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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17. 202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리뷰

마법으로 꿰매붙인 별첨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보였던 마블 유니버스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건재함을 자랑했습니다. 그 다음 주자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도 당연히 엄청난 기대가 몰렸고, <스파이더맨> 3부작의 샘 레이미를 데려오고 티저 예고편에서부터 특급 카메오의 등장을 알리면서 팬들의 함성은 이미 하늘높은 줄 몰랐죠.


 <모비우스>,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은 비실댔고, 개봉마저도 마침 장장 2년을 이어 온 극장가의 취식 제한이 풀리는 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극장가 전체가 이번 <대혼돈의 멀티버스>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를 증명하듯 사전 예매량으로만 100만 명을 넘보는 등 온 산업이 안팎으로 하나의 영화에 사활을 걸었죠. 그야말로 대단한 열기입니다.



 스파이더맨과의 모험으로 멀티버스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꿈에서 이름모를 소녀가 등장해 찜찜하던 와중, 자신을 아메리카 차베즈라 소개한 그녀가 눈 앞에 실제로 나타납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능력을 소유한 덕에 쫓기는 몸이 된 차베즈를 그냥 두고갈 수 없었던 스트레인지는 그렇게 차원을 넘나드는 적과의 전투를 시작하죠.


 닥터 스트레인지와 멀티버스라니,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캐릭터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소재가 만났습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멀티버스의 엄청난 가능성을 몸소 증명한 마블이기에 닥터 스트레인지와의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죠. 지금까지의 마블 영화들 중 가장 호러 장르에 가까울 것이라는 선언조차도 또 한 번의 혁명을 자신만만하게 예고한 듯했습니다.



 오프닝부터 아주 당당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캐릭터와 무언가 달라 보이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뛰쳐나와 대뜸 웬 괴물과 전투를 벌입니다. 다른 영화였다면 수많은 설명이 선행되었어야 할 장면들을 자유롭게 구사합니다. 세상은 지금 내가 사는 단 하나에 한정되지 않으며, 똑같은 모습이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나 자신이 수많은 평행 세계에 걸쳐 존재한다는 설정이죠.


 일상적이어서 익숙한 현상을 영화의 세계관과 연결짓는 접근은 설득력을 빠르게 확보하기 좋습니다. <인셉션>에서 꿈은 중간부터 기억이 난다는 점을 꿈과 현실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언급한 것이 좋은 예시가 되겠죠.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무릇 꿈이란 것은 무의식의 반영과 같은 가상의 것이 아니라, 멀티버스 어딘가에 존재하는 실제 나의 기억이 투영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출발합니다.


 일단 주인공도 악당도 마법사다 보니 기본적인 볼거리는 있습니다. 뚝딱 손동작만으로도 마치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듯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죠. 물론 워낙 제약이 없어 여긴 마법을 썼다가 저긴 맨손으로 상대하는 답답함도 있지만, 어쨌든 공간을 비틀고 차원을 넘나드니 큰 화면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도 곧잘 들죠. 러닝타임도 126분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라 완급에도 쉴 틈이 없는 편이구요.



 마블 영화들 중에서는 해당 시리즈라고 해서 꼭 그 영웅의 단독 영화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사실상 <어벤져스 2.5>나 마찬가지였고,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만 해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주축으로 등장하죠. <대혼돈의 멀티버스> 또한 일단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하나, 완다 막시모프의 비중 또한 스트레인지 못지않습니다.


 여기서 그 많던 마블 영화들이 아직까지는 갖지 않았던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이번 영화 관람을 위해서는 디즈니 플러스 <완다비전>의 정주행이 필요합니다(다른 시리즈들은 안 봐도 무관합니다). 완다가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이번 영화 사이엔 단순히 대화나 언급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는데, <완다비전> 없이는 이를 이해하기 어렵죠.



 20편이 넘는 영화들을 거치며 그러지 않아도 방대할 대로 방대해진 세계관은 언젠가부터 진입 장벽이 되었다는 지적이 잦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다하다 디즈니 플러스 TV 시리즈까지 그 대열에 합류했네요. 받아들이기에 따라 영화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시리즈물에서 해 주는 최소한의 전편 설명에도 관대한 관객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멀티버스가 열린 이상 케실리우스나 모르도, 에인션트 원처럼 시리즈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훨씬 깔끔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메리카 차베즈처럼 새로운 얼굴을 내세웠어도 무관할 테구요. 그런데도 굳이 완다 막시모프를 데려온 이유라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이 마블 세계관의 일부임을 드러내고 싶어서였을 텐데, 감독인 샘 레이미 본인도 <완다비전>을 전부 보지는 않았다는 인터뷰가 다소 무색하죠.



 샘 레이미는 토비 맥과이어 <스파이더맨> 3부작의 감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전에는 <이블 데드>나 <다크맨>처럼 고전 호러 영화들에서 족적을 남긴 감독이었습니다. 그 스타일은 <스파이더맨 2>에서 닥터 옥토퍼스가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도 녹아 있는데, 기계 촉수가 처음 오작동해 연구실을 쓸어버리는 장면이나 튀는 유리 파편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 보이는 연출이 대표적이죠.


 이 연출은 취향을 크게 탄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습니다. 고전 호러가 매니아를 위한 장르 대표인 이유가 있죠. 게다가 그 연출이 고전 호러와 만나 있기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2022년의 수퍼히어로 영화에 사용되었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마블 영화들은 감독의 색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프랜차이즈형 연출이 특징이기도 하구요.



 조용한 와중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것은 기본이고, 으스스한 이야기를 하면 갑자기 실내에 바람이 불고 전등이 깜빡거린다거나, 공포에 질린 캐릭터의 눈이나 쾅 닫히는 문을 확 클로즈업하거나, 캐릭터가 카메라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거나, 일그러진 얼굴을 아래에서 비추어 그늘지게 찍습니다. 고전적인 것과 촌스러운 것 사이를 꽤나 아슬아슬하게, 가끔은 위험하게 오가는 편이죠.


 촌스럽지 않으면 좋지만 고전적이라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같은 마블 스튜디오 신작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마블의 어떤 영화와도 다른 색채를 내는데, 12세 관람가치고는 유혈이나 잔인함의 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점도 그에 포함됩니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다못해 몇몇 어린이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만한 장면들도 한 손에 세기 어렵습니다.



 위태로운 각본은 말 그대로 마법의 힘으로 지탱합니다. 지금껏 일언반구도 없었던 설정이나 장치들을 마구 지어내서는 사실 이런 대단한 것이 있었기에 이걸 찾아야 하고, 그에 맞설 또 다른 대단한 것이 있었기에 그것도 찾아야 하며, 그것들이 숨겨져 있던 저런 대단한 곳이 있었으니 거기로 향하는 등 고유명사 퍼레이드가 이어지죠. 그 전의 영화들이 쌓아 둔 캐릭터와 장면들이 없었다면 어불성설일 작업입니다.


 고전적인 연출과 이 위태로운 각본은 서로 다른 박자의 완성도 곡선을 지나는데, 이 둘이 서로 다르게 바닥을 찍는 순간에 마주치는 지점이 발생합니다. 문제는 영화의 완급이 워낙 압축되어 있는 터라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 없고, 결국엔 다른 장면 못지않게 중요한데도 무너지게 되죠. 둘 다 너무 진지하고 상황상 꽤나 중요한 싸움임에도 그래서 더 우스꽝스러운 후반부의 음표 대결이 대표적입니다.



 캐릭터의 발전이나 입체성으로 접근하면 스티븐 스트레인지보다는 오히려 완다 막시모프가 주인공에 가깝습니다. 끝없이 오만하지만 결국은 옳은 선택을 내리는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캐릭터였고, 완다 막시모프는 스트레인지의 그 완성된 인격과 아메리카 차베즈의 능력을 통해 출발과 도착이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쪽이죠.


 그마저도 세계관 단위에선 불협화음입니다. <완다비전> 리뷰에서 뭐가 어찌됐건 자신을 위해 마을 단위의 무고한 희생을 이용했음에도 사실 이런 사연이 있었으니 그럴 만했다는 설명이 뒤늦게 따라붙었고, 극중 친구인 모니카 램보의 입까지 빌려 그런 감정과 감상을 강요하는 연출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이번 영화는 <완다비전>이 손가락질을 각오한 그 포장과도 충돌합니다.



 멀티버스 소재의 활용도 면에서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라는 훌륭한 선례에 비하면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데,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사용했을 때 갖춰야 할 설득력엔 눈을 감은 채 그저 팬서비스 은행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죠. 기껏 데려온 캐릭터들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순간의 환호 이상도 이하도 노리지 않았음이 느껴지죠.


 샘 레이미,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닥터 스트레인지, 스칼렛 위치, 마블 스튜디오 등 걸려 있는 이름들의 후광이 내용물의 때깔에 착시를 일으킵니다. 아메리카 차베즈만 해도 따져 보면 능력도 어정쩡한데, 갑자기 다들 마음만 먹으면 그 능력을 빼앗아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이 슬쩍 추가되어 억지로 스포트라이트를 준 격이죠. 트레이드마크인 별 모양 충격파는 귀여움과 어이없음을 오가기도 합니다.



 멀티버스의 적용 범위를 샘 레이미라는 감독과 20세기 호러라는 장르로 확대한 것 같습니다. 그 둘의 뚜렷한 연출 방식에 마블이 갖고 있는 각본과 캐릭터를 빌려주어 나온, 팬메이드 아닌 팬메이드처럼 보이죠. 기대했던 방향이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음에도, 내가 열광하던 그들의 새롭고 또 신선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할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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