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Apr 08. 2022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리뷰

금수저 물고 태어난 시리즈의 게으름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Fantastic Beasts: The Secrets of Dumbledore)

★★☆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외전으로 3부작까지 달려온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입니다. 전편의 제목이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였음을 떠올려 보면 아마 작명 쪽에서는 영 센스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죠. 1편에서 2편으로 넘어오면서 제작비를 살짝 늘렸음에도 흥행 수익은 2억 달러 가까이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3편이 나오지 못할 시리즈는 아니었습니다.



 크레덴스와 퀴니를 포섭하고 세상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그린델왈드는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합니다. 그 첫 단추는 마법 세계의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해 머글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었죠. 그런 그의 계획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덤블도어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제자인 뉴트 스캐맨더를 중심으로 그린델왈드와 맞설 팀을 꾸리고, 그렇게 모두의 세계를 건 전투가 시작됩니다.


 에디 레드메인, 주드 로, 에즈라 밀러, 칼럼 터너, 제시카 윌리엄스, 앨리슨 수돌, 댄 포글러, 윌리엄 네이디람, 빅토리아 예이츠가 뭉쳤습니다. 전편에서 그린델왈드 역을 맡았던 조니 뎁은 변신 마법이라는 설정 덕에 큰 문제 없이(?) 매즈 미켈슨으로 바뀌었죠. 새로 합류하거나 전편 대비 비중을 확 키운 배우들의 힘이 그리 크지 않은지라 매즈 미켈슨에게 많은 기대가 실린 것도 사실이구요.



 1편 <신비한 동물사전>과 2편 <그린델왈드의 범죄>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영화였습니다. 주인공이 뉴트 스캐맨더라는 것으로 시리즈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갔을 뿐, 다루고 있는 사건의 결 자체가 달랐죠. 1편이 신비한 동물들을 둘러싸고 벌이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 위주였다면, 2편은 갑자기 마법 세계의 존망을 둘러싸고 벌이는 선과 악의 운명적인 대결이었습니다. 판의 크기가 아니라 판 자체가 바뀐 셈이었죠.


 단점은 명확했습니다. 시리즈를 이어나가려면 이야기의 크기가 커져야 했지만, 그러려면 다름아닌 주인공 뉴트 스캐맨더를 버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왕좌의 게임>쯤 되는 시리즈가 아니면 쉽게 내릴 수 없습니다. 1편이 그렇게 성공했으니 주인공을 버리는 것은 너무나 큰 모험이었겠지요. 문제는 뉴트 스캐맨더를 정의했을 때 마법사보다는 마법동물학자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겁니다.



 이제 각본은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습니다. 뉴트는 물론 훌륭한 마법사지만 아주 강한 마법사는 아닙니다. 전투력을 명분으로 내세우기엔 대체할 자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자꾸 신비한 동물들의 비중을 키우고, 그 동물들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뉴트밖에 없다며 주인공 자리를 지켜주려 합니다. 말하자면 덤블도어 대 볼드모트 구도에서 해리 포터가 가졌던 자리를 뉴트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해리 포터는 양쪽 모두와 태생적인 연결점이 분명한 인물입니다. 반면 뉴트 스캐맨더는 다르죠. 그린델왈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뿐더러, 알버스 덤블도어에게는 사실인지도 파악할 수 없는 애제자 설정뿐입니다. 남은 것은 각본이 막힐 때 손쉬운 탈출구로 온갖 능력을 모아둔 신비한 동물들뿐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완성도엔 독이 될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들이죠.



 이번 3편은 2편이 가졌던 이 단점들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서로 상관도 없는 사건에 상관도 없는 인물들이 엮여 어떻게든 상관이 있는 척을 하고 있습니다. 2편에서는 그래도 뉴트 스캐맨더가 아주 미약하나마 구심점 역할을 해냈는데, 판을 키워 마법 세계의 정치까지 끌어들인 3편에서는 그마저도 없어 세계관만 같은 서로 다른 영화들을 교차 편집한 것만 같습니다.


 마법 세계의 권력을 잡으려 날뛰는 그린델왈드와 그를 막으려는 덤블도어가 충돌하는 와중, 몇 대 두들겨맞고 잡혀간 친형을 구하러 지하 감옥에 들어가는 뉴트의 탈옥이 겹칩니다. 자신의 뿌리에 혼란해하는 크레덴스의 이야기나 지팡이를 선물받은 사랑꾼 제이콥의 모험도 얹습니다. 큰 그림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싶으면서도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해 모두 잃습니다.



 좋지 못한 선택들 가운데 단연 최악은 이 와중에도 뉴트를 어떻게든 붙잡겠다고 넣은 신비한 동물 기린(麒麟, Qilin)이겠죠. 이전 시리즈까지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켕기지만, 그래도 이 동물이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신적 능력을 갖고 있어 참된 지도자를 판별할 수 있다는 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린델왈드가 기린의 선택을 이용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발자국부터는 한 발 한 발이 코미디고 무리수입니다. 그런 동물이 있다는 것과 동물학자가 나와야 한다는 건 얼핏 그럴듯해 보일 뿐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승부의 결정타를 위해 폭탄을 터뜨려야 한다고 해서 폭탄의 작동 원리를 아는 사람이 주인공일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저 폭탄을 던질 줄만 알면 됩니다.



 전편까지만 해도 사람을 산 채로 불에 태우던 악당이 하필 신비한 동물을 확보해 권력을 잡으려는 계획뿐인 것도 우습지만, 막상 실현되는 과정은 더합니다. 지도자 후보를 세워놓고 기린이 인사를 하면 투표고 뭐고 필요없이 전 세계인들이 인정한다니, 반장선거도 이보다는 이성적입니다. 뉴트와 신비한 동물들을 가운데에 놓으려고 쓴 억지가 세계관 전체를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덤블도어를 주인공으로, 그린델왈드를 메인 악당으로 놓고 정직한 선과 악 구도로 붙었어야 하는 영화에 본인이 줄기라고 착각한 가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격입니다. 웬 유서프 카마, 랠리 힉스, 애버포스 덤블도어, 심지어 뉴트의 조수인 번티까지 자기 자리를 내놓으라며 아우성을 치는 통에 정작 정말로 주연급 조연으로 나섰어야 할 크레덴스는 들러리 신세로 전락하죠.



 마법은 훌륭한 각본의 양념이 되어야 합니다. 마법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전개를 가능케 하는 쾌감을 유도해야 하죠.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하나의 주문이 하나의 기능만 해냈고, 이마저도 어린 주인공들의 미숙함 덕에 이중 제약이 되어 이 의도를 훌륭하게 실현했습니다. 하지만 손짓 한 번에 닥터 스트레인지 부럽지 않은 요술을 난사하는 이 시리즈는 마법을 말 그대로 망가진 각본을 고치는 연장으로 여깁니다.


 누구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어떤 이야기도 중심이 되지 못합니다. 주인공이 그리 많지도 않음에도 서로가 서로의 전진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됩니다. 2편과의 접점은 지나치게 많고, 해리 포터 세계관을 열심히 익혔어야 알 수 있는 소재나 관계들도 별다른 설명 없이 주루룩 등장해 진입 장벽도 굉장히 높죠. 심지어는 이번 영화의 전개만을 위해 이미 마침표가 찍힌 예전 설정도 툭툭 건드리는 악수도 둡니다.



 장점들은 모두 시리즈와 세계관이 이미 갖고 있던 것에서 오고, 단점들은 모두 이번 영화가 새로 만들어내고 새로 보여주는 것들에서 옵니다. 시리즈 속편에겐 불명예도 이런 불명예가 없죠. 그러나 그 이미 갖고 있던 것의 힘이 워낙 강력한 통에, 그저 이것이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만족할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애초에 얼마든지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금수저의 가장 큰 무기죠.

작가의 이전글 <모비우스>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