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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2

<더 배트맨> 리뷰

그림자 아래 뒤엉킨 야심과 욕심


<더 배트맨>

(The Batman)

★★★☆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완성 단계까지 전 세계 영화 팬들의 환호를 부른 <더 배트맨>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습니다. 팀 버튼의 1989년작 <Batman>과 구별하는 동시에 마치 이번이 진짜 배트맨임을 강조하는 듯한 작명이죠. <혹성탈출> 3부작의 맷 리브스가 메가폰을 잡고 로버트 패틴슨, 조이 크라비츠, 폴 다노, 콜린 파렐, 피터 사스가드, 앤디 서키스, 제프리 라이트, 존 터투로, 배리 케오간이 함께했습니다.



 2년 동안 고담 시의 어둠 속에서 범법자들을 응징하며 배트맨으로 살아 온 브루스 웨인. 고담 시의 시장 선거를 앞두고, 도시의 유지들을 상대로 연쇄 살인을 예고한 수수께끼의 살인마 리들러가 나타납니다. 그의 뒤를 쫓으며 세상으로 향한 브루스는 셀리나, 펭귄, 팔코네, 마로니 등 자신의 과거와도 너무나도 맞닿아 있는 이름들에 둘러싸여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죠.


 배트맨이 돌아왔습니다.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이클 키튼과 크리스찬 베일을 거쳐 벤 애플렉에게 브루스 웨인의 왕관이 돌아갔지만, 주춤대는 DC 유니버스의 미래와 함께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죠. 그 사이 히스 레저와 자레드 레토를 지나 호아킨 피닉스를 향한 <조커>가 성공하고 <버즈 오브 프레이>는 고꾸라진 와중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나오는 등 아주 혼란도 이런 혼란이 없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벤 애플렉을 제작자로 넘긴 <더 배트맨>은 로버트 패틴슨을 캐스팅하며 지금껏 가장 어린 브루스 웨인의 등장을 예고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본 적 없던 리들러를 메인 악당으로 두고는 캣우먼, 펭귄, 팔코네, 마로니 등 익숙하면서도 가물가물한 이름들까지 모두 한 번에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포장만 보면 <스파이더맨 3>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죠.


 그렇게 <더 배트맨>은 과감한 생략과 집중을 택했습니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를 거치며 벤 삼촌이 죽는 이야기는 더 이상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처럼, 이번 배트맨 역시 이미 2년 동안 배트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브루스 웨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재벌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읜 고아라는 기원 설정은 오고가는 대화에서 추측만 할 수 있을 따름이죠.


       

 배트맨을 하나의 인간보다는 하나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브루스 웨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모를 잃은 뒤 왜 하필 박쥐를 택해서 자경단이 되기로 결심했는지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범죄가 들끓고 무질서가 판치는 도시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를 전제하며 출발하죠. 배트맨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배트맨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음을 아주 탁월하게 노렸습니다.


 두려움은 도구라는 브루스 웨인의 내레이션과 함께 펼쳐지는 초반부의 전율이 엄청납니다. 고담 시와 배트맨은 영화, 만화, 드라마 등 이제는 셀 수 없이 많은 창작물에서 묘사되었음에도, 느릿느릿한 시각 정보만으로 순식간에 <더 배트맨>만의 고담 시와 배트맨을 묘사하는 데 성공하죠. 도시에게, 범죄자들에게, 공권력에게, 그리고 브루스 웨인에게 배트맨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각인합니다.



 여기서는 시선을 활용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배트맨을 바라보는 상대방의 시선이 1, 이 광경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2, 그리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배트맨의 시선이 3이라면 이 셋을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교차합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배트맨이 정면으로 다가와서(1)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2), 쓰러진 사람이 공포가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3) 연출이 하나의 상황에 모두 들어 있죠.


 이를 통해 하나의 장면으로 세 종류의 현장감을 제공합니다. 자비라고는 없이 두들기는 맨몸 액션과는 꽤 좋은 시너지를 내죠. 상대가 누구든 절대 죽이지 않는 배트맨의 신념은 이번에도 적용되어 있지만, 말 그대로 죽이지'는' 않는 정도라 청구되는 병원비에 깔려 죽을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잊어버릴 때쯤 하나씩 튀어나오는 최첨단 장비들도 보는 맛이 있구요.



 배트맨 영화다 보니 당연히 권선징악의 히어로물을 지향하지만, 좀 더 엄밀히 따지면 <더 배트맨>은 수사물에 가깝습니다. 원작에서 배트맨은 세계 최고의 탐정이라는 수식도 어색하지 않은 캐릭터죠. <다크 나이트>에서도 총알이 박힌 벽돌을 주워다가 탄도 분석을 해서 저격수의 위치를 알아내는 등 비슷한 전개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더 배트맨>은 탐정의 면모를 훨씬 본격적으로 펼쳐놓습니다.


 그 대상은 리들러와 그의 연쇄 예고 살인이 되겠습니다. 리들러는 고담 시의 엘리트 유지들을 노리면서 계속해서 수수께끼로 힌트를 남깁니다. 이 힌트는 자신을 잡거나 다음 살인을 막을 수 있는 힌트라기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목적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것들이죠. 권력으로 덮여 있는 더러운 비밀을 드러낼 힘도, 드러냈다고 해서 봐 줄 사람도 없다는 분노가 리들러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얼개는 좋지만 전개는 살짝 갸우뚱합니다. 수수께끼를 내긴 하는데 푼다고 달라지는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해답이 나오든 안 나오든 다음 단계가 알아서 닥쳐옵니다. 심지어 브루스 웨인이 문제를 딱히 잘 푸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풀 때는 문제를 듣자마자 알아내다가 풀지 못할 때는 어이없는 실수로 시간을 끕니다. 종국에는 사실상 정답을 눈 앞에 대고 흔들어서 수료증을 쥐여주는 수준이죠.


 바로 여기가 <더 배트맨>의 흥미를 가르는 지점입니다. 배트맨 영화로는 합격점이지만 수사물로는 영 어설픕니다. 그 어설픔을 배트맨 영화의 장점을 활용해 이겨내곤 하지만, 힘에 부치는 순간도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거기엔 아직 미숙한 배트맨이라는 이유를 붙일 수는 있겠으나, 이는 경찰서 출입증으로 전락한 고든이나 거기에 맞춰줘야 하는 리들러처럼 다른 캐릭터들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죠.



 무려 17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통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배트맨과 리들러를 아주 미약한 접착제 삼아 두세 개의 장(章)을 이어붙인 모양새죠. 때문에 콜린 파렐의 펭귄이나 앤디 서키스의 알프레드처럼 더 이상 관계가 없어지면 일정 시간 이후로는 아예 쓸모를 잃어버려 등장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생깁니다. 캐릭터로 보나 배우로 보나 아쉬운 처사입니다.


 반대로 조이 크라비츠의 캣우먼처럼 거의 억지로 쓸모를 만들어 각본에 내내 붙여놓는 캐릭터도 있습니다. 브루스 웨인의 과거와 고담 시의 현재가 엮인 큰 그림에서 자신의 친구가 걱정된다는 전혀 별개의 사사로운 이유로 비중을 차지하죠. 게다가 영화 스스로 이 이유로는 납득이 안 됨을 알기라도 한 듯 뒤늦게 다른 이유를 만들어 붙이는데, 그렇다고 직전까지의 상황이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상된 장점들과 예상된 단점들이 대부분 현실화된 영화입니다. 그래도 저울에 올려 보면 장점 쪽의 무게가 더 나가는 것만큼은 확실한데, 로버트 패틴슨의 브루스 웨인이 탄탄한 뿌리를 내려 지반을 굳건히 붙잡은 공이 큽니다. 익숙한 인물의 새 영화이자 생소한 인물의 첫 영화라는 역설이자 책임에 겁먹지 않고 안정적인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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