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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고요의 바다> 리뷰

장르를 방패 삼아


<고요의 바다>

★★☆


 이제는 차기작 하나하나에 웬만한 TV 드라마 이상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신작, <고요의 바다>입니다. 최항용 감독이 단편이었던 본인의 동명 졸업 작품을 시리즈화했고, 배두나, 공유, 김선영, 허성태, 이준, 이무생, 이성욱, 강말금 등이 이름을 올렸죠. 바로 그 이정재와 정우성이 세운 제작사인 아티스트컴퍼니가 제작을 맡은 덕에 크레딧엔 제작자 이름으로 정우성도 볼 수 있습니다.



 2075년, 물이 그 무엇보다 귀한 자원이 되어 버린 지구. 전 거주민들은 각자의 등급에 따른 최소한의 배급만으로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달에서 방사능 누출로 폐허가 된 발해 기지로 떠날 임무가 떨어지고, 과거의 비밀과 아픔을 안은 우주 생물학자 지안은 모든 것이 지나치게 비밀스러운 그 곳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비밀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주인공들이 우주복을 입은 SF 드라마라니, 어쨌든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국내에서는 확실히 보기 힘든 광경이기는 합니다. 할리우드 쪽에서는 이제 저예산 영화들도 실험적인 SF 영화들을 연이어 내놓고는 있지만, 여기서는 그래도 우리가 드디어 이런 것도 만든다는 관심이 쏠릴 프로젝트죠. 제작비로 알려진 250억 원은 웬만한 대작 영화들을 가볍게 상회하는 규모입니다.



 <고요의 바다>의 뿌리는 간단합니다. 지구엔 물이 없어졌고, 우주엔 그를 대신할 것이라 믿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SF 소설을 시작하기에는 안전하면서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여기에 미스터리 스릴러의 살을 붙이고 우주를 무대로 한 창작물에서 나올 법한 공식들을 하나둘씩 가져다 붙입니다. 주인공의 가족을 집어넣은 사연들로 인간적인 드라마도 놓칠 수 없습니다.


 특이하거나 특수한 설정엔 오류가 있기 쉽습니다. 보통은 상식 수준에서 따지는 경우가 많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이걸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면 논란의 여지가 더욱 커지죠. 게다가 그만큼 특이한 것을 굳이 눈 앞에 꺼내들었다면 각본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대부분인데, 그러려면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자신만의 논리를 갖추거나 그를 보이지도 않게 할 더 큰 재미 요소를 준비해야 합니다.



 <아이언 맨 2>는 토니 스타크가 집 안 실험실에서 눈대중으로 수평을 맞춘 입자가속기를 사용해 무려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냅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가족은 접시만 깨뜨려도 괴물이 쫓아온다면서 시끄러운 폭포 옆을 놔두고 조용한 평원에 집을 짓고 살죠. 조금만 따져 봐도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이지만, 그걸로 나온 결과물이 그 당혹을 상회하기에 누구도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고요의 바다>는 출발점에서부터 많은 곳에서 그런 조치가 절실한 구멍들을 내보입니다. 중력, 산소, 물, 질량 등 굳이 대단한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저게 말이 되는 건가 싶은 장면들이 매 화마다 등장합니다. 쓱 지나가도 눈에 걸릴 마당에 그것들이 사건의 전개에 핵심적인 장치가 됩니다. 전 지구에 바다를 포함한 모든 물이 말라 버렸다는 대전제부터 버튼 하나로 달에서 중력이 생성되는 광경 등 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요의 바다>는 준비 단단히 하고 받아야 하는 것들을 무더기로 던져주면서 제대로 받는지조차 관심이 없습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 상황이나 장면은 국가적으로 손꼽히는 인재들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으로 귀결되죠. 이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니 잘못된 것이 없지 않겠냐는 눈속임인데, 이것이 반복되면 캐릭터 자체의 신뢰도가 푹푹 깎여나가는 건 정해진 수순입니다.


 물론 관대한 시청자라면 과학적 근거 정도는 어떠냐는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지적하는 입장에서도 지식이 부족해 그냥 넘어간 오류들 또한 훨씬 많을 수도 있구요.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그저 <고요의 바다> 세계관의 특징으로 퉁치고 넘어간다 쳐도 그 뒤엔 또 다른 문제들이 산더미만큼 쌓여 있습니다. 그냥 그렇다고 넘기기엔 그렇게 봐 준 설정들이 봐 주지 못할 설정들에도 발을 걸치고 있죠.



 <고요의 바다>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SF의 공식들을 꽤 착실하게 따라갑니다. 자그마한 충격부터 지금까지의 상식을 부정하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까지, 순간의 위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앗아갈 수 있는 위험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죠.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책이나 비디오게임의 챕터를 넘기듯 진행되면서 주인공 일행의 생명을 하나씩 가져가려 합니다.


 그러나 <고요의 바다>는 SF라면 하나를 선택해야 할,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에서 다른 한 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신비함을 유지하면서 피도 뿌리고 싶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작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이 이도저도 아닌 자세는 분위기 파악에도 장애물이 됩니다. 눈앞의 광경이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즉흥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각본 특성상 반전 혹은 충격적인 사실을 극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처럼 판단의 어려움이 생기면 방향성을 잡기도 어렵습니다. 놀라운 사실이라며 눈 앞에 대뜸 들이대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고, 2차적으로 그것이 향후 전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방해가 되는 것인지 파악하는 데에 추가적인 시간이 걸리죠. 이를 굳이 설명해야 하는 필요성은 당연한 것이겠구요.


 거기엔 정적이고 소위 '예술적'인 화면, 시적인 단어와 구절을 필요 이상으로 반복하는 대사와 내레이션이 겹친 연출도 한몫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생소한 단어들을 시도때도없이 쏟아내느라 문어체로 딱딱해진 말들은 우주의 신비로움을 자신들의 신비로움과 착각한 카메라와 만나 과함을 더욱 과하게 만들죠.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며 경구를 덧붙이는 감성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이성과 감성, 군인과 민간인, 남성과 여성 등 캐릭터의 개성에 딱딱 그어 놓은 선들도 극의 입체성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캐릭터들의 역할이 너무나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특정한 사건이 예고되는 순간부터 그 뒤의 흐름이 너무나 뻔하게 예측 가능하고, 그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연급을 제외한 일부 조연들은 조연 1, 2, 3쯤의 동일한 개성으로 순차적 소모를 맞이하죠.



 이처럼 장면 자체가 공허하거나 그저 똑같은 흐름의 반복인 탓에 러닝타임을 억지로 늘렸다는 인상을 받기가 쉽습니다. 해결되지도 않고 해결할 의지조차 없어 보이는, 문제라고도 부를 수 없는 문제들에 당면해 죽어나가면서 가족 생각에 잠기는 패턴은 미스터리와 드라마 양쪽 모두에 독이 되죠. 향 입히는 정도에서 멈춰야 했던 지안이나 윤재의 가족사는 이미 끝난 내용으로 러닝타임만 꾸역꾸역 가져갑니다.


 고조시킬 수 있는 것은 죄다 고조시킨 뒤 밝혀지는 진실들은 그저 만들어낸 설정들로 또 다시 만들어낸 설정들입니다. 그마저도 과학적 허점과 논리적 구멍투성이죠. 그럴듯한 비주얼이나 그림을 떠올리는 데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뿌리에 자리잡은 단점들은 생명체를 만나면 반응하는 바이러스처럼 새로 뻗어나가는 각본의 가지에도 똑같은 결함을 내죠.



 SF라는 장르를 무기가 아닌 방패로 사용했습니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SF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나래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을 SF라서 가능하다며 둘러대고 있습니다. 공상 과학에서 과학이 빠지면 공상밖에 남지 않는데, 기어이 알아들을 사람만 잘 알아들으라며 장르며 전개까지 죄다 내던져 버린 마지막화로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 문학적 자아도취로 막을 내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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