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을 배우고 배움을 가르치는
레이날도 마르쿠스 그린이 메가폰을 잡고 윌 스미스, 언자누 엘리스, 사니야 시드니, 데미 싱글턴, 존 번탈 등이 이름을 올린 <킹 리차드>입니다. 그 유명한 윌리엄스 자매를 훈련시켰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의 남우주연상을 포함한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큰 주목을 받고 있죠. 국내 개봉은 오는 24일로 잡혀 있구요.
아이가 태어나기 2년 전, 이미 78페이지에 달하는 챔피언 육성 계획으로 무장한 리차드 윌리엄스는 두 딸 비너스와 세레나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컴튼에서 나고 자랐으나 부모님의 헌신으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테니스 유망주로 성장하고, 불굴의 결단력과 조건 없는 믿음으로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스포츠 선수를 탄생시킨 여정은 그렇게 계속되죠.
또 한 편의 스포츠 실화입니다. 그런데 포인트가 조금 다릅니다.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가 등장하지만, 그들이 아닌 그들을 키워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재능을 발견하고 연습과 수련을 통해 점점 성장한 뒤 마침내 스타가 되는 것이 정석이라면, <킹 리차드>는 거기서 한 발 떨어져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을 다루고 있죠.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의 성장기에 다른 영화들처럼 접근했다면 그 어떤 개성도 확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대단한 재능이 있었고, 처음 나간 대회에서부터 진 적이 없었습니다. 훈련이야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열심히 훈련했음에도 이름을 알리지 못한 선수도 분명 있었겠지요. 상을 타고 기록을 갱신하는 광경 자체는 오히려 실화가 아니라 뻥도 좀 쳐야 더 재밌기도 하겠구요.
시선을 달리한, 작지만 강한 터치 덕에 스포츠 영화의 전형성을 아주 효과적으로 탈피합니다. 축구건 농구건 야구건, 보통 동종 영화들은 주인공이 무슨 운동을 하건 대부분의 전개는 똑같은지라 기껏해야 중반부의 승패 정도에서 차별점을 가져가곤 하죠. 그러나 <킹 리차드>에서 테니스는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정확히는 리차드 윌리엄스의 철학이 중심에 있다고 보아야 맞습니다.
장장 144분 동안 펼쳐지는 리차드 윌리엄스의 교육 방식은 그야말로 단호함 그 자체입니다.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입니다. 그 단단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 모든 돈과 명예를 가져다 바쳐도 바뀌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이 단언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결과적으로 윌리엄스 자매가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스타가 되어 망정이라는 생각까지도 누구나 할 수준이죠.
물론 그것마저도 자식들의 재능에 확신을 가진 훌륭한 안목 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향이라면 말 그대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모습은 확신이라는 단어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어찌나 집요한지 윌리엄스 자매가 지금의 윌리엄스 자매가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감상이 시도때도없이 튀어나오죠. 실화가 아니었다면 재능을 담보로 훈육을 정당화하는 각본이 될 뻔했습니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영화는 리차드 윌리엄스의 다른 모습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자식들을 자신의 뜻대로만, 성공 가도에만 올려놓는 데 집착하는 사람이 아님을 주기적으로 어필하죠.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상황에 대비한 채 완벽하게 임하더라도 슬프지만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 지점이 리차드 윌리엄스를 교육열에 불타는 기계가 아닌 한 명의 아버지로 만들죠.
그의 철학을 완전히 본받기란 불가능합니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그 시절, 그 곳, 그 집에서만 가능한 기적입니다. 그러나 <킹 리차드>는 윌리엄스 자매를 세상에 데려다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리차드 윌리엄스를 칭송하는 얄팍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 고집으로 이토록 뚜렷한 결과까지 이끌어냈음에도 안팎의 갈등이 빚어지고, 그를 통해 더불어 성장하는 자기 자신까지가 바로 영화가 추구하는 그림이죠.
소재가 발산할 수 있는 메시지를 꽤나 깊이 탐구한 뒤 그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에도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튼의 동네 양아치들이나 오지랖 이웃집처럼 다소 독립적인 가지들까지도 솎아지지 않고 러닝타임을 차지했지만, 그 또한 윌리엄스라는 뿌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인물과 반복적인 구성이 144분이라는 상극을 만났음에도 준수한 흡인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