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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18. 202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리뷰

멈춘 끝으로 움직이는 시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Spider-Man: No Way Home)

★★★★☆


 먼 길 돌고 돌아 마침내 당도한 존 왓츠-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3편, <노 웨이 홈>입니다. 톰 홀랜드를 주인공으로 젠데이아 콜먼, 제이콥 바탈론, 베네딕트 컴버배치, 존 파브로, 제이미 폭스, 윌렘 대포, 알프레드 몰리나, 베네딕트 웡, 토니 레볼로리, 마리사 토메이, J.K. 시몬스 등이 이름을 올렸죠. 개봉 첫날 국내 관객수 63만 명을 기록하는 등 이 시국에도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파 프롬 홈> 미스테리오의 계략으로 피터 파커라는 정체를 온 세상에 들키고 만 우리의 주인공 스파이더맨.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저 자신을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너져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피터 파커라는 사실을 모르게 해 달라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부탁 하나는 지금껏 모두가 존재해 왔던 차원의 근간을 뒤흔들게 되죠.


 지금껏 그 어떤 블록버스터보다 비밀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보통 영화들은 빠르면 개봉일로부터 1년도 넘게 남은 시점에 공개하는 첫 예고편을 보기까지도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했죠. 워낙 많은 것이 걸려있는 영화였고, 현실과 차원을 뒤트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출연은 지나치게 많은 가능성과 예측을 낳았습니다. 뭐 하나 나왔다 하면 프레임 단위로 뜯는 팬들과 하나라도 더 가리려는 영화가 맞붙었죠.



 누가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했고, 누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왜 나오지 않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등장했던 닥터 옥토퍼스와 그린 고블린이 확인되자 팬들은 흥분으로 날뛰었고,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등장했던 일렉트로까지 선을 보이자 이제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옆 동네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나온다는 추측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죠.


 나오는 건 좋지만 이를 말이 되게 묶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많아서, 야망만 가득해서 혼자 무너진 영화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시간만 되고 돈만 많으면 죄다 꺼내놓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지만, 이를 설득력을 갖춘 뼈대에 살로 붙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죠. 게다가 3부작의 일부이자 세계관의 일부인 영화로는 더더욱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겠구요.



 그렇게 <노 웨이 홈>은 스파이더맨의, 영웅의 뿌리에서 출발합니다. 존 왓츠와 마블 스튜디오의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맨 원리주의자(!)들에게 배척받은 이유는 간단하지만 근원적이었습니다. 이 스파이더맨은 내가 알고 또 좋아하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는 것이었죠.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아무 것도 없이, 모든 것을 잃어도 오로지 정의를 위해 창 밖을 나서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의 최첨단 장비에 둘러싸여 어벤져스의 비호를 받으며 활동하는 것이 아니꼽다는 단순한 비난 이상이었습니다. 실제로 1편과 2편에서 피터의 과오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의 책임이 배제되었습니다. 뭘 어떻게 때려부숴도 대신 해결해 주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용서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누가 죽지 않으니 신경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존 왓츠의 피터 파커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물론 정의감과 영웅놀음 그 자체를 관통하는 문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존재였습니다. 10대의 미숙함과 치기를 변명으로 삼는 것도 정도가 있음에도 어째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맨날 성장하고 또 성숙한다고 하지만 그때뿐, 죽어서도 탈출구를 마련해 주던 보호자들의 그늘은 분명한 한계가 되었죠.


 이번에도 출발은 비슷합니다. 뭔가를 하려고 나서는데 사고가 납니다. 완전한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 완전히 틀어집니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광경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해를 봐도 좋으니 이걸 어떻게 좀 바꿔 보려고 했는데, 차원이 뒤틀려 온 세상을 들쑤실 세기의 악당들이 틈바구니로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과정과 결과가 다릅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날아다니는 악당을 잡으려다가 무고한 시민들이 탄 여객선을 절반으로 쪼개먹은 적도 있지만, 아이언 맨이 나타나 1분만에 없던 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아이언 맨이 없습니다. 심지어 닥터 스트레인지는 하지 말라고 한 일입니다. 덮어줄 사람도 없고 덜어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내가 망쳤으니 내가 책임진다며 또 다른 일을 벌입니다. 와중에 영웅의 정의감도 내려놓지 않습니다. 뭐 하나 놓치고 싶지가 않으니 거미줄에 많이도 걸어둡니다. 하지만 사고가 사고를 낳습니다. 얽히고 설켜 돌이킬 수가 없어졌는데 이를 짊어질 사람은 여전히 나 혼자입니다. 더더욱 나 혼자입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임을 모르고 본다면 마침내 사회에 첫 발을 내민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노 웨이 홈>은 전작들에서 자기만족하듯 가져다 붙였던 '홀로서기'라는 단어를 정말로 진지하게 파고내려갔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철부지 금수저 이미지가 이번 3편의 깊은 파괴력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무대였죠.


 그럼에도 스파이더맨의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스파이더맨의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모두의 평생에 딱 한 번만 쓸 수 있는 기회에 모든 공을 쏟았습니다. 스파이더맨을 알고 있다면 놀랄 수밖에 없고, 스파이더맨을 좋아하고 있다면 환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와 이 순간을 위해 모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무게를 지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내내 중심에 있음에도 왜인지 미미한 톰 홀랜드의 존재감은 <노 웨이 홈>이 3부작 중 가장 훌륭한 '스파이더맨' 영화임을 반증합니다. 그를 가능케 한 각본은 본인이 선택한 소재 그대로 3부작의 시간과 스크린 안팎의 공간을 하나의 지점으로 연결하죠.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넘어 무엇을 기대하고 싶었는지를 세심하고 정확하게 보여주니 열광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 중 하나만 잡아도 훌륭한 영화가 둘 다를 잡았습니다. 멋진 스파이더맨 영화이자 괜찮은 성장 영화입니다. 그런데 마침 스파이더맨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성장이었던 덕에 시너지는 폭발적이죠. 시작이라고 생각했으나 끝이었던 순간들이 모여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시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동났다고 여겼던 마블의 잠재력은 또 한 번 굉장한 것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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