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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2

<문폴> 리뷰

지나치게 휘영청


<문폴>

(Moonfall)

★★☆


 2019년 <미드웨이>로 비교적 안전한 상업 영화 노선을 탄 줄 알았던 재난 전문가(?) 롤랜드 에머리히가 돌아왔습니다. 제목부터 어마어마한 <문폴>이죠. 패트릭 윌슨, 할리 베리, 존 브래들리, 찰리 플러머, 마이클 페냐, 도날드 서덜랜드가 이름을 올렸고, 본토에는 지난 2월 초 개봉되었으나 국내엔 그보다 한 달 반 정도 늦은 지난 16일 개봉되었습니다.



 달 탐사 임무에서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동료를 잃은 우주비행사 브라이언. 기기 고장으로 그 어떤 증거도 남지 않은 현장에서 모든 과실을 뒤집어쓰고 불명예스러운 나날을 보내죠. 궤도를 이탈한 달이 지구에 가까워지며 모든 물리법칙이 붕괴되는 사상 최악의 재난이 발생하고, 10년 전 은폐된 진실이 고개를 든 가운데 브라이언과 옛 동료 파울러, 괴짜 KC 3인방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리게 됩니다.


 부수는 방법도 참 많습니다. 지진이나 해일쯤은 이제 재난 축에도 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전 세계 랜드마크들을 돌아가면서 부수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고, 비교적 최근작이었던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에서는 두바이를 통째로 들어 런던에 내리꽂는(!) 충격적인 상상력을 발휘했었죠. 하다 하다 달을 지구에 충돌시킬 생각까지 해내니 정말 발전은 발전입니다.



 지금까지의 롤랜드 에머리히표 재난 공식을 아주 충실하게 따르는 영화입니다. 예고편 하나 기깔나게 뽑기엔 이보다 좋은 영화가 없습니다. 달이 부서져서 지구에 떨어진다는 문장 하나만 있어도 커다란 화면으로, 아이맥스로 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행성 충돌 및 하늘로 솟구치는 중력 파도 등 실제로 그 기대에 부응하는 장면들도 꽤 있는 편이구요.


 인물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연진은 제한되어 있지만, 기승전결에 써먹을 효용을 따졌을 때나 관객들에게 원하는 유형의 장르를 연출할 때나 부족하지 않게 성격과 직업을 나누어 갖고 있죠. NASA 우주비행사, 핵무기 발사 권한을 갖고 있는 장군, 자동차 딜러, 베이비시터까지 도대체 어떻게 한 자리에 있나 싶은 사람들이 모두 지연과 혈연으로 뭉쳐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장르를 상업적인 공식에 맞춰나갑니다. 전대미문의 재난을 맞이하는 각계각층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는 가족애와 인간애처럼 근본적인 가치가 우선함을 주장하고 싶은 감독의 욕심이 크게 반영되어 있죠. 문제는 재난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렇게 작은 곳에 집중하는 모습이 일종의 집착이자 억지로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인데, 영화도 감독도 별 신경을 쓰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달의 파편들이 지구에 쏟아지며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초전박살이 나는 와중, 주인공 일행 중 한 명의 죽음을 마치 관객과 평생을 함께한 사람의 죽음처럼 극적으로 묘사하는 접근은 절대 의도한 만큼의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죠. 특히나 그 장면이 다른 장소에서 인류의 미래가 걸린 분투와 번갈아 나오는 연출은 더더욱 뜬금없이 느껴지겠구요. 손은 큰데 눈은 작은 격입니다.



 과학적 오류 쪽은 지적하는 쪽이 무조건 손해입니다. 말을 꺼내는 순간 영화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달이 지구와 가까워지면 일어날 수 있는 수천 수만 가지 이론적 사실들 중 영화에서 써먹기 좋은 것들만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반영한 영화라고 봐야 합니다. 시간이나 공간을 비롯한 세부적인 조건들은 다 젖혀둔 채 그냥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극적 장치로 써먹고 잊어버리는 영화입니다.


 의외로 이 의도는 KC 하우스맨이라는 캐릭터로 아주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감독은 각자의 기준에서 정상인이라면 도무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이론들을 사실이라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의 엉뚱함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데, 그 맞는 두 번에 주목해 그래도 시계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지 않냐는 다독임으로 가득하죠.


 어쩌면 그들의 엉뚱함에서 랜드마크만 보면 부수고 싶어 안달이 나는(...) 본인의 열정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본인이 믿는 것이 신념이 되고, 신념을 위해서라면 주변의 그 어떤 시선에도 굳건하게 설 수 있는 용기를 이야기하고 싶었겠지요. 때문에 각본상의 주인공은 패트릭 윌슨의 브라이언과 할리 베리의 파울러지만, 감독의 애정이 가장 크게 담겨있는 인물은 존 브래들리의 KC 하우스맨처럼 보입니다.



 물론 의도가 긍정적이라고 해서 결과까지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후반부쯤 접어들면 엉뚱한 것도 정도가 있다고 소리지를 사람들이 차고 넘칠 만한 설정들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하죠. 마치 달이 궤도를 벗어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 거의 교리 수준의 엄청난 설명들이 뒤따르는데, 그 앞에 쳐 둔 뻥들은 귀여워 보일 지경이라 하차 버튼이 본격적으로 울리는 지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듣자하니 그 누구도 이 각본에 투자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자체 자금을 조성해 제작비를 댔다고 합니다. 실제로 오프닝 크레딧 투자사 목록엔 'Moonfall LLC'가 나오지요. 각본에 보모를 집어넣은 화이브라더스와 딜러를 집어넣은 렉서스의 비중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전체 제작비가 1억 4천만 달러씩이나 되다 보니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비싼 독립영화 타이틀을 차지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열정도 좋지만 이제는 정말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입니다.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정도가 있지, 물이라고는 진작에 말라버린 곳을 파내려가면서 노력하는 사람의 땀방울을 예찬해 봤자 그것도 잠시뿐이죠. 약점 때문에 무너진 사람이 약점 때문에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사람들이 자신의 강점을 여전히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해 크기와 덩치만 키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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