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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2

<모비우스> 리뷰

시대에 기생하는 흡혈귀


<모비우스>

(Morbius)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침체된 극장가에서도 그야말로 엄청난 흥행 수익을 내면서 기대를 안은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의 <모비우스>입니다. 자레드 레토, 아드리아 아르호나, 맷 스미스, 자레드 해리스, 타이리스 깁슨 등이 함께했죠. 알려진 제작비는 7500만 달러로, 같은 식구인 <베놈> 시리즈가 모두 1억 달러 넘게 들였음을 따져 보면 아끼긴 아낀 영화입니다.



 선천적인 희귀 혈액병을 앓고 있는 의사 마이클 모비우스는 동료인 마틴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합니다. 흡혈 박쥐를 연구하던 중 마침내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지만, 자기 자신을 실험체로 사용한 결과 흡혈을 하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저주를 얻게 되죠. 그러던 중 마이클과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유년 시절의 단짝 마일로가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며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시작됩니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마블 스튜디오의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업계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겁니다. 특히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받던 대접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모습은 놀랍기만 하죠. <엑스맨>이나 <판타스틱 4>, 심지어 <스파이더맨>같은 마블 정통 히어로들도 당시엔 만화영화의 연장선 취급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거기엔 시대의 인식도 인식이었지만, 영화의 퀄리티나 방향성도 썩 도움이 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배우나 감독이나 이 영화가 만화책을 실사로 옮긴 것임을,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뿌리는 글이 아니라 만화임을 인식하고 있었죠. 여느 액션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악당을 무찌르는 구조여도 기승전결의 연결고리엔 만화여서 가능한 허용이나 과장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2022년쯤 된 지금에서야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처럼 그 때 그 시절의 만화적인 감성을 재발견하고 또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지만, 이 모든 흐름이 지나간 뒤인 오늘날에 그 때 그 시절의 접근법을 그대로 차용했다면 문제가 됩니다. 모든 것이 서툴고 어색해 뚜렷한 방향성을 찾아가던 시기면 모를까, 지금 와서 그러겠다는 선언은 그저 동료들의 활약에 묻어가겠다는 뻔뻔함에 지나지 않죠.



 슬프게도 <모비우스>는 여기에 너무나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례입니다. 걸린 이름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어설픔과 게으름으로 가득합니다. 수퍼히어로 장르가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20여 년 전이 떠오르는데, 그 시절의 온기가 손끝에 차오르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작용이죠. 하필 최고와 비교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스파이더맨의 후광을 자처한 것은 영화 본인입니다.


 모든 것이 급작스럽습니다. 각본을 기승전결로 구분한다고 쳐도 각 단계 역시 또 다른 작은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모비우스>는 모든 단계가 기와 결만으로 구성된 느낌입니다. 시작은 했으나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습니다. 시간이 없거나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서 생략된 것이 아니라, 매끄럽게 연결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뻔뻔하게 밀고 가는 인상이죠.



 고아원인지 병원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만난 두 소년은 관객과도, 서로와도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통성명 후 서로의 우정을 상징하는 문장을 읊조리게 한 영화는 이제 이 둘이 평생의 단짝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는 하늘이 낳은 천재가 되고 다른 하나는 재벌이 됩니다. 천재야 타고나는 것이니 그렇다쳐도 돈은 어디서 났는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이 바닥(?)에서 천재나 재벌이라는 설정이 딱히 드문 것은 아닙니다. 당장 브루스 웨인이나 토니 스타크만 해도 거의 산업을 대표하는 재벌이자 똑똑이들이죠. 그러나 이들의 머리와 지갑은 각자의 개성을 꾸리는 아주 주요한 특징들이고, 전개되는 사건의 향방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끊임없이 끼칩니다. 무엇을 얻는 이유가 되기도, 무엇을 잃는 이유가 되기도 하며 그 캐릭터와 상호 작용하죠.



 하지만 <모비우스>는 다릅니다. 마이클이 머리가 좋고 마일로가 부자인 것은 그냥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은 아무런 문제도 고민도 없이 각본에 끌어들이려는 아주 손쉬운 수단에 불과합니다. 박쥐의 DNA를 인간의 DNA와 결합하는 장면과 인공 혈액이라는 장치가 필요하니 그저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과 그 연구를 가능케 하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했을 따름이죠.


 때문에 그 설정들을 제외한 순간이나 장면들에서는 이 둘은 전혀 똑똑하거나 부유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비우스>가 갖는 근원적이고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방에 준비물들을 늘어놓고는 앞뒤 상황이나 전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쓰고 등 뒤로 던져 버립니다. 인물, 사건, 소재, 장치 등 어떤 것도 이 막무가내식 연출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상하게 흘러가는 장면에 갑자기 이게 튀어나오고 갑자기 저 사람이 튀어나옵니다. 언제 어디서 있다가 나왔는지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설득력이라는 것을 갖추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초능력 판타지 영화라는 구실을 모든 구멍에 가져다 사용합니다. 무대가 이 모양이니 뭐가 어떻게 흘러가든 납득이 될 리가 만무합니다.


 시각적인 볼거리도 미미합니다. 타이틀만 놓고 보면 모비우스라는 뉴페이스이긴 하나, 어느 모로 보나 흡혈귀나 드라큘라의 개정 혹은 각색에 불과하기에 새로운 것은 많지 않죠. 빠르게 움직이는 가운데 부분적인 슬로우모션을 거는 액션 연출은 지나치게 반복되는데, 때문에 차라리 아직 관객에게 미스터리함을 남겨두고 싶었던 초반부의 어둑한 액션이 밝디 밝은 후반부보다 나은 역설도 발생합니다.



 주인공인 자레드 레토의 마이클 모비우스조차도 별볼일없는 마당에 주조연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맷 스미스의 마일로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 중 말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수준인데,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분량이 커지며 영화를 통째로 뒤흔들죠. 아드리아 아르호나의 마틴이나 타이리스 깁슨의 스트라우드 쪽은 출연 분량을 통째로 들어내도 무관하구요.


 아주 드물게 나올 때야 얼핏얼핏 효과적이었던 얼굴 변형도 계속 보다 보면 어설픈 CG나 얼토당토않은 전개 탓에 우스꽝스러운 지경에 이르는데, 가면 갈수록 영화 쪽에서는 진지해지는 터라 이것마저도 불협화음을 냅니다. 대충 거미한테 물려서 거미인간이 되었다고 하고 넘어가야 할 영화가 온갖 과학적 근거와 이론을 끌어모아서는 훨씬 아둔한 소리와 그림을 쏟아내고 있는 것과 같은 불협화음이죠.



 최근 마블 유니버스의 성공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놀랍디 놀라운 영화입니다. 얼마 전 <베놈: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최악의 2연타네요. 홀로 실망스러운 영화라면 그저 건너뛰고 넘어가면 되겠으나, 그런 취급은 또 싫었는지 유니버스의 바지를 붙잡은 쿠키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볼모가 따로 없습니다. 그야말로 좋지 못한 판단의 덩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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