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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01. 2021

<프렌치 디스패치> 리뷰

재담 연금술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


 2018년 <개들의 섬> 이후로 3년만에 돌아온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입니다. 빌 머레이, 베네치오 델 토로, 애드리안 브로디, 틸다 스윈튼, 레아 세이두, 프랜시스 맥도먼드, 티모시 샬라메, 제프리 라이트, 마티유 아말릭, 오웬 윌슨, 토니 레볼로리, 크리스토프 발츠, 리브 슈라이버, 에드워드 노튼, 시얼샤 로넌, 윌렘 대포, 엘리자베스 모스까지 그야말로 눈 돌아가는 목록을 자랑하죠.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모여 찍어내는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는 프랑스 어딘가에 있는 도시 블라제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도시 소개부터 음식 코너까지 내로라하는 저널리스트들의 개성 가득한 글들이 모이던 중, 지금의 프렌치 디스패치를 있게 한 편집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지막 발행본에 실릴 혼을 담은 네 개의 글들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하죠.


 여느 감독이었다면 실험적이라는 수식이 붙을 만한 연출이 여기서는 일상입니다. 화면이나 장면 연출 관련해서는 어디든 '웨스 앤더슨 특유의'라는 구절로 문장을 시작할 수 있죠.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 대칭적인 배치, 고정된 시점에서의 단선적인 움직임, 물 빠진 듯한 색감 등으로 대표되는 미장센과 이따금씩 그것을 벗어나며 부여하는 신선함과 긴장 등 여전합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흔히 말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입니다. 각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무슨 코너에 누가 쓴 몇 쪽짜리 글임을 밝히며 정말로 잡지를 영상화한 듯한 기분을 내죠. 프랑스에 있다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도시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이름난 저널리스트들의 입을 빌려 전하는데, 이야기 속 이야기 속 이야기처럼 복잡한 설명도 마치 어제 먹은 식사를 설명하듯 아무렇지 않게 툭툭 뱉어냅니다.


 감옥에 갇힌 천재 예술가, 사랑에 서툰 청년 운동가, 신이 내린 경찰청 요리사 등 대충 친구가 앉아서 진짜 신기한 사람 하나 알고 있다며 들려주는, 진실 반 허풍 반짜리 에피소드들에 귀기울이는 체험이죠. 비록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했지만 어쨌든 프랑스 어딘가에 있다는 설정으로 프랑스식 자유와 예술을 향한 동경도 손 끝으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옴니버스식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동종 영화들은 이야기들 간 공통된 주제가 있거나 은근한 접점으로 더욱 커다란 하나의 숲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프렌치 디스패치>는 각 이야기들의 깊이나 복잡함과는 별개로 정말로 구성 자체는 그야말로 옴니버스의 정의 그 자체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과감히 지나갑니다.


 이 자신감이 바로 <프렌치 디스패치>의 가장 큰 매력이자 존재 의의입니다. 웨스 앤더슨이라는 이름과 그 추종자(?)들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다른 영화였다면 불친절하고 제멋대로라고 지적당할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이미 그를 버텨내고 또 즐길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가능한 결과물입니다.



 상상력과 특유의 문체, 이야기 구성력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이 내는 단편집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장편이 어울리는 기승전결도 있지만, 단편이 어울리는 스타일이나 연출도 있는 법이죠. 슬로모션부터 애니메이션까지 평소 해 보고 싶었으나 장편에서는 집중력을 깨거나 혼자 툭 튀어나올 것 같아 해 보지 못했던 시도들을 이 때다 싶어 쏟아냅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이야기들은 이렇다할 공통점이 없음에도 서로의 존재감에 융화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어떤 이야기든 자신의 목소리로 바꾸어 들려주는 재담꾼 자격을 충분히 증명하죠. 이쯤 되면 어떤 장르의 어떤 이야기든 웨스 앤더슨 버전으로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이해될 듯하기도 합니다. 얼핏 쓸데없는 장치나 장면에도 그것마저 좋다며 박수치게 만드는 힘이죠.



 감독의 지난 영화들에 비해서는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기사를 그냥 들려주는 대신 자신이 쓴 기사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기억한다는 기자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기사를 암송하는 등, 스스로의 스타일에 취해 소위 말하는 영화적 문법이 이야기를 눌러 버리는 순간도 몇 개 있습니다. 그러나 들으라고 강제로 붙잡은 것이 아니라는 뻔뻔함 또한 일관된 장점의 일부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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