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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01. 2021

<연애 빠진 로맨스> 리뷰

글로 배워 글로 쓴 듯


<연애 빠진 로맨스>

★★


 정가영 감독의 신작이자 전종서, 손석구, 공민정, 김슬기, 배유람, 김재화 등이 이름을 올린 <연애 빠진 로맨스>입니다. CJ 엔터테인먼트가 제작과 배급을 맡아 <우리, 자영>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었다가 제목을 바꾼 작품이죠. 오는 24일 개봉 예정이며, 우연찮게도 비슷한 시기에 <장르만 로맨스>, <괴짜들의 로맨스> 등 헷갈리기 쉬운 영화들과 함께하고 있네요.



 전남친과의 격한 이별 후 호기롭게 연애 은퇴를 선언했지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최후의 보루인 데이팅 어플을 선택한 스물아홉 자영. 뒤통수 제대로 맞은 연애의 아픔도 잠시, 편집장에게 19금 칼럼을 떠맡게 된 잡지사 에디터 서른셋 우리. 그렇게 설 명절 아침,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에서 누구 하나 속마음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 두 사람의 연애 빠진 로맨스가 시작됩니다.


 가족이나 애매한 이성 친구와 함께 극장에 앉았다면 영화가 시작하는 맨 첫 장면부터 헛기침 좀 해야 할 장면으로 출발합니다. 표를 살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분명 15세 관람가 아니었나 싶은 당황도 잠깐 피어납니다. 그렇게 영화가 앞으로 나아갈 톤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외치며 들어가는데, 확실히 서양 쪽 진한 로맨틱 코미디 색을 내고 싶었음이 분명합니다.



 몸의 본능을 앞세워 만난 둘이 머리로도 뒤늦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룹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면서도, 다들 몰래 이런 상상이나 일탈을 해 봤으리라는 은근한 시선으로 일관하죠. 그러면서 종국에는 이러다가 다시 다들 생각하는 보통의 연애에 안착하며 이 또한 커다란 과정의 일부라며 결론짓구요.


 <연애 빠진 로맨스>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정이 어찌됐든 사랑이 고픈 두 사람이 만났고, 그 이후의 과정이 또 어찌됐든 가까워집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연루되어 있건, 시작이 있고 방향이 있다면 만남은 만남입니다. 다만 두 주인공의 이름이 '함자영'과 '박우리'라는 데에서부터 쓸데없이 진지해 봤자 보는 사람만 손해라는 것도 일부 감안을 해야 하겠지요.



 바로 이 지점에 <연애 빠진 로맨스>의 감상이 달려 있습니다. 지난 <장르만 로맨스> 리뷰에서 주인공 류승룡의 직업이 작가이며 극중 그가 쓴 책의 주제를 영화의 주제와 일치시키는 구성이 조금 치사하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연애 빠진 로맨스> 또한 손석구를 잡지사 에디터로 설정하며 영화의 전개를 마치 한 잡지사 에디터가 지어낸 가십성 글처럼 만드는 구성을 택했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택한 변명은 자영이라는 캐릭터가 정말로 잡지에 실리는 글에나 나올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설정인데, 애초에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영화인 터라 그런 말이 제대로 통할 리가 없습니다. '영화에나 나올 이야기지만 진짜일 수도 있는 인물의 이야기니 믿어달라는 영화'엔 별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죠.


 또한 이런 구성을 택했다면 영화는 이야기의 중심, 혹은 화자를 자영이 아닌 우리로 두었어야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이 특이한 사람을 만나 이 사람이 이렇게나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당연히 평범한 사람의 입을 빌려야 맞죠. 더군다나 그 특이한 사람의 직업이 작가나 에디터라면 더더욱 그를 노린 준비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대부분의 조연을 우리가 아닌 자영의 가족과 친구들로 구성해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영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려줍니다. 시작과 끝에서 자영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열고 닫는 내레이션만 보아도 명백하죠.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 이게 정확히 누가 누구에게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지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중심축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이죠.


 <프렌즈 위드 베네핏>과 <가장 보통의 연애>를 섞어 초장부터 과감한 척하던 영화는 막상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는 말장난 이상의 승부수를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마저도 극중 박우리 에디터의 글이 '정말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 개성 덕분에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설정을 집어넣는 통에 자신의 코미디가 왜 웃긴지 설명하는 코미디언을 보는 듯하죠.



 이렇게 단단한 줄기 없이 달려가던 영화는 직전까지의 갈등이나 사건들과 꽤나 무관한 결말을 택하며 마침표를 찍습니다. 촬영 일정을 착각해 일정보다 훨씬 빨리 영화를 만들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급박하게 막을 내리죠. 한두 개쯤이야 현실적인 에피소드라고 쳐 줄 수 있어도 그것들을 엮어내 만든 기승전결은 서로와 점점 멀어졌고, 누구의 것도 아닌 곳에서 누구의 공감도 사지 못한 채 스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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