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범죄급 어설픔
여러 블록버스터들의 각본가와 제작자로 활약하다가 드디어 감독으로 나선 사이먼 킨버그의 신작, <355>입니다. 장편 데뷔작 <엑스맨: 다크 피닉스>에서 함께한 제시카 차스테인을 필두로 다이앤 크루거, 페넬로페 크루즈, 루피타 뇽오, 판빙빙, 세바스찬 스탠, 제이슨 플레밍 등 꽤나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죠. 대부분의 서양권 국가들에서는 1월 초중순에 개봉되었고, 국내 일정은 오는 2월 9일로 잡혀 있네요.
글로벌 범죄 조직이 전 세계 국가 시스템을 초토화시킬 일급 기밀 무기를 손에 넣는 사건이 발생하고, CIA 최정예 요원 메이스가 사건의 해결을 위해 투입됩니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메이스는 극소수의 동료들과 함께 전장 한복판에 내몰리죠.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더욱 커지는 팀워크로 메이스와 동료들은 난관을 하나씩 극복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찍어내려면 정말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첩보물입니다. 미국이 아닌 곳에서, 혹은 미국인이 아닌 사람이 아무도 몰래 희대의 병기를 완성해 빼돌리려 하자 우리의 주인공들이 나서 빼앗는 전개죠. 디스크니 드라이브니 하면서 이거 하나만 있으면 옆집 현관문부터 세계 경제까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버튼 하나로 다 때려부술 수 있다는 자랑에서 출발하는 것이 공식입니다.
<355>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코바 정도 크기의 드라이브에 들어 있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킹해 무엇이든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원리야 뭐 그냥 천재가 만들었다고 퉁치고, 심지어 지금 창 밖을 날아가는 비행기도 추락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돈 몇 푼에 거래되려다가 사라지는 통에 우리의 주인공들이 나서는데, 각 국가의 혈혈단신끼리 뭉쳐 드림팀이 되는 구성입니다.
목표가 되는 물건이 허황되었다고 해서 꼭 엉망인 건 아닙니다.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만 해도 7편에선 전 세계 어디든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신의 눈'이, 9편에선 무슨 기계든 해킹할 수 있는 장비인 아레스가 등장한 바 있죠. 사건 자체의 스케일만 키우면 그래도 그 정도 되는 물건이니 이 정도 되는 사건이 벌어지는가 보다 하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55>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 지구의 평화를 무너뜨릴 물건이 사라졌다는데, 벌어지는 사건의 크기는 점심식사 도시락이 사라진 것처럼 굴고 있습니다. 온 기관이 다 달려들어 화력전을 펼쳐도 시원찮을 마당에 어설프기 짝이 없는 오합지졸들이 모여 세계 최고의 팀을 자처합니다. 주인공 패거리가 이 모양이니 이들의 상대, 상대와 맞선 상황 자체의 설득력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컴퓨터 한 대만 갖다 주면 잠입 과정을 책임지는 해커, 말도 안 되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맞서 싸우다가 갑자기 같은 편이 된 상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집에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상담사와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튀어나와 판의 중심 역할을 하려는 중국인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리더인 제시카 차스테인의 메이스조차도 힘 빠진 액션이 유일한 무기입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믿어선 안 되는 첩보물의 판을 열어 놓고 지나치게 쉬운 길을 가려 합니다. 음모와 배신이 판치고, 신념과 목적에 따라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최고 장점인 장르에서 고작 성별 사이에 선 그어 놓고 넘어오면 나쁜 놈이라고 뻗대고 있습니다. 시대와 흐름의 근원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 결과에만 편승해 편하게 한몫 챙겨 보려는 안일함이 가득합니다.
선악의 배치부터 관객 단 한 명이라도 속아넘어갈 사람이 있나 싶은 반전까지, 새롭거나 신선할 수 있는 모든 지점에서 고루하고 지루합니다. 도청당하는 휴대폰을 발로 밟아 부수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액션도 기대할 수 없죠. 그러면서도 다같이 드레스 빼입고 일렬로 서서 입장하는 장면은 잊지 않으며 박수를 바라니, 망상도 이런 망상이 없습니다.
인종부터 머리색까지 전대물처럼 갖춰 뭉치고는 우연이 아닌 척을 하고 있으니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데드풀>에 여자를 때리는 게 성차별인지 여자라서 안 때리는 게 성차별인지 모르겠다는(!) 대사가 나온 적이 있는데, 여기서처럼 아주 의도적으로 한 명씩 데려다 놓는 것이 진정 다양성을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애초에 대단한 고민을 한 것 같지도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