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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31. 2022

<벨파스트> 리뷰

가장 작은 세상이 가장 컸던 나날들


<벨파스트>

(Belfast)

★★★☆


 배우 겸 감독으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케네스 브래너의 새 연출작, <벨파스트>입니다.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집필하여 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죠. 신예 주드 힐을 주인공으로 케이트리오나 발피, 주디 덴치, 제이미 도넌, 시아란 힌즈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내엔 지난 3월 23일 개봉되었었구요.



 맑은 날이면 골목에 나와 음악과 함께 춤을 추고 해질녘엔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는, 모두가 서로의 가족을 알고 또 아끼던 1969년의 벨파스트. 어느 날부터인가 시작된 종교 분쟁이 벨파스트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빠뜨린 가운데, 가족과 짝사랑하는 소녀의 흔적 가득한 벨파스트의 골목만이 전부였던 9살 버디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릴 적 살던 지역의 이름일 뿐인데, 어째 단어 어감이 좋아 벌써부터 꽤 있어 보입니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벨파스트>는 9살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본 그 때 그 시절, 그 곳의 이야기입니다. 흑백의 화면은 흔히들 사용하듯 과거 혹은 고정된 것의 의미를 담고 있고, 일부 등장하는 컬러는 그 이후의 시간이나 열망을 담았다고 보아야 하겠죠.



 아주 넓게 보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쯤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영화입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까지 마수를 뻗친 종교 분쟁으로 잡화점 테러까지도 빈번한 일이 되지만, 9살 버디에겐 학교에서 짝사랑하는 여학생 옆자리에 앉을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더 큰 고민이죠. 대의나 정의보다는 엄마한테 혼이 날까봐 행실을 조심하는 것이 아직은 일상입니다.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런 버디를 예뻐합니다. 아직 이 험한 세상에 나설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우리 집 귀염둥이에겐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말만 들려주고 싶죠. 그러나 그러면서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혼자서 판단할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위협 앞에서는 가족에게 기댔으면 하면서도, 준비가 되었을 땐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킬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죠.



 관객들은 어른이자 제 3자의 눈으로 이를 바라봅니다. 가족들은 버디의 모습만 볼 수 있고, 버디는 가족들의 모습만 볼 수 있는 와중 관객들만이 이들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죠. 서로가 서로를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 사랑하는 모습엔 숭고함이 있습니다. <벨파스트>는 그 숭고함에 시대상과 성장담을 녹여 서로가 서로의 재료가 될 수 있도록 균형을 잡구요.


 여기서의 균형엔 영화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종교를 내세워 평화로운 마을에 화염병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는 무리가 등장합니다. 무어라 무어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버디의 가족들이 나름대로 버디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버디에겐 웬 동네 누나가 잡화점에서 초콜릿을 훔치자고 제안하는 난장판일 뿐입니다.



 이 와중 버디의 머릿속엔 성적순으로 앉는 교실에서 시험 점수를 올려 좋아하는 여학생 옆자리로 갈 생각이 훨씬 큽니다. 이 때 버디의 할아버지는 수학 시험 점수를 올릴 방법으로 숫자를 읽기 어렵게 써 보라고 조언합니다. 1과 7처럼 비슷하게 생긴 숫자들을 흐리게 써 놓으면 채점할 때 맞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올릴 수 있다고 말이죠.


 이것이 바로 <벨파스트>가 제안하는 세상살이입니다. 이 종교 아니면 저 종교라며, 이게 아니라면 저것뿐이라며 흑백 논리와 이분법에 사로잡혀 서로를 해치기 바쁜 무리들에게 세 번째 길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원하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당연히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길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깜찍하게 흘러가던 영화는 버디 할머니의 입을 빌려 결정적 한 방을 준비합니다. 아주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향한 주디 덴치의 시선엔 보는 사람의 눈길을 고정하는 힘이 담겨 있죠. 케네스 브래너 본인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그 때 그 시절에게, 그 때 그 시절을 떠난 사람에게, 그 때 그 시절에 남은 사람에게 바치는 인사는 삶의 갈림길에 놓인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울림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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