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Mar 30. 2022

<스크림> 리뷰

핏빛 감사제


<스크림>

(Scream)

★★★


 <할로윈>, <13일의 금요일>도 돌아왔으니 스크림이라고 못할 것은 없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나왔던 <스크림 4G>가 흥행 수익 1억 달러조차 돌파하지 못했고, 시리즈의 기둥이었던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세상을 떠나며 명맥이 끊기는 것만 같았던 그가 돌아왔네요. 멜리사 바레라, 잭 퀘이드, 마이키 매디슨, 제나 오르테가 등 신예들에 니브 캠벨, 코트니 콕스, 데이빗 아퀘트 등의 원년 멤버들까지 모았죠.



 25년 전 잔혹한 살인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였던 우즈보로 마을. 끔찍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모두가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바로 그 때, 고스트페이스 가면을 쓴 킬러가 돌아옵니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재현에 주인공 샘과 연인 리치, 그리고 친구들은 서로를 지켜주자며 한 곳에 모이지만, 여느 연쇄살인마 영화들이 그러하듯 죽음의 그림자는 그들을 한 명씩 집어삼키기 시작합니다.


 가면 쓴 살인마가 사람들을 썰고 다니는 영화는 이제 정말 셀 수도 없습니다. 'B급 영화'가 아니라 각 프랜차이즈의 제목을 장르명으로 삼아야 할 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제 분류라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똑같고 너무나도 반복적이라 패러디조차도 식상합니다. 오죽하면 돌고 다시 돌아 360도 변신한(?) 고전 그대로의 살인마가 세련되어 보일 지경입니다.



 이번 <스크림>은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더도 말고 덜도 아닌 <스크림>입니다. 계속해서 뒤에 붙는 숫자를 늘려 시리즈의 건재함을 자랑하는 것이 예전 유행이었다면, 요즘은 순정으로 돌아오는 것이 대세입니다. 순간의 영광에 취해 자신이 자처하고 자초한 자식들과 아류들 사이에서 숨이 막힌 원조가 자신의 잃어버린 존재감을 다시금 확고히 하려는 것만 같죠.


 원년 감독인 웨스 크레이븐이 세상을 떠나며 <스크림> 시리즈도 끝이 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시리즈의 상징인 고스트페이스만 해도 워낙 유명해 이제는 누구에게도 공포심을 이끌어내기조차 어려워졌죠. 원년 배우들을 불러들인 후속작들의 반응도 시원찮았고, 정말 해 볼 건 다 해 봤다는 시원섭섭함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남은 것은 그래도 서로를 붙잡고 있는 팬들뿐이었죠.



 바로 거기서 <스크림>은 마지막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시리즈가 팬을 만들었으니 팬이 시리즈를 만들 차례였던 겁니다. <스크림>은 극중 무려 8편까지 나온 <스탭(Stab)>이라는 가상의 시리즈를 등장시킵니다. 연쇄살인마를 소재로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해 뼈가 흐물어질 때까지 우려먹다가 퇴장한, 사실상 스스로를 투영한 영화죠.


 마을에 고스트페이스 킬러가 돌아왔음에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러닝타임 내내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각자 <스탭>에서 배운 공포영화의 법칙이나 들먹이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 보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다가 죽는다, 이렇게 해야 죽지 않는다는 대사가 끝도 없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실현됩니다. 스스로를 패러디하고 스스로의 법칙을 증명합니다.



 주인공들은 <스탭>의 팬이고,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스크림>의 팬입니다.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를 구성합니다. 조금이라도 엉망으로 했다가는 시리즈와 팬 모두를 우습게 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음에도, 영화는 적절한 완급 조절과 겸손함으로 그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죠. 이토록 특수한 상황에서만 통하는 유머로 자잘한 재미도 놓치지 않습니다.


 물론 초자연적인 현상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정통 범인 추적물의 한계는 불가피합니다. 초장부터 대놓고 모든 캐릭터들을 용의선상에 한 번씩은 올려놓으며 자진납세를 하죠. 그러면서도 걷지도 못해야 정상일 정도로 다치거나 심지어 총을 맞아도 멀쩡한 등 입 싹 닫고 뻔뻔한 순간도 왕왕 있어 당혹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가 어디냐 싶은 감지덕지함이 마지노선이 되어 줍니다.



 따져 보면 장르명을 'B급 영화'가 아니라 '스크림'으로 삼아야 한다는 농담 자체가 <스크림> 시리즈의 저력을 증명합니다. 이번 <스크림>은 지금 이 시기의 <스크림>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영화였구요. 각자의 만족도를 계산할 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정도의 기적은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가슴 속 품은 팬심의 제곱이자 세제곱으로 늘릴 관록 정도는 갖추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이트메어 앨리>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