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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특송> 리뷰

빈 통에 포장도 엉망


<특송>

★☆


 2016년 <봉이 김선달> 이후 6년만에 돌아온 박대민 감독과 박소담, 송새벽, 연우진, 염혜란, 김의성, 정현준, 한현민 등이 뭉친 <특송>입니다. NEW의 2022년 첫 번째 작품이죠. 의외로 정확한 제작비나 손익분기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꽤 예전에 손익분기점이 관객수 160만 명이라는 정보가 돌아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 숫자를 생각하면 출발이 썩 좋지는 않지요.



 우체국이 배달하지 않는 물건은 죄다 배달하는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 엄청난 운전 실력과 완벽한 일처리로 사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던 어느 날, 어쩌다 맡게 된 반송 불가 수하물 탓에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내 걸리적대는 사람 몇 명 보내는 데엔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세력이 그녀의 뒤를 쫓고, 도심 한복판에서 돌아올 길 없는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죠.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드라이브>부터 안셀 엘고트 주연의 <베이비 드라이버>까지, 대강 생각나는 작품들은 비슷할 겁니다. 범죄 현장에서 도망치거나 남들의 눈을 피해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등, 험한 일과 운전의 상관관계는 따져 보면 새삼스럽죠. 애초에 운전하면서 돈 버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한 시리즈로 10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있겠구요.



 다만 언급한 두 작품들처럼 그 바닥에서 ‘운전만 하는’ 인물들에겐 특유의 색채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지저분한 짓은 절대 하지 않고 운전만 하지만, 그렇다고 떳떳한 일을 할 수도 없는 주변인의 속성이죠. 따라서 대부분의 영화들은 매번 그를 지키던 주인공들이 특정한 사건에 휘말려 평소라면 절대 넘지 않을 선을 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뻔하지 않은 듯 뻔한 공식들 중 하나가 된 셈이죠.


 이번 <특송>은 첫 단추부터 그걸 조금 이상하게 배운 티가 납니다. 주인공 은하는 마스크나 헬멧도 없이 매번 바꾸는 대포폰만으로 그 험한 업계에서 완전히 숨어 살고 있죠. 아는 사람만 아는 베테랑도 아닌, 그냥 알음알음으로 알려진 업체의 유일하지만 전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드라이버입니다. 갸우뚱하지만서도 대충 넘겨야 하는 설정으로 출발하죠.



 짧은 시간에 영화의 방향성과 주인공의 특출난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어야 하는 첫 장면엔 꽤 공을 들였습니다. 잘만 나오면 웬만한 주먹다짐만큼이나 눈을 홀리는 것이 차량 추격전이죠. 물론 할리우드의 수많은 거대자본 블록버스터들이 상상을 초월한 응용을 이어가면서 다들 웬만해서는 만족할 수 없는 눈을 갖게 되었지만, 최소한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라는 데엔 많이들 동의할 겁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건질 것이 별로 없습니다. <기생충>의 과외 인연이 우연찮게도 이어진 서원이 등장하는 순간부터는 거의 장르의 변형이 이루어지죠. 구해야 하는 연인이나 보호해야 하는 아이의 등장은 공산품 제조의 핵심적인 재료나 마찬가지인데, <특송>처럼 스스로의 소재를 비롯한 무언가가 독특하다고 판단한 영화에겐 상당히 치명적입니다. 등장하는, 혹은 등장하려는 순간 즉시 향을 잃게 되죠.



 차라리 일반적인 총칼이나 주먹다짐으로 전진하는 영화라면 모를까, 서원이 나오고부터는 영화 스스로도 누구의 이야기를 얼마나 어떻게 등장시켜야 하는지 헷갈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은하에게 운전을 시킬지 싸움을 시킬지, 악당을 보여줄지 조력자를 보여줄지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해 방황하죠. 연관된 캐릭터들 모두 마땅한 비중을 부여받지 못한 채 개성을 잃구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특송>의 각본에서 은하가 주인공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심지어는 은하 본인조차 은하를 주인공 자리에 억지로 앉혀 놓기 위해 행동하거나 존재합니다. 이를 가장 강제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 서원의 존재고, 서원의 개입으로 송새벽의 경필이나 김의성의 백사장 등 그나마 멀쩡했던 조연들이 틀어지면서 영화의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죠.



 단적인 예로, 분명 경필은 300억이라는 돈 때문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안 키만 손에 넣으면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게 된 사람들을 제거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도대체 돈과 서원, 은하 중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하죠. 심지어 바로 직전 장면에서 사람 하나쯤은 부하를 시켜 눈 깜짝할 사이에 없애 버리던 사람이 시간만 끌고 있으니 혼란은 가중됩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은하는 갑자기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제이슨 스타뎀으로 변신합니다. 붕붕 날아다니며 장정들을 맨손으로 때려눕힙니다. 이때까지 숨겼던 것은 뜬금없는 양심이 아니라 주먹 하나로 이 바닥을 평정할 수 없는 전투력이었던 것만 같습니다. 이처럼 지향점이 없으니 아무 곳이나 마구 달려가는데, 새로 맞닥뜨리는 그림마다 멀쩡한 것이 없으니 급커브를 틀어 또 다른 곳으로 달릴 뿐이죠.



 출발점과 시작점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바둑 영화라고 하더니 결국엔 치고받기나 하던 <신의 한 수> 생각도 납니다. 포스터나 예고편, 줄거리 등 영화 정보가 선사하는 긍정적인 예측엔 딱히 충실하지 못하면서도,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바로 다음 장면의 부정적인 예측엔 필요 이상으로 충실합니다. 특정한 지점에 손을 대서 개선하기에는 문제의 뿌리가 너무도 깊어 보이는 것이 가장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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