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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10. 2018

<암수살인> 리뷰

종종 가늘고 길어야 할 필요


<암수살인>
★★★☆


 장편영화로는 2012년 <봄, 눈> 이후 6년만에 돌아온 김태균 감독의 신작, <암수살인>입니다. 간만에 형사 역할을 맡은 김윤석과 2018년만 놓고 보면 더 이상 열심히 일할 수 없는 주지훈이 주연을 맡았죠. 연쇄살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결코 매끄럽지 못했던 일 처리 탓에 개봉 전부터 논란이 되었습니다. 어찌저찌 개봉을 하긴 했으나, 좋은 선례로 남기엔 저지른 잘못이 적지 않습니다.



 수감된 살인범 강태오는 형사 김형민에게 무려 여섯 명의 추가 살인을 자백합니다. 피해자도 발견되지 않고 신고자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암수사건 특성상 믿을 것이라곤 살인자의 말뿐이지만, 형사의 직감으로 자백이 사실임을 확신한 형민은 태오의 말을 믿고 수사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거짓과 진실이 교묘히 섞여 있는 자백과 다가오는 공소시효, 부족한 증거 탓에 수사는 난항을 겪기 시작하죠.

 악랄한 범인과 홀로 그의 뒤를 밟는 형사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으레 기대하게 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끌어모을 수 있는 감정이란 감정은 죄다 모아 어떻게든 폭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죠. 범인은 최대한 악랄하고 비열하게, 형사는 최대한 정의롭지만 외롭게 그려야 합니다. 가족 이야기도 넣고, 주변 동료들로부터 시달리는 그림도 넣고, 그렇게 쌓다가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마무리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암수살인>은 다릅니다. 쉬운 길을 가지 않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수식어는 '담백한'이 될 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성을 두 번 세 번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형민의 표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드러내지 않는 감정에서 더 큰 반향을 이끌어냅니다. 서로가 서로보다 한 발 앞서나가려 하는 두 사람의 대립엔 선과 악, 두뇌와 두뇌, 정의와 불의가 맞섭니다. 다소 연극적이기까지 한 김윤석의 독백은 영화의 스타일과 맞물려 담백함을 더합니다.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관전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관객들은 몇몇 장면을 통해 태오와 형민이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 결정적인 패를 엿보게 됩니다. 형민은 태오가 주지 않았던 단서를 발견해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고, 태오는 감방에서 법학 서적을 공부하며 형민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해당 패들을 먼저 보며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해 보는 흥미도 발생합니다. 

 그와 동시에 영화는 연출을 통해 형민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줍니다. 택시를 운전하던 태오는 차로 사람을 칩니다. 그런데 막상 세차를 맡기러 온 택시의 범퍼는 깨끗합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빈 장면을 능동적으로 채우게 내버려 두지만, 그것이 옳다는 증거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내버려 둔다기보다는 차라리 속임수에 가깝습니다. 형민이 매번 마주해야 했을 혼란과 형민의 의심을 유별나다 생각한 사람들의 과오를 재현합니다.



 양 극점에 위치한 두 인물이 뒤섞이며 답답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통쾌하지만 통쾌하지 않은 감정선이 완성됩니다. 사건을 보여주며 인물에도 집중합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상업 영화들의 필수 요소들은 대부분 빠져 있어 느슨하거나 싱거울 때도 종종 있습니다. 취향의 차이라고 봐야 맞겠지만, 변화의 방향이라고 보고 싶은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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