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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럼블> 리뷰

무지성 혈통 박치기


<럼블>

(Rumble)

★★


 <슈렉>, <몬스터 vs 에이리언> 등에 참여했다가 감독으로 처음 나선 하미쉬 그리브의 데뷔작, <럼블>입니다. 당초 거하게 극장 개봉 예정이었으나 최근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개봉 일정이 이리저리 휘둘렸고, 결국 본토에서는 파라마운트 플러스로 직행했습니다. 국내 역시 극장 개봉을 추진하던 중 무려 OCN에서 처음으로 방영되는(!) 희귀한 사례를 남겼구요.



 집채만한 괴물들의 레슬링 경기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세상, 동네 슈퍼스타이자 사실상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텐타큘라가 돌연 마을을 떠납니다. 한때는 전설적인 레슬러와 코치의 고향으로 유명세깨나 떨쳤던 마을은 한순간에 위기에 처하고, 우리의 주인공 위니는 아버지의 영광을 이어받고 마을을 구원할 방도로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려 고군분투합니다.


 캐릭터 디자인부터 각본까지, 2000년대 드림웍스 스타일에서 크게 나아간 것이 없습니다. 캐릭터 디자인만 귀엽게 잘 뽑으면 각본이 어찌됐든 알아서 돈을 벌어오는 사례들은 꽤 많지만, 반대로 캐릭터 디자인이 대중적이지 못한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당장 노란 미니언들이 전 세계에서 쓸어담고 있는 돈만 해도 눈이 돌아갑니다.



 아쉽게도 <럼블>은 캐릭터 외형만으로 승부할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좋다고 할 사람도 당연히 있겠지만, 이렇게 '좋다고 할 사람도 당연히 있다'라는 수식이 필요한 디자인이죠. 그래도 최소한 캐릭터들이 끔찍해서 영화를 고르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 이제 그를 뒷받침할 각본만 있으면 됩니다. <럼블>은 보시다시피 스포츠 드라마를 택했구요.


 대부분의 스포츠 드라마들에서 스포츠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선수나 감독으로 상정된 주인공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 진정한 줄거리죠. 그래도 보는 맛은 있으면 좋으니, 최대한 극적인 순간을 실화처럼 연출하기엔 또 팀 경기보다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이 나은 편입니다. 궁지에 몰렸다가도 순전히 혼자만의 근성과 투지를 발휘해 결과를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그냥 레슬링도 아닌 프로레슬링은 다소 애매합니다. 분명 세계적인 스포츠로 손꼽힐 만 하지만, 스포츠 드라마라는 장르에 붙이기에는 언급한 특징들이 조금씩 엇나가는 면이 있습니다. 기껏해야 기절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 정도를 연출할 수는 있겠으나, 그런 연출이라면 복싱부터 격투기까지 훨씬 괜찮은 선택지들이 즐비합니다. 아무래도 감독이나 각본가의 개인적 취향이 듬뿍 묻어 있었겠지요.


 이 모든 걸 차치하고서도 <럼블>의 기승전결엔 문제가 많습니다. 인간 주인공인 위니와 괴물 주인공인 레이번 주니어는 모두 아버지의 후광을 부담으로 안고 있는 인물들이죠. 아버지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그의 딸이나 아들이라고 하면 엄청난 기대를 품습니다. 애초에 아버지와 완전히 같은 직업을 선택한 시점에서는 더더욱 피할 수 없는 시선이죠.



 하지만 영화는 그를 해결하는 과정을 그저 '재능'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칩니다. 무언가 딛고, 무릅쓰고 일어서는 가장 중요한 단계가 빠져 있습니다. 나는 누구누구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겠다며 당차게 경기장 위에 나서기만 하면 단 한 번의 문제도 없이 최고란 최고들이 줄줄이 쓰러집니다. 제대로 된 코칭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코치와 제대로 된 경기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선수가 하루아침에 리그를 제패하죠.


 이러니 보는 맛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세계관의 허술함만 강조될 뿐, 무언가 탄탄히 쌓인다는 인상을 조금도 받을 수 없죠. 이미 태어날 때부터 완성되어 있던 인물이 그걸 인지하기만 하면 세계 최고가 된다는 설정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승패의 경계가 모호한 프로레슬링과의 조합은 더욱 나쁠 수밖에 없죠.



 그나마 나눠 보자면 집채만한 괴물들이 둥글둥글한 인상으로 서로와 빚어내는 몸 개그 정도가 볼거리로 꼽히겠지만,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먹힐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장점입니다. 가진 것도 많지 않은데 보여주는 것은 더욱 부족하죠. 아마 애니메이션판 <리얼 스틸> 정도를 지향했겠으나, 애니메이션이라고 모든 것을 지나치게 쉽게 해결하려는 접근이 많은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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