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Dec 22. 2021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듬성듬성 동문회


<매트릭스: 리저렉션>

(The Matrix Resurrections)

★★☆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야기들까지 파내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 기어이 워쇼스키의 <매트릭스>도 18년 만에 네 번째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언니인 라나 워쇼스키가 메가폰을 잡고 키아누 리브스와 캐리 앤 모스가 복귀했죠. 거기에 야히야 압둘 마틴 2세, 제시카 헨윅, 조나단 그로프, 닐 패트릭 해리스, 제이다 핀켓 스미스, 프리앙카 초프라, 크리스티나 리치, 램버트 윌슨 등이 함께했습니다.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비디오게임 시리즈 <매트릭스> 3부작의 제작자인 토마스 앤더슨. 이제 슬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바로 그 때, 자신의 게임 속 캐릭터들이 현실로 튀어나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매트릭스에서는 모두를 구원할 네오의 귀환을 염원하고 있으며, 일생일대의 사랑인 트리니티 또한 기계들의 포로로 자신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죠.


 지나치게 긴 시간은 전편들의 후광을 진입 장벽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십수 년의 간격을 두고 속편을 만들어낸 시리즈가 <매트릭스>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다른 시리즈들은 전편의 관람을 필수 전제 조건으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관람하는 세대도 당연히 다를뿐더러, 설령 제아무리 당시에 열광했던 팬이라고 하더라도 한 편 한 편의 디테일까지 기억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 <리저렉션>은 용감하게도 문자 그대로 3부작의 속편을 자처했습니다. 아주 잠깐씩의 회상으로 기억을 돕기는 하지만, 특정 등장인물이나 대사의 재등장에서만 이따금씩 활용할 뿐이죠. 네오와 트리니티가 어떤 모험을 겪었고 어떤 이유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시온 전쟁이 어떤 세력이 어떤 걸 두고 싸웠는지 등 은근히 세세한 것들까지 알고 있지 않다면 꿀 먹은 이방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까지 준비되었다고 하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길 기대할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트릭스> 3부작은 여러모로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시리즈인 탓이죠. 평가가 어찌됐건 화면으로나 각본으로나 매트릭스 시리즈는 대담하고 혁명적이었습니다.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렇게 난해한 각본으로 커다란 상업적 성취를 이루어냈으니, 특유의 마력이 있음은 인정해야 하겠죠.



 그렇게 된 이유는 각자 다양한 분석이 있겠지만, 크게는 시대를 앞서간 액션과 자유 의지를 둘러싼 철학이 있겠습니다. 허리를 꺾어 총알을 피하거나 날아다니는 두 사람의 충격파가 온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등, 전자만 해도 수없이 많은 창작물의 모태를 제공했죠. 빨간 약과 파란 약으로 상징되는 후자는 매트릭스라는 공간 자체가 안주하는 현실에서 껍질을 깨고 나선 곳이라며 무한한 담론을 낳았구요.


 그런데 이번 <리저렉션>은 그 이상은커녕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도 준비해 두지 않았습니다. 네오와 트리니티를 비롯한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보는 것도 좋고, 2020년대의 발전된 기술력으로 매트릭스 세계관의 지금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뿐이죠. 액션도 철학도 없이, 현실을 자각한 네오가 트리니티를 구하러 간다는 단선적인 전개로 장장 148분을 돌파합니다.



 물론 일부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매트릭스와 현실을, 운명과 자유 의지를 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난 3부작에서는 깊게 파다못해 알아듣지도 못할 수준에 다다랐던 논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재탕하는 것에 불과하죠. 거울 문이나 뒤바뀌는 중력 등 몇 안 되는 시각적 무기 역시 과거의 재활용에 불과하니, 굳이 시리즈를 부활시켜가면서까지 보여줄 무언가는 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흥미로운 접근으로는 스크린이라는 제 4의 벽을 깨는 듯한 장면들이 있겠습니다. 매트릭스를 게임 시리즈로 상정한 채 실제 워너브라더스는 물론 3부작의 제작자와 등장인물들까지 들먹이는데, 어렵기로 소문난 기존 3부작의 무한하지만 말도 안 되는 해설들을 보고 질려 버린 감독이 난이도를 확 낮추어 모범 답안 내지는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처럼 보이죠.



 특히 3부작 내내 메시아의 역할을 해냈던 네오가 염력 정도를 겨우 끌어내 상대적으로 노쇠한 액션으로 일관하는 반면, 트리니티가 떨어지는 그의 손을 붙잡고 비상하는 연출은 래리 워쇼스키에서 라나 워쇼스키가 된 감독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침 극중 애널리스트가 네오에게 창작자는 자신의 삶을 창작물에 녹여내게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하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의 막을 열고 끝이 났어야 하는 이야기를 잡아늘이고, 늘어지며 생긴 빈 자리에는 동어 반복이나 다를 바 없는 대화를 입만 바꾸어 나열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속편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설명 없이 설정만 들이밀고 지나가는 순간이 많아 곧이곧대로 이해하기는 어렵구요.



 분명 <매트릭스> 시리즈는 대단한 영화가 맞지만, 어쩌면 스스로의 대중성이나 성취를 과대평가한 결과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전편에서 한 번 스쳐간 단역이 20년만에 다시 등장하면 곧바로 알아보고 기쁨의 박수를 보낼 정도로 열광적이고 충실한 팬들을 위한 2021년의 생존 신고인데, 그 아주 작은 지점을 제외한 영역의 모든 관객들에겐 별다른 감상을 이끌어내기 어려워 보이네요.

작가의 이전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