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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20. 2018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리뷰

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Christopher Robin)
★★★★


 곰돌이 푸라는 캐릭터가 세상에 등장한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푸를 소재로 한 영화가 1년 간격으로 연속 개봉되었습니다. 도널 글리슨과 마고 로비가 주연을 맡은 작년 말의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은 귀여운 캐릭터 뒤에 숨겨져 있던 작가와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그렸죠.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2차 시장으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1년 뒤인 지금 굿바이가 사라진 <크리스토퍼 로빈>은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라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네요.



 푸와 친구들 덕에 모험으로 가득한 유년 시절을 보낸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로빈은 어느새 어른이, 가장이 되었습니다. 놀고먹는 상사 밑에서 뒤치다꺼리나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추억으로 잊고 있던 푸와 마법처럼 재회하죠. 그러나 이제는 빨간 풍선보다 일거리가 잔뜩 든 서류가방이 몇 배는 중요해져 버린 그에게 푸는 불청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친구들 찾는 걸 도와 달라는 푸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는 <월드 워 Z>의(!) 마크 포스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입니다. 이완 맥그리거, 헤일리 앳웰, 마크 개티스 등 인간 출연진(...)도 화려하지만, 무엇보다도 원조 곰돌이 푸인 짐 커밍스가 푸와 티거의 목소리를 연기했죠.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 푸를 연기한 배우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정글 북>에서 소년을 유인해 잡아먹으려던 뱀 카도 맡았다는 사실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영화의 감상은 순전히 곰돌이 푸에게 갖고 있는 개인적인 애정에 비례합니다. 티저 예고편에서 수십 년만에 다시 만난 크리스토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주름만 조금 늘었지 그대로인걸?'이라던 푸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면 그걸로 끝입니다.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수줍게 이어나가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애정과 사랑으로 감싸안을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기승전결은 단순합니다. 일에 치여 가족부터 동심까지 좋은 것이라고는 다 잊고 살던 크리스토퍼 로빈이 푸와 친구들을 다시 만나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이죠. 교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캐릭터들은 과장되어 있습니다. 자신만 바라보는 것은 물론 소위 '지구 뿌시도록' 귀여운 푸를 크리스토퍼는 너무하다 싶도록 귀찮아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기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찌르는 푸의 말에 감화되어 자신과 삶을 전혀 새로운 곳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크리스토퍼 로빈입니다. 풍선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가 바로 그 때처럼,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는 푸는 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최대 역량을 발휘합니다. 그 모습마저도, 방식마저도 푸의 것이기에 한껏 따스합니다. 푸와 같은 친구가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본연의 선함으로 그 주변마저 녹이는 푸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위로가 됩니다.



푸: "What day is it?"
크리스토퍼: "It's... today!"
푸: "My favorite day."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가 선사하는 눈물은 오로지 푸이기에 가능합니다. 눈만 바라보고 있어도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것들은 죄다 씻어내릴 듯한 푸의 마법입니다. '소확행'이 일종의 유행이 된 지금 이 시기엔 더없는 시너지를 냅니다. 글을 쓰면서도 대사들을 곱씹으면 흐뭇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공식 제목이 <크리스토퍼 로빈>의 완벽한 현지화라는 데엔 아직도 완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곰돌이 푸를 다시 만나 행복한 것도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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