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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2

<메이의 새빨간 비밀> 리뷰

털 빨간 사춘기


<메이의 새빨간 비밀>

(Turning Red)

★★★


 디즈니 플러스 런칭 이후 예전만큼의 묵직함까지는 느껴지지 않고 있는 픽사 신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입니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지난 11일 공개되었죠. 아마 <소울> 때처럼 국내에 디즈니 플러스 런칭이 되지 않았다면 극장 개봉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스트리밍으로만 공개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원제와 공식 제목의 차이가 좀 있는 편이네요.



 똑 부러지면서도 엉뚱한 매력이 있는 13살 메이는 요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느라 고민이 많습니다. 이 나이에 엄마의 과잉 보호를 받자니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관심사부터 인간관계까지의 모든 것이 또 변화의 물결을 겪고 있죠. 그러던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커다란 레서 판다로 변신하는(?!) 저주 아닌 저주를 떠안으며 메이의 인생은 일생일대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인크레더블 2> 시작 전 나왔던 단편 <바오>의 도미 시 감독이 장편으로 넘어왔습니다. 로잘리 치앙, 산드라 오, 에바 모스, 박혜인, 마트레이 라마크리슈난, 와이 칭 호 등이 목소리 출연을 맡았구요. 가수 앤 마리도 카메오로 잠깐 등장하는데, 나온다는걸 알고 봐도 언제 나왔나 싶은 분량이긴 합니다.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 오코넬 남매는 OST 작업에 참여했으니 은근히 걸린 이름들이 굵은 편이죠.



 첫인상이 아주 썩 좋지는 않습니다. 정확히는 어디서 본 조각들을 잘 모아두었다가 만든 느낌입니다. 이전 <소울> 리뷰에서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일부 설정이나 화면들이 <인사이드 아웃>에서 2% 애매해서 쓰지 않기로 한 것들을 모아 만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메이의 새빨간 비밀> 쪽은 좀 더 다양한 곳에서 좀 더 자잘한 것들을 모은 것처럼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캐릭터들의 외양엔 <월레스와 그로밋>으로 유명한 아드만 스튜디오의 향기가 짙습니다. 주인공 메이의 친구 프리아는 <엔칸토>의 미라벨을, 메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 타일러는 <루카>의 알베르토를 닮았죠(타일러 이미지로 구글 검색을 하면 <루카>가 나옵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변하고, 그걸 사춘기에 대유하는 각본 또한 아주 독창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구요.



 그래서 영화는 다름아닌 레서 판다를 택했습니다. 옛날 옛적에 남자들이 죄다 전쟁에 나가는 바람에 집에 남아있던 머나먼 조상님이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레서 판다의 축복을 빌었다는(!) 설정이죠. 가뜩이나 영화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녹아 있는 동양의 향취에 괜히 동물까지 동양적인 것을 골랐다간 정말이지 신선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질 테니, 아예 엉뚱한 곳을 택한 것 같습니다.


 다분히 아시아권 관객들을 겨냥한 설정들이 많습니다. 자녀의 완벽한 성공을 위하는 모습과 그에 집착하는 모습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부모, 그런 집에서 자라나면서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하는 아이부터가 그렇죠. 엄마를 원망할 수도 있는 순간에도 엄마를 원망할 생각을 해 버린 자신을 자책하는데, 이를 순전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와 환경의 차이로 묘사하고 싶은 의도가 꽤 드러납니다.


 감정이 격앙되면 변신한다는 소재는 10대의 정신적 과도기를 실체화한 것이겠고, 하고 많은 동물 중 레서 판다를 택한 것은 붉은 색과 캐릭터 산업(?)을 적절히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겠죠. 단순히 괴물로 변신하는 저주를 다루고 싶었다면 이를 숨기려는 주인공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을 전개해 나갔겠지만, 영화는 이를 누구에게나 있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로 보편화합니다.



 사실 레서 판다 조상신을 모시는 사원이 나오고 그 곳에서 레서 판다를 몰아내는 의식을 하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부터는 결말부 예측이 꽤 쉬운 편입니다. 대부분의 재미와 동력은 레서 판다로 변신하는 능력을 얻게 된 메이의 일상 에피소드에서 발생하죠. 귀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게 만드는 장면들도 산재하고 있구요. 특히 중반부 즈음부터 조금씩 풀린 고삐는 최후반부의 대환장 질주로 폭발합니다.


 메시지 쪽은 다소 의아하긴 합니다. 엄마 등쌀에 밀려 온전한 나로 살지 못했던 소녀가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냅니다. 이쯤은 영화 줄거리만 보아도 떠올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에 입체성을 더하려는 시도로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듣고 나면 엄마 캐릭터의 정당성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죠. 자신의 고통을 대물림하고 후회하는 마침표는 어느 모로 보나 썩 잘 섞여들지 않습니다.



 어찌됐든 귀엽습니다. 영화의 매력 가운데 순전히 캐릭터의 외양이 차지하는 비중만 놓고 보면 픽사 애니메이션 가운데 손에 꼽는 수준이죠. 다만 디즈니 플러스라는 것이 생긴 이후로 어느 순간부터 보는 입장에서 영화를 '극장용'과 '스트리밍용'을 구분하게 된 것 같은데, 이 다음 영화인 <라이트이어>만 보아도 만드는 입장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 듯해 조금은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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