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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해피 뉴 이어> 리뷰

공익광고로도 못 쓸


<해피 뉴 이어>

★☆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시간이탈자>의 곽재용 감독 신작, <해피 뉴 이어>입니다.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정진영, 이혜영, 김영광, 서강준, 고성희, 이진욱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죠. CJ 엔터테인먼트 제작으로 극장 개봉되었지만, 지난 <서복>과 마찬가지로 티빙에서 동시 공개 되었습니다. 러닝타임은 138분으로 다소 긴 편이네요.



 15년째 남사친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호텔리어 소진, 그런 소진의 속도 모른 채 여자친구와의 깜짝 결혼을 발표하는 승효.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짝수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호텔 대표 용진, 뮤지컬 배우의 꿈을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이영. 오랜 무명 끝 전성기를 맞이한 가수 이강과 매니저 상훈. 각자의 애틋한 사연을 안은 우리의 주인공들이 호텔 엠로스에서 마주칩니다.


 지난해 <새해전야>를 떠올렸다면 딱 맞습니다.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를 표방하며 이렇게까지나 서로 얽히고 설킬 수 없는 인물 관계도를 연말과 새해의 설렘에 버무립니다. 한두 개쯤이야 우연이라고 쳐도 이 사람이 저 사람의 동생이고 이 사람은 저 사람의 딸이라는 식으로 끝도 없는 그물을 치고 있으면 슬슬 현실의 벽은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보다 보면 흘러내리는 현실의 벽을 거기서만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극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빚어내는 상황들은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의 최초 시행용 버전들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관객층으로 잡고 있는 듯한데, 그것마저도 시대에 너무나도 뒤쳐져 감탄스러울 지경입니다.


 하나로도 족한 고루함을 앞뒤로, 좌우로 몇 개씩 겹쳐 놓았습니다. 인물과 인물 설정도 낡은데 만나는 상황도, 발전하는 과정도, 마무리되는 그림도 낡았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렇게나 다양한 양상을 선보이는데도 이렇게까지 일관되게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캐릭터의 직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절대 하지 않을 이야기들로 도배되어 있죠.



 호텔 최고경영자와 청소부의 사랑, 까지는 좋습니다. 나올 수 있습니다. 차를 탄 퇴근길마다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간당간당하게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하나가 손에 닿지도 않게 걸려 있는 풍선을 빼 주려 깡총거리는 모습인 데엔, 오디션에 늦었으니 손잡고 같이 조퇴해서 박수쳐주는 데엔, 새삼스레 알게 된 계약직의 노동 환경으로 기업 합병이 휘청거리는 데엔 문제가 있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자기들끼리야 첫눈에 반하거나 몇 년만에 새삼스레 반하거나 제멋대로 할 수 있지만, 어찌됐든 관객들은 이들을 본 적이 없음도 간과하고 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우르르 쏟아져서는 자기들의 인연이 어땠고 과거가 어땠으니 지금 이렇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공감이 될 리 만무합니다. 각종 로맨스 영화의 중반부 이후 부분만을 다발로 정신없이 묶어놓은 격입니다.



 몽글몽글한 설렘을 이야기의 양분이 아닌 뿌리로 사용한 패착입니다. 볼만한 뼈대는 갖춘 뒤에 가진 재료들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써먹었어야 했는데, 일단 뭐든 되는대로 던져 놓고는 폭죽 터뜨리며 해피 뉴 이어만 외치면 다들 웃고 박수치며 나갈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죠. 배우들의 매력을 찾기에도 거의 모두가 예상되는 이미지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탓에 신선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다 보니 그 밖의 것들이 훌륭하다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고, 심지어는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것들도 죄다 눈에 밟힙니다. 김이라도 잘라서 붙여 놓은 듯 반짝거리는 문신 분장이나 장면 몰입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처참한 배경 CG 등이죠. 그나마 이 화려한 면면들을 종합선물세트로 묶어 놓았다는 사실만이 희미한 의의로 영화를 지탱합니다.



 눈발 날리는 와중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만 한 31 아이스크림이나 겨울철만 되면 돌아오는 럭키 버거(...) 광고에나 쓰일 전개가 영화로 나왔습니다. 국가 단위로 진행되는 캠페인에서 내보내기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그저 행복 바이러스에 젖고 싶을지라도 여전히 과합니다. 새로움 그 자체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이렇게까지 새로움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도 서글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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