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빨랐죠
2020년 개봉된 <수퍼 소닉>은 8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3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공동묘지였던 게임 원작 영화의 역사를 썼습니다. 수월하게 진행된 속편 작업은 2년만에 <수퍼 소닉2>로 결실을 보았죠. 1편의 감독 제프 파울러와 출연진 벤 슈와츠, 제임스 마스던, 짐 캐리, 티카 섬터가 모두 돌아왔고, 뉴페이스로는 이드리스 엘바가 새로 합류했습니다.
도시의 악당들을 물리치며 바쁘게 지구를 지키고 있는 우리의 친구 소닉. 버섯 행성으로 쫓겨나 소닉에게 복수할 날만 기다리던 천재 악당 로보트닉은 엄청난 힘을 지닌 에메랄드를 차지해 세상을 지배할 야망을 되새깁니다. 그런 그와 합류한 미지의 존재 너클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소닉은 하늘을 나는 꼬리를 가진 귀여운 파트너 테일즈의 도움으로 거대한 대결을 준비하죠.
줄거리만 보아도 만화 혹은 게임 시리즈의 전형적인 확장 전개 방식을 아주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1편의 악당이 새로운 세력을 모아 다시 돌아오고, 고전을 면치 못하던 우리의 주인공은 새로운 기술 내지는 능력을 얻어 위기를 타파하죠. 원작의 세대나 느낌까지 같이 고려해보자면 <트랜스포머>나 <닌자 터틀> 시리즈를 떠올려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 2편은 여러모로 <수퍼 소닉> 시리즈의 세계관을 불리는 영화입니다. 1편 말미에 등장이 예고되었던 테일즈가 본격적으로 합류하고, 함께 인기 캐릭터로 군림했던 너클즈가 악역으로 등장하죠. 원작 팬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마스터 에메랄드는 물론 설원이나 사원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장면들도 잔뜩 추가되었습니다. 게임 세상에 링 포탈을 열어 영화 세상과 연결시키려는 작품이죠.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제작비는 살짝만 올랐음에도 뭘 어떻게 아껴서 잘 썼는지, 스케일은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죠. 무대도 계속해서 옮기고, 펼쳐지는 장면의 규모도 꽤나 큽니다. 소닉의 스피드와 너클즈의 힘, 로보트닉의 기술력 등 각기 다른 볼거리로 무장한 주조연들 덕에 소닉 시리즈 팬들이 기대할 만한 구경은 원없이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전달 방식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넣기로 결심한 새 볼거리들을 한아름 들고 와서는 발치에 한 번에 쏟아붓습니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에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저 넣고 싶은 장면들을 대충 기승전결의 순서만 맞추어 나열합니다. 어차피 외계 생명체들을 주인공 삼아 무한의 에너지원을 두고 벌이는 판타지라는 설명을 구실 삼아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죠.
사실 이 불성실한 구성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계 행성에 몸만 달랑 떨어진 로보트닉이 무려 차원문을 여는 기계를 혼자 뚝딱 만들어낸 것이야 대충 만화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거기서 갑자기 너클즈가 튀어나와서는 같이 소닉을 잡으러 가자고 합니다. 앞뒤 장면이나 상식의 논리로 허용이 되는 설정과 허용이 되지 않는 설정을 동시에 집어넣어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죠.
각본이 가다가 막히면 먼저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이나 그 전까지 꺼내둔 것으로 해결하려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수퍼 소닉2>는 곧바로 미지의 무언가가 미지의 힘을 발휘해 길을 냅니다. 문제가 생기려고 하면 즉시 해결 치트키를 입력하는 격이라 뭐 하나 깊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만나자마자 친해지고 싸우자마자 화해합니다. 얼굴 보여줬으니 얕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자꾸 나와서 러닝타임을 차지하는지 모르겠는 크고 작은 요소들도 너무 많습니다. 작게는 테일즈와 소닉이 러시아 술집에서 벌이는 댄스 배틀처럼 하나의 장면부터, 크게는 소닉과 상관도 없는데 꾸역꾸역 나와서는 자기 에피소드 확보에 열을 올리는 레이첼, 랜달, 웨이드까지 다양합니다. 후자의 인물들은 영화가 끝날 쯤에는 극중 마지막 등장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여기서 최대 피해자는 다름아닌 이드리스 엘바의 너클즈입니다. 알고 보니 1편 시점에서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닉을 찾아 헤매던 운명의 라이벌이라더니, 맹목적인 우정과 사랑을 내세운 영화 덕에 그 머리로 어떻게 우주에서 문명을 이루었는지 모를 무식쟁이가 됐죠. 그러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짐 캐리의 존재감에 완전히 묻혀서는 귀여움이라도 담당하고 있는 테일즈 이하의 조연으로 전락합니다.
여전히 물 만난 듯 원맨쇼를 펼치는 짐 캐리를 제외하면 성격, 개성, 서사 등 외모를 제외한 어떤 면에서도 내세울 만한 캐릭터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주인공 자격 간신히 갖춘 소닉을 제외하면 누구도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찾지 못하죠.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이미 잘 알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환영받을 만할 뿐, 새로운 팬들을 유입할 매력은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캐릭터의 힘으로 굴러가는 프랜차이즈에겐 치명적인 서술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것이겠죠. 테일즈와 너클즈, 마스터 에메랄드 등 이게 나온다고만 해도 환호할 만한 것들을 잔뜩 준비했다며 먼저 신이 나 버렸으니 생각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커다란 가능성을 가지고 해낼 수 있는 최소한에 불과한데, 그 절대적인 크기가 그렇게까지 작지는 않은 덕에 얼추 버티고는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