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알던 내가 아냐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 인기 드라마 시리즈를 완성시킨 뒤 영화로 넘어온 이재규 감독의 신작, <완벽한 타인>입니다. 2014년 <역린> 이후 4년 동안 소식이 없었네요.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등 반가운 이름들이 등장하며, 2007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던 <퍼펙트 스트레인저스(Perfetti Sconosciuti)>를 원작으로 둡니다. 사실상 동명의 제목이죠.
40년지기 인연을 자랑하는 고향 친구들의 모임. 오랜만의 회동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합니다. 각자의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리고, 통화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의 모든 것을 공유하자고 한 것이죠. 어쩌다 시작된 게임에 각자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모임의 분위기는 처음 제안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말로 흘러가게 됩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대사와 상황만으로 이끌어갑니다. <대학살의 신>, <퍼펙트 호스트> 등이 떠오릅니다. 영화보다는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연극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한 날 한 시에 보내버리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엄청난 내용의 연락들이 쏟아집니다. 문자, 전화, 메신저 한 통이 올 때마다 상황은 급격한 전개와 반전을 맞이합니다.
추진력이 좋습니다. 상황과 상황을 연결시키려 약간의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서로를 마구 물어뜯다가 갑자기 챙기고, 눈치껏 넘어가도 될 사소한 일들이 반쯤은 강제로 덩치를 키워 사단을 냅니다. 하지만 대부분 연극적 허용으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갑니다. 종국엔 지금껏 이렇게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꽤 괜찮은 이유까지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압축된 시간과 공간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와 곁가지를 담으려 무던히 노력합니다. 각자의 사연은 모두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고, 그것들이 서로 엮이며 또 다른 맛을 냅니다. 최소한 주인공들과 동년배라면 본인 혹은 친구의 그림자를 투영하기에 충분합니다. 전반적인 감성은 동양보다는 서양 쪽입니다. 아무래도 원작의 영향이자 한계인 듯 합니다.
아예 모르면 웃기고, 어설프게 알면 불편하며, 같은 처지라면 공감합니다(그렇다고 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타인의 일이라는 것이 다 그렇습니다. 일면식 없는 제 3자의 일이면 뭘 하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글로만 접한 일이라면 이성적인 불편함을 느낍니다. 경험해본 일이라면 그 때의 감정과 기억에 사로잡힙니다. 마침 영화가 주장하는 삶 역시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처음과 끝은 아무래도 욕심을 좀 부린 것 같습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시퀀스로 시작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자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가뜩이나 연극적으로 과장된 일부 대사들 탓에 아슬아슬했던 교훈적 톤이 한계를 넘어 버립니다. 자막엔 러닝타임 내내 유지되었던 배우들의 힘이 빠져 있는 탓도 큽니다. 마지막의 여운을 그렇게 날리느니 차라리 누군가의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