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삼삼한 소모험
형제 감독 아담 니와 아론 니가 함께 메가폰을 잡고 산드라 블록, 채닝 테이텀, 다니엘 래드클리프, 브래드 피트 등 의외의 화려한 이름들이 모인 <로스트 시티>입니다. 본토에서는 지난 3월 말 개봉되었으나 국내 개봉 일정은 그보다 한 달 정도 늦어졌네요. 대략 7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으니 두 배인 1억 5천만 달러는 벌었어야 하는데, 8천만 달러 선에서 멈추며 꽤나 고전하고 있죠.
전설 속 보물을 차지할 생각에 눈이 먼 재벌 페어팩스는 보물의 유일한 단서를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로레타를 납치합니다. 고고학자를 꿈꾸다가 작가로 전향하면서 녹여낸 배경 지식에 누구도 알지 못했던 비밀이 숨어 있었던 탓이죠. 어쩔 수 없는 비즈니스 관계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야만 하는 책 커버모델 앨런은 의문의 파트너와 함께 위험한 섬에서 로레타를 구할 모험을 떠납니다.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물은 출발 전 아주 거대하고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다름아닌 타겟 연령층이죠. 모험물은 모두 기본적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을 노리지만, 언뜻 같아 보이는 덩어리에서도 아주 미묘한 층이 존재합니다. 시작 단계의 그 작은 차이가 <인디아나 존스>부터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를 구분해내는데, 이것마저도 잘 섞은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잘 만든 모험물과 그렇지 못한 모험물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일관성이죠. 한두 명이 머리를 맞대고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었던 단서들을 홀로 찾아내 일생일대의 보물을 얻는 기승전결부터 허황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주 잘 가리거나 굳이 따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실력이고 능력이죠. 웃긴 것과 우스꽝스러운 것, 단순한 것과 무식한 것의 차이를 구분해야 합니다.
<로스트 시티>는 이 고민을 장르 자체에 녹여낸 영화입니다. 코믹 어드벤처인데 타겟 연령층은 분명 성인입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코믹 어드벤처라면 관람등급을 확 높여 병맛이나 19금 개그로 흐를 법도 한데, 모험물의 기승전결에는 또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웃기고는 싶으나 우스꽝스러워지고 싶지는 않고, 단순하고는 싶으나 무식하고 싶지는 않은 열망이 곳곳에서 느껴지죠.
대부분의 장면이 평균 이상입니다. 유머와 액션의 조화가 나쁘지 않고, 산드라 블록과 채닝 테이텀의 조합도 은근히 잘 들어맞습니다. 소위 말하는 A급의 고상한 유머와 B급의 병맛 유머 사이의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는데,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면서는 게이지가 후자 쪽으로 확 기울면서 매력이 극대화되죠. 디즈니 영화였다면 브래드 피트를 주인공으로 한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를 기대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신중함이 우유부단함으로 탈바꿈하는 순간도 더러 있습니다. 특히나 모험물이라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거대한 볼거리 하나쯤은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데,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로스트 시티>는 로맨스라는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죠. 이는 말도 안 되는 보물 힌트 등 워낙 가벼운 분위기 덕에 막판까지 어찌저찌 잘 버티던 요소들에 문득 고개를 돌리게 합니다.
배우의 매력으로 보나 캐릭터의 입체성으로 보나 주인공 중엔 채닝 테이텀의 앨런에게 눈이 갑니다. 인기 프로그램 <립싱크 배틀>에 제나 드완과 함께 나와서는 충격과 공포의 비욘세/엘사 분장을 했던 뻔뻔한 매력이 왜인지 조금씩 비어져 나오죠. 영화의 엉뚱한 선회는 앨런의 바로 그 이질적인 매력을 한순간에 예측 가능한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터라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한 방향에는 얼추 들어맞으면서도 장르의 이름값에는 살짝 심심합니다. 볼거리의 부재를 배우와 캐릭터의 힘으로 충당하죠.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기에 실망스럽다고 하기엔 조금 가혹하지만, 애초에 영화 쪽에서 전설의 보물을 내세웠기에 알면서도 내심 기대하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모로 볼 때 모험보다는 소동에, 보물보다는 귀금속에 가까운 사이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