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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17. 2022

<범죄도시2> 리뷰

기본기가 필살기


<범죄도시2>

★★★☆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무려 688만 관객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한 <범죄도시>가 돌아왔습니다. 당시 조연출이었던 이상용 감독의 데뷔작인 이번 속편엔 마동석, 최귀화, 박지환, 허동원, 하준이 돌아오고 손석구, 정재광, 남문철, 박지영, 음문석 등이 새로 합류했죠. 정식 개봉일인 5월 18일이 되기 전부터 대규모 유료 시사를 진행하며 입소문을 끌어올리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리봉동 소탕 작전 4년 후,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괴물 형사 마석도와 반장 전일만은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끼고, 그의 뒤에 한국인을 상대로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이 있음을 알게 되죠. 그렇게 나쁜 놈 잡는 데 국경이 어디 있냐는 일념에 불탄 마석도는 본격적으로 강해상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할리우드에 아놀드 슈워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제이슨 스타뎀, 드웨인 존슨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면 충무로에는 마동석이 있습니다. 출연하는 모든 영화가 똑같다고는 하지만 바로 그 맛 때문에 멈추지 않는 배우들이죠. 개중에서도 마동석은 특히나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압도적입니다. '올스타전'이 '어벤져스'라는 단어로 대체된 것처럼, '마동석'은 '험악한 액션 스타(?)'쯤을 대체하는 단어가 되었죠.



 1편 <범죄도시>는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그 특징을 전면에 내세워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였습니다. 마석도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지만, 그 아래에는 어떻게는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강직함이 잠자고 있는 인물이죠. 극악무도한 악인들과의 대치는 대단한 테크닉 따위 필요없이 그저 마동석표 주먹 한 방으로 대체되고, 그 통쾌함은 영화와 시리즈의 주 동력으로 기능합니다.


 어떻게 보면 본의 아니게 영화판의 주기를 이끈 영화입니다. 처음엔 당연히 주인공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지만, 천편일률적인 주인공들에 질린 관객들은 악역에 주목하게 되었죠. 그렇게 주인공 못지않은 온갖 사연과 개성을 겸비한 악역들이 줄을 이었고, 주인공은 형사나 경찰쯤을 번갈아 반복하며 그 악당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결말을 향했습니다.



 악역의 매력에 집중하는 영화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영화 속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완벽하고 치밀한 명성을 쌓아오던 양반들이, 그들만큼 특별해 보이지 않는 주인공에게 마치 일부러 잡혀 주려는 듯 허술하게 행동하는 것이죠. 누구든 가차없이 썰어 버리는 잔혹함으로 먹고 살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자비심으로 시간을 끌거나 기회를 주는 경우도 많구요.


 얼핏 전형적인 마동석 영화, 액션 영화처럼 보였던 <범죄도시>는 바로 그 뻔함에서 과감하게 탈피했습니다. 악역은 무시무시한데, 주인공도 그에 못지않게 무시무시합니다. 마석도는 1대 1 매치에선 무조건 승리합니다. 그것도 힘겹게 아등바등대다가 결국은 정의가 승리해야 하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파워로 한 대 치면 한 명씩 나가떨어집니다. 지금껏 이런 캐릭터는 없었습니다.



 보통 예상치 못하게 흥행한 영화들은 본인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흥행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은 원작 없이, 시리즈가 될 줄 모르고 내놓았다가 대박을 터뜨린 1편들이 그렇죠. <킹스맨>이 슬프게도 모범적인 사례가 될 텐데, 소위 말하는 병맛이나 B급의 방향성을 완전히 착각한 통에 2편에서부터 적잖은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더랬습니다.


 하지만 <범죄도시2>는 다릅니다. 1편에 자만하지 않고 차분하게 흥행 요인을 파고들었습니다. 마석도의 시원하고 통쾌한 전투력과 장첸의 카리스마, 군데군데 녹아 있는 코미디를 장점이라 여기고, 마석도의 비도덕적(?) 일탈이나 곳곳에서 풍기는 아저씨들의 향기를 단점이라 분석했죠. 파악은 끝났으니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없애는 것이 지당한 작업이겠죠.



 덕분에 1편도 충분히 상업적이고 오락적이었지만, 이번 2편은 거기서 한 번 더 정제된 인상이 강합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나 논란이 될 만한 소재와 장면들은 최대한 배제되어 있고, 전편에서 사람들이 환호했던 것들은 더욱 풍부하게 늘어나 있죠. 조폭들과 형님 형님 하며 뒤를 봐주거나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은 빠졌고, 그러지 않아도 강했던 마석도의 주먹은 타격이 아니라 파괴 수준으로 강해졌습니다.


 절차와 도의를 따지는 인물들 앞에서 마석도는 사람 죽인 놈 잡는 데 이유가 어디 있냐며 열을 냅니다. 느리고 간접적인 사법 체계보다 빠르고 직접적인 마석도의 주먹 한 방을 바라는 관객들의 마음을 정면으로 대변하죠. 나쁜 놈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상 제발 누가 좀 흠씬 두들겨 줬으면 좋겠다는 모두의 마음 속 목소리들이 뭉친 인물이 바로 마석도인 셈입니다.


 한 대 한 대 칠 때마다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액션 영화들은 종종 아무리 전직, 현직 뭐시기였다는 설정을 붙여도 저 체구로 저렇게 싸우는 게 가능한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만, 마동석 앞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어올 자리도 없죠. 거기에 1편과 마찬가지로 서로 속삭이는 장면에서도 대사 볼륨이 후시녹음 수준이라 음향에 꽤나 신경을 쓴 것처럼 보이는데, 누가 맞을 때마다 섞인 뼈 부러지는 소리의 공헌도 큽니다.



 시리즈가 된 <범죄도시>의 방향성도 공고해졌습니다. 정의가 곧 마석도고 마석도가 곧 정의니 남은 것은 질주뿐입니다. 뾰족하고 서늘한 악역은 뭉툭하고 화끈한 마석도와 대립각을 만들죠. 마석도의 주변 인물들을 적당히 고생시키며 악역의 존재감을 충분히 확보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확보해 놓은 입지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오는 마석도 앞에 하릴없이 박살나며 모두가 바라던 그림을 완성합니다.


 물론 얻은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1편은 마석도 일당과 장첸 일당처럼 그래도 집단과 집단의 대결이었지만, 2편은 마석도와 강해상이라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로 축소되었죠. 주변 인물들이 활약할 기회는 전보다 적어졌는데, 그렇다고 아예 배제할 수는 없기에 없어도 되는 비중을 일부러 만들어서 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침표는 결국 마석도가 찍기에 해당 조연들이 갈 곳이 흐지부지되고 말죠.


 다시 말해 1편에서 장첸 일당이었던 진선규의 위성락과 김성규의 양태는 모두 뚜렷한 존재감을 남겼지만, 2편의 강해상 일당들은 이름은커녕 마지막으로 등장한 장면이 어디였는지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박지영의 인숙처럼 무언가 더 있을 것처럼 무게를 잡다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되짚어보면 딱히 뭐가 없었던 조연들도 있구요. 마석도 대 메인 악당의 대립각을 시리즈의 정체성으로 삼은 여파라고 봐야겠죠.



 윤계상의 장첸이 캐릭터의 힘으로 밀어붙었다면 손석구의 강해상은 배우의 힘으로 밀어붙입니다. 2편은 시작하는 무대가 베트남이어서 활동 범위가 넓어보일 뿐, 굳이 따져 보면 장첸 쪽이 강해상의 상위 호환에 가깝죠. 하지만 일정 수준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으며 최소한 장첸 못지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충분합니다. 어차피 마석도의 주먹 앞에서 공평해질 처지인지라 서류 통과만 하면 그만이죠.


 커진 단점의 영향보다는 커진 장점의 영향이 더욱 큽니다. 웬만한 코미디 영화보다 나은 유머만 보아도 마석도와 시리즈 전체의 매력에 크게 공헌하죠. 1편 말미의 싱글이라는 대사에 필적하는 웃음 지뢰들이 산재해 있는데, 보통은 이렇게 연출하면 혼자 진지하다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잔혹한 악역마저도 이 유머의 무게추에 성공적으로 집어넣습니다.



 다들 목말라했던 정통 오락 영화입니다. 쓸데없는 교훈에 쓸데없는 땀을 빼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악당만 바꿔서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단점이 되어야 할 것 같음에도, 제발 나쁜 놈 하나 더 나와서 마석도에게 줘 터지는 그림을 보고싶게 만들죠. 이미 3편 제작과 캐스팅까지 발표된 지금, 간만에 모두에게 환영받을 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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