작들이 걷게 되는 가장 흔한 길이 액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데 성공합니다. 적어도 명절엔 훌륭하기보다 볼만한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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