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 개성의 연쇄 추돌
충무로 최고의 흥행 감독 하면 빠질 수 없는 그 이름, 최동훈 감독과 CJ 엔터테인먼트가 손잡은 <외계+인 1부>입니다. 제목에 떡하니 적혀있듯 <신과 함께>와 마찬가지로 2부작 분량을 동시에 촬영한 시리즈물의 1부죠. 당초 <외계인>이라고 알려졌다가 이후 공식 표기가 <외계+인>으로 정해졌고, 1부의 제작비만 무려 330억 원이 넘는다고 알려진 야심작이기도 합니다.
2022년 현재, 인간의 몸에 갇힌 외계 죄수들을 관리하며 지구에 거주하는 가드와 썬더. 동시에 100명이 넘는 죄수들이 지구에 도착한 어느 날, 죄수들 가운데 심상치 않은 존재가 감지됩니다. 한편 630년 전 고려에선 얼치기 도사 무륵이 엄청난 포상금이 걸린 신검을 찾아 나서고, 천둥소리를 내는 쇠붙이를 들고 다니는 처자 이안, 용하다는 두 신선 흑설과 청운, 미지의 세도가 자장까지 합류하며 판을 키우죠.
외계인이 출몰한 현대와 도사들이 활동하는 고려가 만났습니다. 한 쪽만 잡아도 한국 영화계에서는 손꼽히는 규모의 블록버스터는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둘 사이에 문이 열렸습니다. 장풍을 쏘는 도사와 총을 든 자객이 대립하는 와중, 다른 한 쪽에서는 마블 유니버스의 아이언 맨이나 엑스맨 유니버스의 센티넬처럼 보이는 로봇들이 주먹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림임은 확실합니다. 드라마 <도깨비> 즈음 해서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타임슬립 소재가 한창 유행했었지만, 영화의 자본력이 뒷받침된 <외계+인>의 볼거리는 확실하죠. 티저에 이어 메인 예고편까지 공개된 뒤에도 일단 기대는 한가득이어도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넘쳐났습니다.
이 기대감엔 대단한 출연진도 한몫했습니다.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최유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이하늬, 신정근, 이시훈, 유재명 등 여름 시즌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들이 으레 그렇듯, 한 자리에 모인 것만 봐도 든든한 이름들이 뭉쳤죠. 언제나 기본 이상은 해 주는 배우들은 물론 스크린에서 곧잘 보기 쉽지 않은 배우들이 만난지라 기대 포인트는 한 손에 꼽기 어려웠습니다.
소재가 소재고 줄거리가 줄거리다보니 초반은 영화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데 열을 올려야 합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외계+인>은 크게 현재와 고려 시대라는 두 시간대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에선 외계 문명이 자신들의 죄수를 관리할 행성으로 지구를 점찍어 지구인들의 몸 속에 자기 행성의 죄수를 무작위로 가둡니다. 당연히 죄수가 들어갈 몸에게 동의를 구하는 절차 따위는 생략되어 있죠.
몸 속에 들어간 죄수는 의식 없이 그대로 갇혀 그 인간이 죽으면 함께 죽으면서 형벌이 완성됩니다. 그러나 일부 죄수들의 경우 몸 밖으로 나올 수 있고, 그를 탈옥이라고 부르죠. 극중 김우빈이 맡은 가드와 가드의 동료인 썬더는 지구에 상주하며 탈옥한 죄수들을 다시 잡아 가두는 일을 하는, 정확히는 그런 작업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이구요.
한편 고려에선 아직 어설프지만 딱 봐도 잠재력 하나는 엄청나 보이는 도사 무륵이 주인공으로 나섭니다. 현상금 사냥꾼을 겸하기에 돈 되는 일이라면 퍼뜩 나서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이 아닌 검, 그것도 신검이었죠. 평균 현상금의 수십 수백 배에 이르는 물건에 눈이 안 돌아갈 수가 없으니 신검을 찾아나서는데, 예사 물건이 아닌지라 그를 노리는 도사와 세도가들과 맞서게 됩니다.
일단 다행이라면, 순차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기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현대는 SF고 과거는 판타지인데, SF 장르 특유의 일부 고유명사들을 제외하면 세계관 파악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죠. 애초에 그 부분에서라면 영화가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점도 한몫합니다. 눈으로 이해한 장면을 굳이 인물의 입을 빌려 두 번 세 번씩 정리하는 광경이 내내 반복되니까요.
무대의 크기는 지금껏 그 어떤 영화보다 큽니다. 이쪽과 저쪽이 복작대면서 진행되긴 하는데, 연결고리는 첫 장면에 나온 아이와 신검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뭐가 없어 보입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이 두 개의 세상이 언제 어떻게 왜 이어지게 되는지, 혹은 이어져 있는지를 밝히며 영화의 동력을 확보하는데, <외계+인>은 특이하게도 그 작업의 우선순위를 꽤 낮게 설정해 두었죠.
바로 여기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장장 142분의 러닝타임을 반반 나눠 가진 두 개의 기승전결이 딱히 유기적이지 못합니다. 보다 보면 서로 관련이 없지는 않은데, 굳이 이를 동시에 번갈아 진행할 이유까지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산만해서 어느 한 쪽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한 쪽만으로는 관객들의 흥미를 붙잡아 두기 어려워서 둘을 같이 내놨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시간을 초월한 두 이야기를 같이 진행할 때 만들어지곤 하는 기회들을 활용하지 못합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극적 연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공간은 다르나 움직이는 모습까지 똑같은 두 사람의 활약을 보여준다거나, 이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 다른 한 시점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는 등 두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합니다.
그래도 중후반부에 접어들면 630년을 건넌 인물과 사건을 조금씩 보여주기는 하지만, 약간의 눈썰미만 있다면 누구든 예측하거나 알아챌 수 있는 것들이 대다수죠. 각본은 관객들이 여기까지 미리 알 것이라는 것 또한 알아내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데, 정말 거기서 끝나 버리니 기대감에 잔뜩 올라간 어깨는 김이 샌 채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두 줄기를 하나씩 따져 보아도 걸리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현대 시점의 주인공 분량은 김우빈이 맡은 가드, 그리고 최유리가 맡은 가드의 딸이 나누어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가드가 아니라 가드의 딸 시점에서 전개하길 택합니다. 제 3자인 관객들은 가드의 딸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모르니, 딸이 아빠와 아빠가 하는 일의 비밀을 파헤치며 전개도 할 겸 이해를 돕는 것이죠.
아빠는 뭘 알려 줄 생각이 없으니, 동료 로봇이자 무엇으로든 변신해 온갖 기능도 하고 아이에게도 친절한 썬더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 구도가 굳어지는 시점부터 <외계+인>의 현대 이야기는 SF 블록버스터가 아닌 어린이 드라마에 갇힙니다. 인류의 미래와 사람의 생사가 걸린 전쟁터라며 아무리 힘을 준들, 모험심 가득한 꼬맹이의 활약이 중심이 되니 어느 하나 진중해 보일 리가 만무하죠.
그 덕에 현대 시점의 그 많은 CG, 악역들의 노력은 어린이 드라마의 재료로 녹아 사라집니다. 이야기의 톤이 마치 눈금을 맞추듯 설정되어 버린 뒤라 전개의 한계가 명확해지죠. 가드가 지구를 끝장낼 외계 죄수들과 전투를 벌여도, 결국 우리 똘똘한 딸이 친구 썬더를 부르짖으며 위기에 맞서는 그림으로 정리됩니다. 인간의 감정을 내세운 후반부 하이라이트는 거의 해당 장면 전체를 망가뜨리죠.
과거인 고려 쪽은 그보다는 낫지만, 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이라 아주 큰 차이를 보이지는 못합니다. 따져 보면 이 쪽은 감독의 전작인 <전우치>와 기본적인 얼개가 거의 똑같습니다. 주인공은 도사와 그의 충실한 조수, 악당은 비밀을 간직한 악의 축인 가운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여인이 끼어들죠. 다른 도사들은 과장된 말투와 행동으로 웃음을 담당하지만, 중요한 순간엔 할 일을 놓치지 않습니다.
나열하면 입 아픈 얼굴들이 쏟아짐에도 어디의 누구도 극의 중심이자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이렇게까지 거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죠. 캐릭터의 힘이 모자라니 온갖 난데없는 설정을 덧붙여 이 사람이 사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며 치켜세웁니다. 줄기 없이 잎사귀와 꽃봉오리만 가득해 싱싱함을 유지할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죠.
현대 쪽이 최첨단 SF 액션이라면 고려 쪽은 사극풍의 와이어 판타지 액션입니다. 그런데 현대 쪽은 뭐가 어찌됐든 쏟아낸 설정들을 이리저리 충돌시켜 SF 장르를 선택한 이유를 납득시킨다면, 과거 쪽은 도술이라는 소재를 눈요기 이상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초능력도 쓰고 부적 붙이고 부채로 사람도 날리니 멋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전개에선 도술을 배제하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예를 들어 무륵이 높은 공간의 천장에서 바닥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 미터를 펄쩍펄쩍 뛰고 심지어는 염력이라도 쓰듯 손가락질로 물건을 낚아채던 양반이 갑자기 밧줄을 매달고 내려와 용을 씁니다. 이는 같은 공간의 다른 인물들과 코미디 장면으로 연결되는데, 순간의 웃음을 위해 영화의 그 중요한 장치를 무시하니 득보다 실이 훨씬 크죠.
이 코미디도 영화 전체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커다란 요소입니다. 이 영화에서 코미디는 양념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대부분은 <전우치> 때처럼 캐릭터의 과장된 행동과 말투에서 나오는 몸개그에 의존합니다. 특히 몇몇 캐릭터들은 존재 자체가 몸개그를 위함인데, 어쨌든 단역이 아닌 조연인지라 중요한 전개에 써먹을 때면 이질감도 상당하구요.
그러지 않아도 산만한 구성에 톤도 들쑥날쑥하고, SF와 판타지를 장르로 삼았다는 이유로 난데없는 설정이 튀어나와 상황을 정리하는 광경도 반복됩니다.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지금 이런 상황이고 앞으로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사족 대사들이 계속해서 얹힙니다. 특히 썬더의 경우 단어 선택은 로봇인데 말투는 한껏 흥분한 인간인지라 눈과 귀 양쪽 모두에 거치적거립니다.
나오는 건 많은데 당위성이 있는 것은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륵은 도사가 아니라 도적이면 충분했습니다. 이안에겐 총이 없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가드는 감정 따위 없고 인간 세상에 섞이고 싶어서 아이를 데려왔다고 했지만, 감정은 있고 인간 세상엔 섞이지 않아도 상관없어 보였습니다. 그 상황이라면, 그 구성이라면 보여주어야 하는 것들은 없고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이 틀어졌습니다. 문제는 2부까지 벌써 촬영이 완료되었다는 것이겠죠. 단순히 각본이 지루하거나 답답했다면 그 뒤 의 본격적인 이야기에서 개선되리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미 이번 1부에서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과오를 반복적으로 노출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종종 예상을 빗나가곤 하는 흥행 추이가 될 텐데, 여러모로 결과가 궁금한 영화입니다.