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 가득한 무채색
그 유명한 코엔 형제 중 형인 조엘 코엔의 단독 데뷔작이자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화한 <맥베스의 비극>입니다. 문득 마이클 패스벤더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맥베스>를 보았던 것이 생각나 찾아보니 벌써 7년 전 영화네요. 이번 <맥베스의 비극>엔 덴젤 워싱턴, 프랜시스 맥도먼드, 알렉스 하셀, 버티 카벨, 브렌단 글리슨, 코리 호킨스, 해리 멜링 등이 함께했습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던 맥베스와 뱅쿼 앞에 나타난 세 명의 마녀.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들 앞에서 마녀는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되어 끝내 왕위에 오를 것이라 예언합니다. 실없는 소리라 생각하여 흘러들으려 했던 예언이 하나둘 실현되며 맥베스의 욕망엔 불이 붙게 되고, 그의 귓가에 탐욕의 속삭임을 불어넣는 아내의 목소리에 이들은 멈출 수 없는 질주를 시작합니다.
돌고 돌아 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각색이나 기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화면은 흑백이고 움직임은 이토록 정적일 수 없습니다. 정갈한 배치도 영상미고 수백 수천만 달러를 들인 컴퓨터 그래픽도 영상미지만, <맥베스의 비극>의 영상미는 단연 전자입니다. 마치 무대 위에서 오로지 연기의 힘으로만 승부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직관하는 것만 같습니다.
글자 본연의 힘에 집중합니다. 독백으로 내뱉기도 어색해 뮤지컬쯤 되는 껍데기를 씌워야 그나마 이질감을 줄일 수 있는 문어체 독백들이 쉬지 않고 쏟아지지만, 덴젤 워싱턴과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필두로 한 배우들의 에너지가 그를 상쇄하고 압도합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빛나는 문학적 성취가 문장 하나하나의 힘을 빌어 2022년의 스크린에 재현됩니다.
자신만의 <맥베스>를 만들어내려 색을 입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자신만의 색채가 되었습니다. 고전의 형식과 형태를 취하면서도 현대의 세련된 화질과 미적 감각이 혼재합니다. 고전적이라는 수식어와 낡았다는 수식어가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하는 영화입니다. 사실상 이 영화의 리뷰는 원작 <맥베스>의 리뷰라고 봐도 무방하기에 오히려 영화 쪽에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무대를 직관하는 듯한 연출임에도 되짚어 보면 인물보다는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맥베스와 뱅쿼, 레이디 맥베스 등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인물들은 초중반부 동안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일정 시점부터는 로스와 말콤, 맥더프 등 상대적으로 흐릿했던 인물들이 앞으로 나와 후반부의 전개를 지탱합니다. 허투루 소비되는 인물이 한 명도 없음을 반증하는 구성이죠.
군더더기를 제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 영화인지라 똑같은 연출을 근거로 영화의 장점을 나열할 수도, 단점을 나열할 수도 있습니다. 던컨 왕의 침소로 향하는 복도에서 맥베스는 번민하는 마음을 쉴새없는 중얼거림으로 표현하죠. 여기서 지문으로만 가득한 책의 페이지를 구연하는 덴젤 워싱턴의 존재감에 감탄할 수도, 클로즈업으로만 일관하며 숨이 차도록 급급한 대사 전달을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아마 모두가 동의할 단점이라고 한다면 아마 이 영화가 애플 TV 독점작이라는 것이겠지요. 커다란 스크린이나 빵빵한 스피커까지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한 공간에서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있는 환경 정도는 갖추고 보는 것이 좋은 영화입니다. 원체 호흡이 느린 터라 TV나 모바일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면 그러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