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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15. 2022

<야차> 리뷰

개성을 모아 붙인 몰개성


<야차>

★★☆


 2017년 <프리즌> 이후 5년만에 돌아온 나현 감독의 신작, <야차>입니다. 2020년 초 촬영을 마무리짓고 개봉 시기를 조율하던 쇼박스가 결국엔 넷플릭스에 판매한 작품이죠. 설경구와 박해수를 주인공으로 이엘, 송재림, 진영(갓세븐), 양동근, 이수경, 진경, 진서연, 이케우치 히로유키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걸린 이름들이 있다 보니 넷플릭스엔 지난 4월 8일 공개되어 꽤 화제를 모았구요.



 전 세계 스파이의 최대 접전지인 선양에서 활동하는 정부 소속 첩보팀. 임무 완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일명 '야차'로 불리는 팀장 지강인의 보고서가 전부 가짜인 것으로 밝혀지며, 국정원은 좌천된 검사 한지훈을 특별감찰관으로 파견합니다. 보고되지 않은 그들의 행동에 의심을 품은 지훈은 강인을 끈질기게 따라붙지만, 이내 그들의 진짜 의도와 목적이 밝혀지며 비밀 공작의 실체가 드러나죠.


 일단은 첩보물입니다. 국가와 국가가 얽히고 요원과 요원이 충돌합니다. 보통 충무로식 첩보물이라고 한다면 간첩이나 공작원 등이 등장하는 액션인 경우가 많은데, <야차>는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서양식 첩보물을 지향하죠. 높으신 분들의 음모와 배신보다는 만능 요원들로 구성된 팀이 활약하는 그림에 집중합니다. 자주 나오는 듯 은근 보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죠.



 뛰어난 팀에는 초월적인 리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설경구의 지강인이 그 역할을 하고 있죠.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명성을 실시간으로 증명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그를 다시금 공고히 하죠. 여느 창작물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규칙 따위는 간단히 무시하면서도 결과로 이야기하는 통에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하는 카리스마와 행동력, 전투력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영화는 박해수의 한지훈을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나름의 꿍꿍이를 지니고 지강인에게 접근한 인물로, 지강인은커녕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입만 살아서 날뛰는 인물이죠. 각본 입장에서는 관객의 눈과 귀를 대신하려 집어넣은 설정이겠구요. 모든 상황과 모든 인물을 모르거나 의심하니 자연히 설명해줄 일도 많아 시간 절약하기 딱 좋습니다.



 영 미심쩍은 보고서에서 출발한 사건은 북한과 일본이 엮인 거대 첩보전으로 세력을 확장하지만, 따져 보면 딱히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사건보다는 인물의 매력을 드러내는 데 더욱 공을 들이고 있는 탓이죠. 여기서 매력은 이미 있는 것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매력이란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데에서 약간의 함정이 있습니다.


 당장 예시로 든 <미션 임파서블>만 해도 엄밀히 말하면 시리즈 전체가 톰 크루즈의 이단 헌트가 이끄는 팀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일을 바로잡는 과정의 반복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과정을 어떻게든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인물을 능동적으로 끌어들이죠. 서로 다른 작업을 맡아 일을 분담하고, 똑같은 캐릭터도 매 사건마다 조금씩 다른 역할을 해내는 식이죠.



 그런데 그 때깔을 부러워한 <야차>는 속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겉에만 매달렸습니다. 전형적인 만능 주인공인 지강인을 제외한 블랙 팀의 멤버들은 장비 담당 정도를 제외하면 누가 누구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들의 구분점은 외모뿐입니다. 다 싸움 좀 하고 다 거칠고 다 사연이 있습니다. 개개인이 합쳐져 팀이 된 것이 아니라 그냥 팀이라는 덩어리가 혼자 움직이는 모양새죠.


 액션 쪽은 더욱 서글픕니다. 어떤 적이 어떤 무기를 들고 어떤 모습으로 오건 미간 주름과 슬로우모션으로 무장한 우리의 주인공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코앞에 대고 기관총으로 연사를 해도 맞지 않는 와중에 권총으로 백발백중입니다. 이것도 사실 이렇게까지 따지는 것이 조금 박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개성이나 신선함 찾기가 어려운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도 새삼스레 커 보이곤 합니다.


 들고 있는 것들이 이렇다 보니 후반부 본격적인 3국 첩보에도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들 있는 힘껏 진지해서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한데, 막상 흘러가는 상황은 허점투성이죠. 실컷 때려잡을 시간 많았을 땐 무슨 이유라도 있는 듯 서로 가만히 있다가 이제 일이 좀 걷잡을 수 없어졌다 싶을 때 마치 아무 것도 몰랐다는 듯 행동에 나서는 식입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 등 90년대 액션 스타들의 향기가 풍깁니다. 일부러 이 향기를 강점으로 탈바꿈하려는 영화들이 있는 반면, 마치 그런 낡은 것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한다는 듯 21세기의 포장으로 가린 영화들이 있죠. 후자의 경우 스스로에게서 그런 향기가 난다는 사실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유머나 정의관 등 삐걱대는 화음까지 고려해 보면 아무래도 <야차>는 그의 좋은 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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