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이고 우기기만
2014년 개봉된 1편 <바다로 간 산적>이 관객수 866만 명이라는 깜짝 흥행에 성공하면서 나오게 된 속편, <도깨비 깃발>입니다. 이석훈 감독의 손을 떠나 <탐정: 더 비기닝>의 김정훈 감독에게 돌아갔고, 손예진과 김남길, 유해진을 비롯한 출연진 또한 한효주, 강하늘, 이광수, 권상우, 채수빈, 김성오, 박지환, 세훈(엑소) 등으로 완전히 바뀌었죠. 150억이었던 제작비도 무려 235억으로 훌쩍 뛰었습니다.
자칭 고려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 둘은 한 배에서 운명을 함께하게 되었음에도 사사건건 부딪히는 상극입니다. 그렇게 왜구선을 소탕하던 이들은 사라진 왕실의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적 부흥수와 맞서며 해적 인생 최대 규모의 보물을 찾아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나죠.
평소 장르나 사전 기대를 딱히 가리지 않고 많은 영화들을 접하다 보면 주로 듣게 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특정 영화의 예상 흥행 성적 등이 대표적이죠. 정확도는 애석하게도 그리 높지 않은데, 개중에서도 특히나 코미디나 신파가 섞인 장르에서의 정확도는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렇게 작위적으로 만들어서 누가 보겠나 싶은 영화들이 초대박을 치는 경우가 꽤나 많았더랬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들이라면 <부산행>(1157만 명), <신과 함께>(1441만 명), <신과 함께 2>(1227만 명), <엑시트>(942만 명) 등이 있습니다. 물론 정말 엉망인 것 같더니 그대로 쪽박을 찬 사례도 분명히 있지만, 반대 경우가 더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죠. 감동이나 눈물 등의 재료들은 세대별 반응이 워낙 천차만별이라 그런 듯한데, 지금도 맞추기가 영 쉽지가 않습니다.
2014년 <해적: 바다로 간 산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봉 전 시사회에서 한숨 푹푹 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10점 만점에 3점을 매겼지만, 개봉 후 무려 866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꼽는 흥행작들 중 하나가 되었죠. 특히나 화제가 되었던 유해진 배우의 원맨쇼도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음을 떠올려 보면 원체 상황극이나 몸 개그에 인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랬던 <해적>이 깜짝 흥행에 힘입어 속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많았던 제작비는 1.5배로 뛰었고, 감독은 물론 출연진도 전면 재편되었죠. 순전히 줄거리만 놓고 보면 속편도 프리퀄도 외전도 심지어는 같은 세계관인 것도 확인되지 않지만, 어쨌든 2번을 달고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흥행에 성공한다면 3편에서 두 해적단을 만나게 해줄지도 모르지만요.
전체적인 구성은 전편을 뒤따릅니다. 어마어마한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된 해적들이 그를 찾아 떠나고, 높으신 분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또 자신만의 야망을 품은 적이 뒤를 쫓습니다. 우리의 어벙한 주인공들은 기회만 났다 하면 몸 개그에 나사 빠진 화법을 뽐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명성이나 입지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활약을 해내죠.
모든 캐릭터들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입만 열면 예고편 말미에 들어갈 법한 호방한 목소리와 대사들만 쏟아져나옵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 무대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캐릭터들의 그런 대사들이 부대끼며 만들어지는 장면이나 상황들 또한 당연히 부풀어 있습니다. 생각이나 논리 정도는 꺼두어야 하는 순간이 절대 다수죠. 엄격하고 진지해지는 순간 받아들이기는커녕 볼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두 주인공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정말 한 명의 캐릭터다운 개성만으로 분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주연급들은 다 똑같이 꺼벙함과 진지함을 오가고, 조연급이나 단역은 죄다 집단에 휘둘리는 머릿수들뿐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특정 캐릭터들은 영화의 가볍고 실없는 분위기에 편승해 통편집해도 무관한, 통편집해야 하는 비중을 끝끝내 가져가죠.
자의든 타의든 이런 구성을 택한 영화들에겐 무적의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니 각을 딱 잡고 각본을 진행시켜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먹히면 좋고 안 먹히면 원래 그런 영화라며 뭉갤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정말로 죽을 위기를 넘기는 순간은 만들고 싶으나 위기 자체는 엉뚱하기 그지없을 때, 곧바로 실없는 탈출과 함께 우린 원래 코미디라며 어깨동무를 하는 격입니다.
가까스로 일관된 코미디 분위기에 혼자 어둡고 근엄한 캐릭터가 튀어나오면 꿈에서 깨듯 영화의 실없음이 새삼스러워집니다. 여기서는 슬프게도 악역인 권상우의 부흥수가 그 역할을 하고 있죠. 주인공이 소 떼에 들이받혀 절벽에서 떨어져도 신나서 올라오던 영화가 갑자기 국가의 건국 음모를 운운하는데, 후반부 전개를 따져 보면 대강 전설이나 설화를 끌어왔어도 별 문제는 없는지라 더 아쉬운 설명입니다.
뜬금없는 걸 본격적으로 지적하려면 영화의 편집 쪽으로 가야 합니다. 의적인 무치가 해랑의 해적단에 합류하게 되는 첫 장면부터 어딘가 이상합니다. 분명 상영관에 정시에 입장해서 처음부터 잘 봤는데 뭔가 빠진 느낌입니다. 이 당혹스러움은 나머지 장면들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죠.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연히 회상이나 상상인 줄 알았던 장면이 알고 보니 그냥 다음 장면이었던 순간이 많습니다.
이처럼 각 장면의 완성도나 선호는 둘째치고 사이사이의 연결이 꽤나 삐걱댑니다. 볼거리나 자본으로 승부하는 영화들에서 종종 나오는 문제죠. 시각적인 것을 최우선으로 두다 보니 보여줄 것은 자루 가득히 들어차 있지만, 흔히 말하는 '흐름'이라는 것을 딱히 고려하지 않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확히는 그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걸 죄다 보여주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지만요.
물론 그게 먹혀드는 순간도 있습니다. 덱스터 스튜디오는 이제 한국 영화 CG 하면 떠오르는 굴지의 존재가 되었죠.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도 고양이에 소에 웬 공룡까지 등장시키며 영화 본편보다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우선하는 것처럼 보였죠. 이번에도 웬 넓적부리황새까지 집어넣는 등 비슷한 과시욕이 엿보이는 장면들도 있으나, 아이맥스 개봉까지 추진하게 만든 최후반부에선 눈이 돌아가긴 합니다.
여러모로 전편의 그림자가 짙은 영화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1편 <바다로 간 산적>은 시리즈를 의도한 각본이 아니었고, 이번에 붙은 2라는 숫자는 이야기의 연장보다는 후광을 불려 보겠다는 야심으로 봐야 하죠. 전편이 잘 된 이유를 열심히 분석해 1.5배로 두둑하게 불린 제작비를 들이부었습니다. 강점이라고 판단한 것들은 덩치를 키웠지만, 약점들은 가려지지 않고 눌려 삐져나왔죠.
전편에서 웃었다면 웃을 수는 있습니다(빈도는 전혀 비슷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전편에서 웃지 못했다면 여전히 웃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웃지 못했다면 똑같이 웃지 못하겠으나, 예전에 웃었다고 해서 이번에도 웃거나 더 크게 웃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보통은 스스로 진지할 욕심이 없음을 인정한 영화들에겐 일종의 면죄부가 생기지만, 거기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