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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리뷰

시작이 태초일 줄은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The King's Man)

★★★☆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사 하나로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던 <킹스맨>이 돌아왔습니다. 첫 영화부터 쭉 메가폰을 잡았던 매튜 본이 다시 돌아왔고, 레이프 파인즈, 자이먼 혼수, 리스 이판스, 매튜 구드, 톰 홀랜더, 해리스 딕킨슨, 젬마 아터튼, 다니엘 브륄, 찰스 댄스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의 인수와 시국이 겹치며 개봉까지는 당초의 계획보다 훨씬 오래 기다려야 했지요.



 1900년대 초, 역사상 최악의 폭군들과 범죄자들이 모여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할 전쟁을 모의하는 광기의 시대. 사고로 아내를 잃은 옥스포드 공작은 어린 아들을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리라 맹세했지만, 당차게 자란 아들 콘래드는 조국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일념으로 가득합니다. 음모와 술수으로 만든 불씨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바로 그 때, 세상의 균형을 되찾으려 나선 한 조직이 있었죠.


 익히 알려진 대로 이번 <킹스맨>은 앞선 두 편의 프리퀄입니다. 킹스맨이라는 단체의 창설 과정을 다루고 있죠.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는지 국내 부제로는 원제에 있지도 않던 <퍼스트 에이전트>가 붙었구요. 배경은 1차 세계대전으로, 세르비아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이 세 강대국의 권력 다툼으로 번지는 과정을 남몰래 좌지우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들에 상상력과 각색을 더한 대체 역사물입니다. 조지 5세, 니콜라이 2세, 빌헬름 2세, 라스푸틴, 레닌, 마타 하리, 쿠키 영상의 그 사람(!) 등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도 대거 등장하죠. 할리우드의 주특기 중 하나가 시대를 앞서간 기술이나 음모론을 나치나 달 착륙과 연관지어 SF 판타지 각본을 써내려가는 능력인데, 크게 보면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다름아닌 킹스맨 시리즈라는 겁니다. '<킥애스>와 <킹스맨> 시리즈로 병맛과 액션의 적절한 조합을 연구해 온 매튜 본의 신작'이면 모를까, 앞선 두 편의 후광을 끼고 있는 영화라는 데에서 보여주어야 하는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죠. 특히나 킹스맨 시리즈는 수트의 향연과 최첨단 무기, 화끈한 액션 등 여느 시리즈와 비교해서도 색채가 꽤 독보적인 축에 속하기도 하구요.



 애석하게도 이번 <퍼스트 에이전트>는 그 기대에 충실한 영화는 아닙니다. 수트, 최첨단 무기, 화끈한 액션 모두 없습니다. 고상한 매너로 전장을 압도하고 화려한 몸놀림으로 싸움을 주도하지도 않죠. 퍼센트로 따지기도 애매한 킹스맨 함유량은 사실상 향 첨가쯤에 가깝습니다. <부산행>의 후속작으로 나온 <반도>처럼 최소한의 연결고리로 같은 세계관임을 일깨우는 정도에 불과하달까요.


 2편 <골든 서클>은 여러모로 1편의 성공 요인을 착각한 결과물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명장면들을 하위 호환으로 재현하고 병맛의 도를 넘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죠. 이번 3편은 그 결과에 절치부심한 것을 넘어 아예 뿌리까지 뽑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적당할 만한 것들은 죄다 빼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들로 빈 자리를 채웠는데, 호불호와는 별개로 연속성부터 떨어지니 감상이 크게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실망을 딛고 나면 꽤 유쾌하고 오락적인 액션 사극(?)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비롯한 캐릭터 재해석도 흥미롭고, 참호에서의 음소거 전투 등 기억에 남을 액션 장면들도 아쉽지 않게 준비되어 있죠. 감독 특유의 B급 흥취도 슴슴하게는 느껴지는데,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해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에 톡톡히 한몫을 해냅니다.


 이 전개는 아무래도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인물보다는 사건에 치중한 탓인 듯하죠. 세력과 세력의 대립이라면 각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러닝타임 동안 개성을 고조시켜 종국에 서로와 충돌하는 구조지만, <퍼스트 에이전트>는 한 라운드마다 인물을 소모하는 통에 최종전의 양상 자체가 다소 엉뚱하거나 그닥 하이라이트라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편입니다.



 독립된 영화로서의 매력은 충만하지만 시리즈의 연장선으로는 애매합니다. 세계 최대의 물류 공룡인 아마존 닷컴이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한 것처럼 시작과 끝이 꽤 다른데, 시작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충 끝과 비슷한 것을 상상하기에 방향이 틀릴 수밖에 없겠죠. 디즈니에 넘어간 시리즈가 계획했던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내기가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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