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May 15. 2022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리뷰

죄 없는 자 먼저 돌을 던져라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화려한 휴가>, <7광구>, <타워>, <싱크홀>의 김지훈 감독 신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입니다. 사실 2017년에 촬영된 영화인지라 이제는 출연한 배우들도 내용이 가물가물할 것만 같지요. 설경구, 천우희, 문소리, 오달수, 고창석, 김홍파, 성유빈, 정유안, 강신일 등이 뭉쳤고, 개봉을 연기하는 5년 동안 20세기 폭스도 사라지면서 신세계 그룹의 신생 컨텐츠사인 마인드마크의 손에 들어간 작품입니다.



 명문 한음 국제중학교 학생 김건우가 같은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남긴 채 의식불명 상태로 호숫가에서 발견됩니다. 병원 이사장 아들 도윤재, 전직 경찰청장 손자 박규범, 한음 국제중 교사 아들 정이든, 그리고 변호사 강호창의 아들 강한결. 지목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지만, 담임 교사의 양심 선언에 세상의 이목이 쏠리며 모두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납니다.


 제목부터 강렬하기 그지없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하타사와 세이고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두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관객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학교 폭력을 소재로, <방황하는 칼날>, <파수꾼> 등의 동류들을 떠올려볼 수 있겠구요. 보통은 카메라의 시선을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아이와 간접적으로 개입된 어른 중 한 쪽과 일치시키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후자 쪽입니다.



 사실 전반적인 구성은 그리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가해자 쪽은 부모든 자식이든 돈과 권력이면 못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피해자 쪽은 어디 하나 도움의 손길 내밀 곳도 없이 사지에 몰려 있죠. 일말의 양심은 이토록 차가울 수 없는 현실과 충돌해 상처입거나 깨지기 일쑤지만, 그러면서도 옳고 그름의 절대적 잣대는 최후이자 일말의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때문에 이런 영화들이 쉽게 택하는 노선이라고 한다면 선과 악의 구분이 있겠습니다. 선한 사람들은 끝도 없이 선하고 악한 사람들은 끝도 없이 악합니다. 피해자 부모가 가해 학생을 위해 도시락을 싸 온다거나, 가해 학생은 자신의 죄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이 일련의 심판 과정을 따분한 휴가 정도로 여기는 그림이 되겠죠. 보는 사람의 감정에 불을 붙이기도, 영화의 메시지를 손쉽게 강화하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피해자 쪽이 아닌 가해 학생의 부모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조금 다른, 어렵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는 길을 택합니다. 나름대로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웠다고 생각한 아들이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의 그 참담함, 그러나 이내 어떻게든 내 아들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결심에서 출발한 결단들이 뒤엉키며 벌어지는 사건이 영화의 아주 커다란 동력이 되죠.


 관객의 입장에서 나라면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는 못 하겠다고 여길 만한 다른 가해자 부모들에 비해, 설경구의 강호창은 나라도 어쩌면 저렇게 할지 모른다는 아주 섬세한 경계선에 머무르는 인물입니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괴감부터 아들을 향한 원망이 뒤섞인 가운데 이번만 잘 넘기면 모든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 아닌 희망이 공존합니다.



 선도 악도, 옳음도 그름도 아닌 곳에서 그저 다음을 위해 질주합니다. 여기가 나의, 아들의 끝이 아니길 바라는 그 간절함으로 그저 어떻게든 이 다음 페이지만 이어나가고 싶다는 아주 원초적인 열망이죠. 모두가 손가락질할 수 있지만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건의 전개와 함께 시시각각 달라지는 호창의 내면과 시선을 관객의 시선과 아주 자연스럽게 일치시킨 덕입니다.


 분명 도덕과 정의의 저울에서는 개탄할 행동뿐이지만, 나라고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으리라는 씁쓸함은 뿌리가 되어 줄기와 가지를 뻗어나갑니다. 도대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을 작자들의 끔찍한 행태에 혀를 차면서도, 그들 또한 그 작았던 뿌리가 커져 만들어낸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나와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심리적 순환이 이 영화의 강점이자 무기가 되겠지요.



 호창을 제외한 인물들은 한없이 착하거나 한없이 악한 등 비교적 1차원적임에도, 관객과 눈을 공유하는 호창을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게끔 하는 물결 하나하나인지라 크게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면 영화의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어 영화와 현실의 접착력이 약해졌을 테지요. 이처럼 단단한 주인공과 그를 지탱하는 각본은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얼룩을 무늬로 보이게 합니다.


 개중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물은 오달수의 도지열입니다. 첫 등장에서부터 누구나 그 검은 속을 대강은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끝없는 악의와 뛰어난 영향력이 합쳐져 그러지 않아도 예측을 조금씩 빗겨갸는 것이 매력인 각본에 큰 생명력을 부여하죠. 영화가 관객들의 머릿속에 심을 씁쓸한 뿌리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잎사귀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물론 각본의 기승전결 그 자체에 집중하느라 설득력을 잊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을 다룬 드라마긴 해도 진실을 추적하는 수사물이나 법정물의 색도 어느 정도 있는데, 그렇다면 따라와야 할 증거나 증인 등의 완성도 쪽에는 아주 큰 신경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이죠. 후반부쯤엔 더 쉽거나 당연한 길이 있음에도 영화가 연출하고 싶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애써 둘러 가는 느낌을 더러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증거들은 블랙박스나 녹음기로 수집되는데, 영화가 잔뜩 힘을 주고 연출하는 몇몇 장면은 그런 증거들 한 방이면 존재조차 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한창 그러다가도 또 다른 장면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이런저런 기술을 활용해 사건을 전개하거나 전말을 밝히고 있으니 일관성을 해칠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꽤 균형잡혀 있습니다. 무작정 감정에 호소할 수도 있었고, 오히려 정의감이 지나쳐 반쯤은 허구의 영웅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지금 자신이 다루는 것, 그리고 그를 다루는 방법을 충분히 고민했습니다.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을 단순히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완성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수퍼 소닉2>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