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도 없으니 눈 감고 직진
2019년 <6 언더그라운드>로 한국을 찾기도 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이 3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제이크 질렌할, 에이사 곤살레스가 뭉친 <앰뷸런스>죠. 로리츠 먼치-피터슨 감독의 2005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삼았다는데, 정작 마이클 베이 본인은 자신만의 <앰뷸런스>를 만들기 위해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고 하니 이걸 원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 역전을 위해 완벽한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 동생 윌. 함께 자랐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 온 두 형제는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인생을 바꿀 위험한 계획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 둘은 구급대원 캠과 부상당한 경찰이 탑승한 앰뷸런스를 탈취해 끝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질주를 시작하죠.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앰뷸런스>는 맡은 폭발(?)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던 마이클 베이가 쉬어가는 영화라고 대놓고 공표했습니다. 400억 정도면 지금껏 감독했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저예산인 축에 속하고, 받은 예산으로 화약 잔뜩 사고 드론 카메라 사고 남은 돈에 맞추어 적당히 때려부수는 영화죠. 기승전결이라고 해 봤자 시작과 동시에 탈취한 앰뷸런스로 영화 내내 질주하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이렇다할 극적 전환점을 꼽기가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탈출 시도를 하거나 계획이 어그러질 뻔하는 등 긴장을 부여하는 순간은 한두 번씩 있지만, 어쨌든 'LA 도심을 무대로 질주하는 앰뷸런스'라는 대전제엔 별다른 변화가 없죠. 액션은 단조로우니 남은 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은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힘이 되겠습니다.
주인공 윌은 명예를 아는 참전 용사입니다.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정의란 무엇인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에게 필요한 병원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죠. 오로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고 싶지 않았던 일에도 손을 댄 인물이기에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범죄자 주인공 무리 중 이입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반면 대니는 다릅니다. 개인 사업을 한다더니 수중에 깨끗한 돈은 없습니다. 집안 내력이었던 범죄자의 한탕주의가 이미 뼛속 깊이 뿌리박혀 이런 짓이 아니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업 영화의 주인공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성은 갖고 있습니다. 재미로 사람을 죽이거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 형제마저 저버리는 짐승과도 같은 짓은 결코 하지 않을 인물이죠.
이 둘의 충돌은 영화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가 됩니다. 계획한 범죄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맞닥뜨리고, 그러면서 분명 같은 마음으로 출발한 주인공 일행이 다투는 모습은 사실 흔한 그림이죠. 좀 더 못된 쪽이 차마 그만큼 못되지 못한 쪽을 제거하는 것도 애석하게도 영화에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겠구요.
그러나 <앰뷸런스>는 약간의 변형을 시도했습니다. 윌과 대니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입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이 둘의 우정이자 형제애를 확신할 수 없는 긴장을 부여한 셈이죠. 돌아서려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지만, 반면 지켜주려면 죽을 때까지 지켜줄 수 있는 사이입니다. 이 불확실성은 범죄자의 운명적 권선징악을 만나 누가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신선함을 더합니다.
마이클 베이와 저예산의, 누구도 예상치 못한 궁합입니다. <트랜스포머>처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을 땐 해야 하는 것과 정작 하는 것의 불협화음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았죠. 선택지가 많으니 눈이 돌아가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에서 시선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때엔 고른 것들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했고, 그 결과는 긍정적인 쪽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전 영화들에서 발현되지 못했던 장점들도 나타났고, 인물들을 가운데에 놓고 빙글빙글 도는 카메라워크나 어딘가 타이밍 이상한 농담, 형형색색 수퍼카 등 마이클 베이 특유의 개성들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여기서 이전 영화들이 갖고 있었던 단점들까지 사라졌다면 정말이지 마이클 베이 이름 달고 다온 영화들 중에서는 최고 축에 속하겠지만, 애석하게도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인물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이성적인 판단을 너무나 쉽게 정당화하는 연출이 대표적이죠.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장에서 절대 너를 두고 가지 않겠다며 목숨을 내놓는 친구/연인/형제 그림을 제대로 내놓으려면 영화의 시작부터 해당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까지 계속적인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마이클 베이는 예전부터 이것을 때 되면 어련히 등장하는 재료로밖에 취급하지 않죠.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 관계도를 더해 순간적인 신선함은 확보하지만, 정작 그것이 흘러가는 무대는 다시 이보다 더 전형적일 수 없는 터라 그 신선함을 금방 잡아먹습니다. 결정적인 요인을 따지자면 윌과 대니의 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극의 진행을 위해 계속해서 등장하는 캠의 존재겠죠. 그렇다고 캠을 빼면 영화가 나아갈 수가 없으니, 캠에게도 약간의 깊이를 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슬로우모션이란 것을 처음 발견한 잭 스나이더마냥 시도때도없이 남발하는 드론 카메라도 과유불급이고, 별 소개나 전조도 없다가 막상 필요해지니 뒤늦게 덧붙이는 듯한 주인공들의 과거와 회상도 130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엔 독이 됩니다. 그래도 어쩌면 영화를 보며 논리와 설득력을 진지하게 따지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이클 베이 근래의 커리어에선 돋보이는 작품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