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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리뷰

굳이 죽여서 기어이 되살리더니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Resident Evil: Welcome to Raccoon City)

★☆


 지금의 폴 앤더슨과 밀라 요보비치를 있게 한, 그리고 그 둘을 부부로 만들어 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돌아왔습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총 6부작으로 마무리되었고, 의외로 게임 원작 시리즈 중에서는 꽤나 성공한 입지임에도 전격 리부트를 결정했죠. 요하네스 로버츠가 메가폰을 잡고 카야 스코델라리오, 로비 아멜, 해나 존 케이먼, 톰 호퍼 등이 뭉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입니다.



 거대 제약회사 엄브렐라의 철수 후 폐허가 된 라쿤 시티. 엄브렐라가 개발 중이었던 약품의 정체는 괴소문만이 돌고 있지만, 워낙 흉흉한 마을인지라 정확한 진상을 아는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릴 적 끔찍한 사건을 겪고 고향을 떠났던 클레어가 돌아온 그날 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라쿤 시티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하죠.


 <레지던트 이블>이야 이제는 워낙 유명해진 이름이라 더 이상의 수식이 불필요합니다. 인기 비디오게임 시리즈인 <바이오하자드>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위에서 본 우산을 로고로 삼은 엄브렐라 사는 게임을 전혀 몰라도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아이콘이 되었죠. 다만 이전 <레지던트 이블>은 원작의 큰 덩어리만을 옮겨 온 것에 가깝고, 이번 영화는 캐릭터부터 소품까지 좀 더 충실한 재현을 목표로 했습니다.



 출발점에서 드는 의문이라면 이 프로젝트 자체의 존재 이유가 있겠죠. 폴 앤더슨이 제작으로 넘어가고 배우진이 싹 물갈이되었다고는 하지만, 제작사도 콘스탄틴 필름으로 동일한데다 심지어 제작비는 2002년에 나온 <레지던트 이블> 1편보다 적습니다. 시리즈 6편이 4천만 달러를 들여 흥행 수익 3억 달러를 넘겼음을 떠올리면 속편이나 외전이 아닌 리부트라는 선택이 조금 의아하긴 합니다.


 그렇게 이번 <라쿤시티>는 원작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인 클레어 레드필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려줍니다. 헤어스타일을 제외하면 의상까지 똑같이 맞춰 입은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라쿤 시티의 한가운데에서 엄브렐라 사의 음모와 맞서죠. 엄밀히 말하면 대부분의 좀비 영화들이 그렇듯 대충 큰 회사의 어두운 비밀이 엮여 있는 터라 대단한 음모라고 보기도 어렵기는 합니다.



 바로 여기에 이번 <라쿤시티>의 태생적인 한계가 모두 묻어 있습니다. 좀비 영화 하면 떠오르는 공식이나 장면들을 최소한의 조건으로만 갖추고 있을 뿐, 이번 영화만의 의의를 갖지는 못합니다. 심지어 가지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딱히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붉은 점퍼를 입은 클레어 레드필드와 엄브렐라라는 고유명사만 빼면 어떤 좀비 영화와도 별다른 차이가 없죠.


 B급 냄새 물씬 나는 괴물들의 디자인이나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몰골(?)로 튀어나오는 좀비 등 모든 것이 너무나 예측 가능합니다. 와중에 제아무리 싼 맛으로 보는 좀비물이라고 한들 제작비 부족을 드러낸 몇몇 CG는 충격적인 수준인데, 시리즈를 거듭하며 스케일 면에서도 의외의 진일보를 몇 번씩 보여주었던 기존 시리즈를 생각하면 더더욱 아쉽죠.


 각본도 볼거리도 별볼일이 없다면 남은 것은 배우가 있겠죠. 2000년대 할리우드는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소위 '여전사'라고 불리는 인기 캐릭터 겸 배우들을 만들어냈는데, 애석하게도 <라쿤시티>는 이마저도 실패합니다. 정확히는 애초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카야 스코델라리오, 로비 아멜, 해나 존 케이먼 등 다들 주력 장르에서 한 발 멀어진 슬픔에 새로운 노력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죠.



 원작 시리즈의 오랜 팬을 자처해 영화가 여기저기 넣어 둔 원작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며 기뻐할 팬이라면 모를까, 순전히 영화 쪽에서 접근한 관객들을 만족시킬 요소는 영 찾기가 어렵습니다. 게임 원작 영화에서 '적당한 재현도'를 찾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겠지만,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그를 따질 준비조차도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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