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May 15. 2022

<공기살인> 리뷰

도발뿐인 고발


<공기살인>

★★


 2013년 <노브레싱> 이후 9년만에 돌아온 조용선 감독의 신작, <공기살인>입니다. 2016년 출간된 소재원 작가의 소설 <균>을 원작으로 했으며, 꽤 오랫동안 동명 작품으로 기획되다가 개봉을 앞두고 지금의 제목으로 변경되었죠. 김상경, 이선빈, 윤경호, 서영희, 장광, 김정태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개봉일은 특이하게도 지난 금요일인 22일이었구요.



 부인 영주와 함께 하나뿐인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의사 태훈. 어느 날부터인가 숨 쉬는 것을 조금씩 버거워하는 아들을 위해 방 안에 가습기도 들여놓고, 살균제도 열심히 넣어 가며 물심양면 간호합니다. 그러나 심해지다 못해 비극으로 닥쳐 온 현실에 모든 것을 잃은 태훈은 진실을 찾아 나서고, 공기를 타고 온 나라에 죽음을 몰고 온 범인을 밝힐 사투를 시작합니다.


 제목과 포스터, 줄거리, 원작 정보 등에서 알 수 있듯 <공기살인>은 1994년 출시되어 한국보건환경학회 추산 2만 명 가량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2012년 시작된 소송은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연루된 관계자들과 기업들의 승승장구 속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있죠. 영화는 그의 사회적 고발과 환기를 위해 제작된 것이겠구요.



 의도는 좋습니다. 좋거나 좋지 않다고 표현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당연한 사실입니다. 정의와 공익을 위해 직접적이고 또 간접적인 위협까지 무릅쓰고 만든 작품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사실을 정말로 한 명이라도 더 알게 만들기 위해 나선 작품이죠. 막대한 돈과 시간을 무기로 갖고 있는 상대에겐 진실을 아는 사람들의 무게만이 통한다는 판단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의도가 훌륭한 작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를 알지 못했는지, 무시했는지 모를 영화들의 수만 강을 이룹니다. 보통은 그 정의관과 정의감만으로 영화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원흉이 되죠. 예전에는 이런 영화를 향한 비판이 의도를 향한 비난이라 역공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조차 통하지 않게 된 지가 꽤 오래입니다.



 <공기살인>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예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탄복하여 그를 조금이라도 분명하게 전달할 생각으로 화면을 꽉꽉 채우고 있습니다. 감성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조금의 여지만 있으면 득달같이 파고들어 눈물을 유도하고, 선한 캐릭터와 악한 캐릭터는 표정부터 말투, 심지어는 단어 선택까지 이보다 극단적일 수 없죠.


 예를 들어, 굴지의 대기업 사장실이라는 곳은 검은색 가구로 도배되어 조명 하나 없는 음산한 분위기로 연출됩니다. 조직 보스의 피신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죠. 소위 한 패거리로 묶이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표정은 비열하고 태도는 안하무인입니다. 반면 우리의 선한 주인공들은 언제 어디서나 옳음을 추구하며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죠.


 이 연출의 가장 큰 단점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악행들이 창작된 캐릭터의 개성으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현실 세계의 옳음과 그름이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이 실제로도 나쁜 짓이라서 잘못되었다는 인식보다도, 이렇게 사사건건 나쁜 놈이 하는 짓이니 어련히 나쁘겠다는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사실의 전달이 핵심이자 존재 이유인 영화에겐 아주 치명적이죠.



 게다가 영화는 후반부 즈음 창작된 인물 관계도로 극적 재미와 상업성을 추구하는데, 이는 그러지 않아도 아슬아슬했던 설득력을 꽤 크게 끌어내립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 아리송하던 의심에 큰 불을 지피죠. 나쁜 사람을 나쁘게 묘사하는 데까지야 그렇다쳐도, 순전히 영화의 재미를 위한 창작은 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것은 많지 않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아예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강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쨌든 막강한 기업과 무고한 개인의 갈등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공기살인>은 그 이상으로 갈 욕심이 딱히 없어 보입니다. 정말 그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문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에서 멈춰서죠.



 분노와 의문을 유발하는 데 만족할 뿐 그를 가지고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딱히 관심이 없는 영화입니다. 그것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탓에 영화 밖을 향해야 할 감정들은 영화 안에서 소비되어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지극히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죠. 바탕이 되는 실화만 갈아끼우면 나올 영화들도 한아름일 텐데, 부디 그런 감상을 쓸 일이라도 점점 적어지기만 바랄 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야차>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