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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17. 2022

<배니싱: 미제사건> 리뷰

한결같은 케케묵음


<배니싱: 미제사건>

(Vanishing)

★★


 프랑스 감독 드니 데르쿠르와 유연석,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최무성, 박소이, 이승준, 성지루, 아누팜 트리파티 등이 이름을 올린 <배니싱>입니다. 출연진 때문에 영화의 국적이 아리송한 경우이기도 한데, 일단은 다들 프랑스 영화로 분류하고 있는 것 같지요. 최종 단계에서야 제목이 <배니싱>으로 굳어졌지만, 원래는 'Matin Calme(고요한 아침)'이라는 다소 싱거운 제목이었습니다.



 어느 날 심하게 훼손되어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맡은 형사 진호는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국제 법의학자 알리스를 찾아가 자문을 구합니다. 알리스는 본인이 연구하던 최첨단 기술을 통해 사라진 흔적을 복원해내고, 그 덕에 진호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확신하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그렇게 사건의 충격적인 실체와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의 사건을 따라 들어가다가 거대 조직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 형사의 이야기입니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는 꽤나 흔한 전개이기도 하죠. 보통은 악역의 매력 또는 사건의 신선함이 영화와 각본의 완성도를 아주 직접적으로 결정합니다. 악역의 존재감을 살려 오락 영화로 가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주인공의 매력도 함께 챙겨야 하겠구요.



 그러나 <배니싱>은 일단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피터 메이 작가의 1997년 소설 <킬링 룸(The Killing Room)>을 원작으로 두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면 또 다른 사건이 나타나는 등 영화보다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전개되죠. 이렇다할 악역의 존재보다는 말 그대로 흐릿하던 전체 그림이 점차 뚜렷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게 전체 그림의 완성도와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영화의 재미를 좌우할 텐데, 애석하게도 <배니싱>은 딱히 대단한 것을 준비해 두지 않았습니다. 일단 전자는 애초에 영화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대강의 얼개를 모두 그릴 수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아니라 장기밀매 사건이라는 사실은 유추를 시작하기도 전에 영화에서 대놓고 보여주고 출발하는 터라 실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하죠.



 후자인 수사 과정 또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요즘 영화들이 치는 뻥에 비하면 최첨단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지문 채취 기술을 무안단물처럼 들고 와서는 이것만 있으면 어떤 사건이든 해결 가능한 것처럼 판을 깔고 시작하죠. 그래봤자 시체의 신원을 알아내는 것이 전부인 터라 그 뒤로는 평범한 수사물의 전개를 따르는데, 이것이 이 영화만의 아주 큰 개성인 것처럼 몰고 가는 터라 김이 빠집니다.


 실제로는 엄청난 것일지 몰라도 영화적 장치로는 한참 모자란 이 기술에 스포트라이트를 진하게도 부여합니다. 전 세계에서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알리스 단 한 명뿐이라 알리스는 사건과 영화의 전개에 끊임없이 관여하고, 뜬금없는 우정이나 로맨스 또한 알리스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영화의 장르와 방향성을 해치죠. 누가 보면 죽은 자와 대화하는 기술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향하는 장르는 분명한데 정작 그 장르가 응당 갖고 있어야 하는 재미는 부재합니다. 장기밀매를 소재로 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아주 뻔하고 기본적인 감정의 틀 정도만 갖고 있을 뿐, <배니싱>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보여주는 신선함은 전혀 없죠. 대부분은 전형적이고 예상 가능한 것들인데, 그렇지 않은 것은 정반대로 뜬금없거나 엉뚱한 것들에 불과해 점수가 나질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진호가 줄기차게 카메라 앞에서 선보이는 스펀지 공 마술같은 소재부터 박소이의 윤아와 같은 한 명의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어 차라리 통째로 들어내는 것이 훨씬 깔끔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려는 말은 단순한데 그를 전달하는 방식이 오래되어 궁합이 영 좋지 않은 경우겠지요.



 포스터에 적힌 '전대미문의 사건'이나 시놉시스에 적힌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만큼 과장된 서술도 없습니다. 수사물 TV 시리즈였다면 시즌이 아니라 에피소드 하나 겨우 채울 분량의 이야기죠. 보여줘야 할 것만 보여주자니 88분밖에 되지 않는 러닝타임 채우기도 버겁고, 그래서 채워넣은 부재료들은 영화의 장르를 위협할 정도로 순도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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