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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2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리뷰

변수에서 상수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


 2010년 <계몽영화> 이후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박동훈 감독 신작이자 김동휘, 최민식, 조윤서, 박병은, 박해준, 김원해 등이 뭉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입니다. 이 영화 또한 2020년 초쯤 촬영이 종료되었으나 개봉 일정을 조율하다가 지금에서야 개봉에 이르렀네요. 이를 두고 최민식 배우님은 영화를 2년만에 보니 예비군 훈련장에 온 것 같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머리도 지갑도 상위 1%의 영재들만 모인 자사고에서 홀로 항상 겉도는 것만 같은 지우.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염없이 내려가는 등급을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우는 매일같이 마주치던 학교의 경비원 아저씨가 엄청난 수학 실력을 숨기고 있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두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과외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얼핏 보아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드라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탈북자와 그저 수학이 잘하고 싶은 순박한 고등학생의 만남이죠. 게다가 수학이란 자고로 모두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인 터라 진입 장벽 면에서도 꽤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160년을 매달렸음에도 풀어내지 못한 리만 가설이 등장하니 더더욱 호기심이 동하구요.



 이 진입 장벽의 완급은 꽤 준수하게 조절되어 있습니다. 똑같이 수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꽤 여러 방식의 연출을 택한 장면들이 많죠. 오일러 공식을 다루면서는 정말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순수하게 접근하고, 파이 송을 다루면서는 수학과 음악의 만남을 유도하며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내는 과정이나 정답을 찾는 과정 등을 삶에 비교하며 영화의 메시지도 확보하구요.


 수학 하면 시험이고, 시험을 등장시켜 장르를 호러나 고어(!)까지 확장시켰던 사례들도 많았더랬죠. 아마 그것들을 보며 수학의 이미지가 이토록 사악하게 박혀 가는 것을 통탄스러워한 결과물이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만큼 삶의 따스함과 가까이 닿아 있는 수학의 새삼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지요.



 하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는 그만큼의 총명함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대표적으로 탈북자 설정이 있겠죠. 아이들에게 인민군이라 불리는 이학성은 분명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하지 않을 과거가 있어 보이는 인물입니다. 말투만 보아도 북한 출신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학 쪽으로나 가정사 쪽으로나 그 이상의 이야기를 감추고 있죠. 애초에 영화 제목의 '이상한 나라'가 북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구요.


 리만 가설, 북한, 아들에 바흐, 만년필 등 조금씩만 묶으면 얼추 어색하지 않을 소재를 하나에 모두 엮으려니 좀 아슬아슬합니다. 하나가 튀어나오면 다른 하나의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옅어지는데, 맡고 있는 장르가 다르다 보니 영화의 색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집니다. 이 온도차는 같은 캐릭터의 같은 행동이 여기서는 장난이 되고 저기서는 진지한 일이 되는, 일관성의 부족으로 이어지게 되구요.



 이렇게 각자의 방향으로 퍼져나간 영화의 가지를 잡으려 영화는 악당을 내세웁니다. 바로 박병은의 김근호죠. 지우의 담임 선생님이자, 캐릭터 설정이 완성될 즈음엔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나오겠다는 것이 대강 눈에 보이는 인물입니다. 초반부만 해도 얼핏 그래도 지우를 생각해주는 사람인가 싶다가, 지우가 출제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장면 즈음부터 완전히 엇나가 선과 악의 구도를 확정하죠.


 이 구도는 형성의 과정부터 결과 모두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제아무리 억지를 쓰고 싶어도 문학이나 예체능도 아닌 수학에서 출제자나 화자의 의도를 따지는 교사는 없습니다. 그만큼 이 사람이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겠지만, 수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습니다. 직전까지 수학을 그토록 사랑하고 잘 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던 영화의 장치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한 명의 악이 상정되면서 그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단순히 그에 맞서는 선의 자리에 한꺼번에 묶이고 맙니다. 한지우, 이학성, 박보람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다른 이유와 동기로 움직이던 인물들에게 갑자기 공동의 목표가 생깁니다. 같이 움직이지 않아서 화음을 내던 것들이 똑같이 움직이게 되니 영화가 한순간에 단순해집니다. 최후반부의 연설은 그 단순함의 하이라이트가 되고 말죠.



 좀 더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었던 영화가 한순간에 입시 비리를 끼얹은 학원물에 스스로를 가둡니다. 경쟁자가 없어서 빛날 수 있었던 영역을 굳이 벗어나 훨씬 눈에 띄는 영화들이 많은 영역으로 걸어들어가죠. 삶에 수학을 빗대던 처음의 여유는 사라지고 상업적 걸쇠를 만들어내야겠다는 강박에 무리수를 던집니다. 남는 것도 분명히 있지만, 남으리라 예상했던 것들에 비하면 심심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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