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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하우스 오브 구찌> 리뷰

가족의 가죽과 가죽의 가족


<하우스 오브 구찌>

(House of Gucci)

★★★☆


 지난 10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로 만난 지 3개월 만에 다시 보게 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하우스 오브 구찌>입니다.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셀마 헤이엑, 잭 휴스턴, 카미유 코탱, 리브 카니 등이 이름을 올렸죠. 포스터 맨 위 아카데미상 수상/후보란이 빈 배우가 없는 것만 봐도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운수회사 사장의 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는 친구가 불러 따라간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운명처럼 이끌립니다. 본인을 마우리치오 구찌라 소개한 그는 서툴지만 뜨거운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왕족이나 다름없는 가문의 무게에도 부와 명예가 아닌 사랑을 택하죠. 하지만 식을 줄 모르던 둘의 사이는 언제나 그렇듯 시간 앞에 무릎을 꿇으며 엄청난 집안 싸움의 서막을 알립니다.


 아무리 패션에 문외한이어도 '구찌'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를 아는 사람들은 '구찌'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힘 또한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히는 구찌만의 힘이 아니라, 똑같은 제품에도 상표만 달아 놓으면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브랜드의 힘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명품이 명품이라는 수식으로 지금까지 버텨 올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입니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구찌 가문의 전무후무한 집안 싸움이 시작되고 끝나는 일련의 과정을 옮겼습니다. 구찌라는 브랜드가 있고 난 뒤 3세들이 각자의 이유와 사연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거기에 또한 각자의 이유로 끼어들게 된 사람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는 난장판이죠. 풋풋한 사랑과 따스한 부성애는 물론 온갖 음모와 불륜, 살인까지도 포괄하는 총천연 드라마입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아주 특별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실화인 덕에 보는 맛이 조금 더 있고 어디 가서 써먹을(?) 상식 아닌 상식들이 살짝 늘어나기는 하지만, 스포츠 드라마처럼 아주 극적인 순간이 들어가는 영화가 아닌 이상 실화의 강점이 두드러지지는 못하죠. 오히려 이런 쪽은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로 자극적인 면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창작물의 인기가 훨씬 높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구찌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재벌 가문에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풍비박산이 시작되는 이 흔한 전개에 '내가 아는 바로 그 구찌'가 붙으면 고개가 돌아갑니다. 구찌 매장에 서 있는 사람에게 직원이 구찌 씨라고 부르는 그림은 자체의 신기함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의 구찌가 있게 된 이유이자 단계라고 하면 일단 집중할 수밖에 없죠.


 이것이 바로 <하우스 오브 구찌>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리들리 스콧 영화라고 하니 끄덕이게 되고 구찌 영화라고 하니 끄덕이게 되는, 특별하지만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은 이야기죠. 반대로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특별하긴 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장장 2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특정한 주인공이나 시점, 핵심이 되는 사건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이야기죠.



 누군가 주인공인가 싶다가도 다음 사건이 벌어지면 자연스레 스포트라이트 바깥으로 밀려나고, 어떤 사건이 기대된다 싶다가도 어느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국면이 달라집니다. 평이함과 지루함의 한 끗 차이를 잘 알아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연극의 막이 열리고 닫히듯 이어지는 배우들의 힘이 큰 몫을 해내죠.


 그냥 나열만 해도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배우들은 서로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냅니다. 고성을 지르거나 오열하는 등 뻔한 연기력 증명의 시간 없이도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죠. 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특히 자레드 레토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서야 알아챈 사람이 있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 변신까지 해내며 즐거움을 더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하나 있다면 배우들의 이탈리아식 영어가 있겠죠. 배우들이 각자 연습한 이탈리아 억양의 형태나 수준이 모두 다른지라 <하우스 오브 구찌>의 예고편 공개 때부터 소소하게 화제가 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레이디 가가는 이탈리아보다는 러시아 등 동유럽 쪽에 가깝다는 의견, 아담 드라이버가 최악이라는 의견, 자레드 레토는 마리오나 루이지같다는 의견(!)이 일단은 지배적이죠.


 애초에 죄다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것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이탈리아식 영어가 아닌 그저 각자 본인의 평소 억양을 쓰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비슷한 예로 아르만도 이아누치의 <스탈린이 죽었다!>는 소비에트 연방을 무대로 하고 있음에도 모든 배우들이 평범한 영어를 사용하죠. 레이디 가가는 억양 연습에만 9개월을 썼다는데,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지적은 지적대로 받으니 서글픈 결과입니다.



 정지된 이미지가 이어지고 해설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영상으로 제작하면 반의 반 아래로도 줄일 수 있는 내용임에도 평균 이상의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구찌 가문을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귀하다더니 한순간에 카르파치오의 재료가 되어 식탁에 올라오는 소에 비유하는 등, 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디테일마저도 구찌처럼 평범함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명장의 손길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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